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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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권(初夜権, 라틴어: jus primae noctis 유스 프리마이 녹티스[*], 프랑스어: Droit du seigneur 드루아 뒤 세뇨르[*])은 중세 영주가 자신의 영지에 보호받고 있는 농노의 딸에 대한 처녀성을 취하는 권리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초혼권'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역사[편집]

'초야권'은 '첫날 밤에 대한 권리'(right of the first night)를 뜻하는 중세 프랑스어로 영주가 자신의 영지에 존재하는 농노의 딸 또는 신부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용어이다. 이러한 초야권에 관련된 내용은 중세 말과 근세에 지어진 시 또는 문학 작품에 등장한다. 실제로 유럽 내 일부 지역의 경우에는 부담 중인 채무가 매우 높은 농노에 한해서 초야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는 경우도 존재했으며, 혼수세 납세를 통하여 초야 의무를 대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야권이 보편적이고 전국적인 권리로서, 왕권이나 교회권에 의해 명시되었다는 근거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초야 행위는 중세 유럽만의 관습적 행위가 아닌, 중동과 중앙아시아에서도 볼 수 있는 풍습이었으며, 그 기원은 고대 사회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중국인에게 가해진 초야권[편집]

유명 교육자이자 중국 사학자 신리지엔(信力建,신력건,1956年1月10日,중국 광둥성 광저우 출신 中山大学대학졸)[2] 주장에 따르면 당시 몽골이 후기 좌도 밀교의 초야권이 성행하던 티베트를 점령하고 티베트 불교(라마교)를 원나라의 국교로 삼았으며 원나라의 몽골인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티베트 불교를 믿었다. 또한 몽골인 군인 1명당 20호(20가구,100명)의 한족의 마을들을 감시하며 칼같은 철제 무기를 만드는지 감시하였고 한족들이 결혼을 할 때 티베크 불교(라마교)의 풍습으로 몽골 군인이 한족 여자에게 초야권을 행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한족들이 첫째 아이를 죽이는 풍습은 이 때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또한 몽골인이 한족에게 초야권을 행사한 것은 중국 문헌에도 보이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초야권의 많은 기록이 보이는 곳은 중국이라는 장소뿐이며 중국인들에게만 보인다. 즉 몽골인 다루가치의 행성 지배를 직접적으로 받았으며 몽골의 국가 그 자체였던 중국에서는 동아시아 국가들 중에 유일하게 초야권이라는 것이 보이며 이는 몽골인들이 중국인(漢族)들을 지배할 때 사용한 매우 가혹한 방법이였다.[3] 이러한 라마교는 원나라에만 성행하였는데 원나라가 건국되고 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원나라가 중국 대륙에만 확고히 영향력을 행사할 때 라마교는 원나라의 국교가 되었다. 그리하여 라마교는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앙아시아에는 퍼지지 않았지만 중국 대륙에는 성행하게 된 것이다.


각주[편집]

  1. Bullough, Vern L (1991). "Jus Primae Noctis or Droit du Seigneur". The Journal of Sex Research. 28, number 2. pp. 163–166.
  2. https://baike.baidu.com/item/信力建>
  3. http://m.blog.daum.net/shanghaicrab/16153929?categoryId=459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