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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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 영주에게 딸 세명을 데려와 바치는 중세의 노인을 묘사한 그림. 1874년, 바실리 폴레노프 작.

초야권(初夜權, 라틴어: jus primae noctis 유스 프리마이 녹티스[*], 프랑스어: Droit du seigneur 드루아 뒤 세뇨르[*])이란 중세 영주가 자기 영지의 농노의 딸의 처녀성을 취할 수 있게 하는 권리를 말한다. 문화적 모티프로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정작 이것이 중세 유럽에 실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으나 초야권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다.

본래 게르만족의 전통에서 유래하였으며, 초야권을 빌미로 결혼세를 받아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헤로도토스는 아디르마치데(Adyrmachidae)라고 불리는 고대 리비아 부족들에 대해 "그들은 또한 신부가 될 여성들을 왕에게 데려가 왕을 기분 좋게 할 여자를 선택하도록 하는 풍습을 가진 유일한 부족이다.” 라고 저술했다. 1527년, 스코틀랜드의 역사가였던 헥토르 보이스 (Hector Boece)는 말콤 3세에 의해 폐지되기 전까지 이 권리가 스코틀랜드에 존재했다고 주장했다. 윌리엄 블랙스톤 역시 그의 저서 ‘Commentaries on the Laws of England’에서 이러한 관습에 대해 언급하였다. 초야권은 1556년에는 프랑스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장 파퐁 (Jean Papon)의 ‘Recueil d'arrestz notables des courts souveraines de France’에서도 언급되었다. 볼테르 또한 1764년에 발매된 ‘Dictionaire philosophique’에서 이 관례에 대해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