토론:신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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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댓글: 류금열님 (10년 전)


[임나일본부 임나십국 중 사이기국의 역사 왜곡 삭제 당위성]

(1) 가야시대에 사이기국(斯二岐國)에서 유래한다. 斯二岐는 일본식 음으로 시니키シニキ로 읽히는데 우리쪽에서는 “시니(省熱,新尒,辛尒,朱烏)”로 적었다. 고려시대 이름인 신번도 이에서 유래했다. 우륵의 12곡의 이사(爾赦)나 신라시대의 명칭인 의상(宜桑)은 음절이 “니시”로 뒤바뀌어서 기록된 듯 하다.

(2) 대가야의 직할영역으로 성열현(省熱縣)이 설치되었다. 이사(爾赦)로도 불렸다. 가야시대 말에 우륵이 탄생했다.

상기 등재한 학설의 발단은 일본인 말송보화와 전중준명이 고대 임나일본부를 토착하기 위힌 수단과 방편으로 우륵의 12곡과 김유신 열전에 성열성을 개입하여 음사적으로 비정한 것으로 날조왜곡한 학설을 국내 학자가 정설인냥 수용함.

『삼국사기』 원전에 우륵의 12곡 중 이사(爾赦)의 ‘赦’자는 미상으로 분류함.

『위키백과』에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또는 남선경영론(南鮮經營論), 임나지왜재(任那之倭宰),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說)는 4세기 ~ 6세기에 왜국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임나(가야의 일부)에 통치기구를 세워 한반도 남부 지방의 일부를 다스렸다는 학설이다. 일본인 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가 주장했다.” 라는 일본인 말송보화가 사이기국을 신반으로 비정하면서 전중준명이 우륵의 12곡 중 이사곡과 성열성을 개입하여 임나일본부 임나십국을 토착함.

말송보화『任那興亡史』의 ‘임나쇠체(任那衰替)’에 임나십국 중 초계(草溪)를 산반하국(散半下國), 신반(新反)을 사이기국(斯二岐國)으로 비정했으나『신라본기 권1』파사니사금(婆娑尼師今) 29년(108)에, 초팔국(草八國)은 초계(草溪)를 말한 것으로써 산반하국(散半下國)과 관련성이 없는 국명을 임의로 부여한 것임.

전중준명은『일본서기』에 의하여 임례국(稔禮國)과 이열비(爾列比)로 기록했으나 『三國史記 卷第四 新羅本紀 第四』에 보면, “의상현(宜桑縣)은 본래 신분현(辛分縣) (한편 주오촌(朱烏村)이라고도 이르며 한편 천주현(泉州縣)이라고도 이른다.) 인데 경덕왕(景德王)이 이름을 고쳤다. 지금은 신번현(新繁縣)이다.”라고 기록하여 옛 지명과 하등의 관련이 없슴.

우륵의 출신지 省熱縣은 신라적인 표기로 斯二岐國이라 하였으나 사이기국은 바로 『일본서기(日本書紀) 卷第19』에 “가라국(加羅國), 안라국(安羅國), 사이기국(斯二岐國), 다라국(多羅國), 졸마국(卒麻國), 고차국(古嵯國), 자타국(子他國), 산반하국(散半下國), 걸손국(乞飡國), 임례국(稔禮國)” 중에서 사이기국을 지금의 의령군 부림면으로 비정한 것을 국내 학계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고대 식민사관의 굴레를 쓰게 된 것임.

한글학회, 『한국지명총람』에 “의령군 부림면 新反里[신반]【리】본래 고려 때 新繁縣의 지역인데, 고려 말에 의령현에 편입되고, 조선조 때 보림면에 딸리어 신반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일형동, 노상동, 노하동, 내상동, 내하동, 내장동, 외장동, 이현동, 막곡동, 창동, 감암동의 각 일부와 가수면의 서득동 일부를 병합하여 신반동(리)이라 해서 부림면에 편입됨.”으로 수록함.

경남 의령군은 2000년 10월 5일 미타산성을 성열성으로 도지정문화재로 신청할 때 田中俊明, 󰡔大加耶聯盟の興亡と任那󰡕에 임나십국의 사이기국을 성열현으로 비정한 내용을 근거로 신청하였으나 2001년 2월 22일 조선시대 산성으로써 ‘의령 미타산성’을 경상남도 문화재로 지정하여 삼국시대 성열성은 왜곡된 것으로 판단됨. --류금열 (토론) 2013년 11월 19일 (화) 19:36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