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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생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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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면에는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의 모델인물 유이태 선생이 의술 활동을 하였던 지역이다. 유이태 선생은 효(孝), 충(忠) 그리고 인(仁)를 실천하였다. 조부와 부모에게 효행을 하였고, 자신이나 가족보다는 타인을 먼저 배려하였다. 국왕 숙종의 환후가 위급했을 때 의약동참에 참가하여 국왕 숙종을 고친 공로로 국왕이 제수한 숭록대부 안산군수직을 받았으나 고사하고 향리 산청으로 돌아왔다. 을병년(1685~1686) 대기근이 전국에 발생하였을 때 경상좌우도의 사우들에게서 백미를 빌려와 굶주림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였다. 유이태는 사대부 가문의 후예로서 반상(班常)과 적서(嫡庶) 그리고 남녀 구별이 엄격했던 봉건사회에서 입신양명의 뜻을 접고 의학에 입문하여 평생 오직 무서운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 위하여 박애주의에 입각한 인술을 몸소 실천하며 애민정신을 펼친 유의(儒醫 : 유학자 의원)이다.

생초면에는 유이태 선생이 애민정신의 인물을 펴었던 집, 서실, 잠들고 있는 묘소, 휴식을 위하며 낚시를 하였던 낚시터, 합천을 왱래하면서 넘어 다녔던 매봉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