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수원농림전문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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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농림학교는 1908년 1월 농상공학교가 한성에서 수원으로 이전한 학교가 원류고 1911년 조선총독부 부속 수원 농림학교 혹은 권모잠업소 부설 농림학교로 학교학력이 제한 없는 논 200마지기 이상 소작하는 농토를 소유한 부모를 둔 자녀에게 입학 자격을 주었다가. 점차 보통학교 졸업자격으로 입학을 하고 1914년 12월 총독부에서 전문학교 설립을 논의하면서 변화가 생겼다고 본다. 당시 논의 대상은 공업전습소, 의학강습소, 전수학교 등의 교장이 참여 하였다. 1913년 3월 조선총독부립 중학교 졸업자가 나오고, 일본으로 진학하거나 교원 양성소 1년을 다니는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사립 동양협회 부속 척식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혹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전신)를 일본에서 다니다가 조선의 분원으로 다니는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1913년 1914년 졸업생이 나오면서 일본인 자제들의 진학의 문제가 생기자 1914년 이를 해결하고자 전문학교 설립의 논의가 되었고, 12월 논의와 군인 행정가들의 경직성에 일본 의회에 예산확보가 되지 못하여 1915년 3월 14일 조선총독부 중앙공업소 부설 공업전습소에 3년제 전문학교 과정(일본인 중학교 졸업자 혹은 조선인 고등보통학교 졸업자 입학 자격의 학교)의 3개 학과를 둠으로 조선내 최초 관립 전문학교 과정이 이루어 졌다. 1916년 의학강습소를 의학전문학교 그리고 전수학교를 전문학교 과정으로 변화 시켰으며 일본인은 11년 학령의 입학자격 조선인은 8년의 학령의 입학자격으로 차별적 요소가 계속 존재하였고 농림학교도 이런 변화에서 점차 고등보통학교 졸업자를 입학자격으로 변경시키며 고등보통학교 졸업자에게 무시험 전형의 방식으로 모집했다. 1917년 3월 15일 전문학교 과정의 학생(고등보통학교 졸업자 입학 자격)으로 학생을 모집하면서 3년제를 졸업시킨 1920년이 1회 졸업생이 된다. 참조는 조선총독부 관보 1917년 3월 및 1914년4월 입학생 모집 공고(매년 2월 26일부터 ~3월 5일경 공고 했음)을 보면 잘 이해 할 수 있다. ::: 여기 100날 좋은 자료를 주고 찾아 볼 곳을 지적해 주어도 찾아 보지 않고 삭제하기 일수지만 필요 있는 것은 받아 들이고 버릴 것은 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