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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경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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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경후(蔡景侯, ? ~ 기원전 543년), 채 경공(蔡景公)은 중국 춘추 시대의 인물로, 제17대 이다. 성은 희(姬), 휘는 고(固)다.

제16대 채후 채 문후의 아들로, 문후 20년(기원전 592년)에 문후가 죽자 채후가 되었다.[1][2] 경후 7년(기원전 585년)과 9년(기원전 583년)에 진나라의 침입을 받았고,[2] 경후 27년(기원전 565년)에는 진나라에 잘 보이려고 한 정나라의 공격을 받아 사마 공자 섭(燮)이 사로잡혀갔다.[2][3] 경후 43년(기원전 549년)에는 제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했다가 보복을 두려워해 채나라의 상국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기에, 초나라의 지휘를 받아 초 · · 나라와 함께 정나라를 정벌했다. 제나라를 치기 위해 진나라가 소집한 제후군은 이미 홍수가 나서 제나라를 치지 못하던 바에, 이에 제나라 공격을 포기하고 정나라를 구원했다.[2][4] 경후 46년(기원전 546년)에 송나라의 상술(向戌)의 발의로 남북에서 패권을 다투는 진나라초나라가 화의하기로 하면서 진 · 초 · · 나라와 진나라와 초나라의 속국들이 회맹을 하였는데, 채나라에서는 이 회맹에 공손 귀생(公孫歸生)이 참여했다. 초나라 대표 자목(子木)과 진나라 대표 조맹이 합의해 진나라의 속국과 초나라의 속국이 각각 초나라와 진나라에 조현하기로 합의했기에,[5] 이듬해에 경후는 채나라가 초나라의 속국이므로 애공 · 호자(胡子) · 심자(沈子)와 함께 진나라에 조현했다.[6] 경후 49년(기원전 543년) 여름 4월, 초나라에서 태자 반의 아내를 맞이했다가 통정했고, 태자 반에게 살해당했다.[2][1][7] 경후 사후에는 반이 스스로 즉위했으니, 곧 채 영후다.[2][1] 경공의 장례는 이해 겨울 10월에 치렀다.[8]

각주

[편집]
  1. 사마천: 《사기》 권35 관채세가
  2. 위와 같음, 권14 12제후연표
  3. 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4, 전통문화연구회, ISBN 978-89-91720-13-8 94140, 74 ~ 77쪽
  4. 위와 같음, 330 ~ 341쪽
  5. 정태현: 《역주 춘추좌씨전》 5, 전통문화연구회, ISBN 978-89-91720-20-6 94140, 49쪽, 57 ~ 61쪽
  6. 위와 같음, 85 ~ 86쪽
  7. 위와 같음, 150, 158쪽
  8. 위와 같음, 151쪽
선 대
채 문후
제17대 채나라의 후작
기원전 591년 ~ 기원전 543년
후 대
채 영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