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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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ivetti Valentine.jpg

타자기(打字機)는 글자를 찍어 글을 쓰기 위해 사용하는 기계이다.

개요[편집]

타자를 치는 방식[편집]

기계식, 전자기계식 혹은 전자식으로 글쇠를 주로 종이 위에 잉크로 찍어 출력을 한다. 이중 전자식은 수정액이나 테이프를 사용해야 하는 기계식에 비해서, 수정이 편리하고 작업내용을 저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사무용이나 작가에 의해 쓰여지며 으로 쓴 글씨보다 인지하기가 편리하고 빠르게 글을 쓸 수있어 이용되었다.

전성기[편집]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글쓰는 일을 하는 학자와 작가들이 많이 이용해서 곤충학석주명 선생도 영문타자기로 논문을 작성했다. 당시 타자기는 매우 비쌌지만 교육열이 높은 석주명 선생의 어머니가 황소를 팔아 기꺼이 사주었다고 전해진다. 1980년대에는 워드프로세서(여기서 말하는 워드 프로세서는 워드, 아래아한글같은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프린터가 내장된 휴대용 워드프로세서를 말한다. 실제로 1980년대는 1983년 국산제품 개발을 시작으로 대우전자 르모, 현대 워드피아 등의 휴대용 워드프로세서가 전동식 타자기를 밀어내고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이다.)[1]가 대신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와 프린터에 의해 거의 대체되어가는 추세이다. 전성기에는 상업고등학교(현재 정보고등학교)나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은 타자수(Typist)가 있었으며, 문화방송 시사교양프로그램인 시사매거진 2580에 나온 노인 한 분에 의하면 타자기는 한창 유행할 때에는 사무실의 필수품중 하나였다.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사무원자격증에도 타자 자격증이 있었다. 현재도 일부 작가나 마니아들에 의해 선호되고 있지만, 대다수의 문서작성자들은 사용하기 편리하고 기능도 다양한 워드프로세서를 선호한다. 2014년 현재 타자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지구상에 거의 없지만 일부 생산하는 업체도 있다.

역사[편집]

1714년 영국에서 최초의 특허가 있었으나 내용은 남아있지 않으며, 이후 19세기 중반까지는 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기계로 발전되었다. 최초의 타자기는 미국의 발명가 윌리엄 오스틴 버트(William Austin Burt)가 1829년 출시한 타이포그래퍼(typographer)였다. 최초의 실용화된 타자기는 1868년 크리스토퍼 숄스, 카를로스 그리덴과 사무엘 소울에 의해 발명되었다. 이후 레밍턴사에서 만든 제품이 일반화되었다. 웅진 싱크빅에서 펴낸 헬렌 켈러 위인전기(고정욱 지음)에 의하면 헬렌 켈러는 하버드 대학교에 부속된 레드 클리프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에 점자타자기로 숙제를 해서 제출했다. 물론 헬렌 자신도 인정했듯이 부모가 부유하여 헬렌이 설리번 선생님을 모시고 특수교육을 받았으며, 대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이지, 헬렌이 노력으로써 장애를 '극복'한 것은 아니다.[2]

타자기의 종류[편집]

IBM에서 만든 셀렉트릭 전자식 타자기

타자기는 기계식, 전자기계식, 전자식으로 구분된다. 기계식 타자기는 수동 타자기로서 글자판을 누르면 활자판이 탄소리본을 때려서 글자를 찍는 타자기이다. 전자식 타자기는 글자 휠에 망치가 충격을 주어 글자가 찍히는 타자기이다. 220V의 전기를 사용하는 전자제품이며, 글자 지우기(수정테이프 사용), 문장 기억(메모리 사용), 글자 수정기능 등을 제공한다.[3] 츨판사 이레에서 펴낸 '내 영혼의 닭고기 스프'에 실린 이야기에 따르면, 사고로 손이나 발을 다친 지체장애인들을 위한 타자기를 IBM에서 개발했다고 한다. 글을 쓴 사람은 지체장애인인데, 어릴 적에 트랙터 사고로 손을 다쳤다. 다행히 부모님이 강인한 분들이어서 좌절하거나 한숨을 쉬지 않고 따님을 학교에 보내셨고, 작가는 장애유형에 맞지 않는 체육수업을 받지 않는 대신 타자반 교사에게서 타자를 배웠다. 아이비엠에서 지체장애인들이 타자기를 쓸 수 있도록 손이나 발을 쓸 수 없는 지체장애에 맞춘 타자기를 개발하여 무료로 보내준 덕분이었다. 이후 작가는 고등학교 3년 동안 타자기로 숙제를 작성해서 교사에게 제출했다.

한글 타자기[편집]

한글타자기의 시초가 되는 타자기는 미국 뉴욕주의 변두리에 있는 시러큐스 지역에서 1908년도에 만들어진 리원익 타자기로 알려져 있는 84키가 펼쳐진 Smith Premier No10 언문타자기가 한글타자기의 시초로 알려져 있으며, 당시 서재필 박사에 의한 국민들이 자주독립 의식과 애국심을 기르고, 민주주의와 근대화 사상을 가지도록 계몽하는데,서재필 박사처럼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리원익이 판매와 계몽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며, 정교한 자판의 배치는 당시 서재필 박사가 주도한 독립신문의 조판을 담당한 주시경 선생님의 작품으로 사료되며, 그중 한대가 ononda 역사 협회 박물관측에 언문타자기가 보관되어 있다. 이후 일제 치하 1934년도에 송기주 선생에 의해 언드우드 43키의 언더우드 타자기로 한글 풀어쓰기 타입의 한글타자기가 만들어졌으며, 6.25전쟁중에는 맥아더 장군의 전쟁포로대우에 대한 광고 전단지를 송기주 타자기로 쳐서 만들어 뿌리지기도 하였다. 이후로 안과의사 공병우박사님 같은 한글타자기 개발 선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의 한글타자기 자판 방식이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4벌식과 2벌식을 끝으로 기계식과 전자식 한글타자기의 역할은 컴퓨터의 발전과 더불어 사용가치가 없어졌다.

Smith Premier No 10 언문타자기의 언문 자판 배열은 주시경 선생님이 1908년도에 저술한 <국문초학> 첫째공과 모음 배열과 정확히 일치하며, 주시경 선생님이 "한글" 이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하였으므로 Smith Premier No 10 언문타자기는 대한민국 최초의 한글타자기로 불리워도 무방할것으로 보인다.

각주[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