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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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열효신씨 정려비
(昌寧 烈孝辛氏 旌閭碑)
대한민국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종목문화재자료 제183호
(1991년 12월 23일 지정)
수량2기
관리영산신씨문중
주소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 산133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창녕 열효신씨 정려비(昌寧 烈孝辛氏 旌閭碑)는 경상남도 창녕군 도천면 도천리에 있는 정려비이다.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개요[편집]

고려 후기 공민왕 때의 문신이었던 신사천( ? ∼1382) 선생과 그 두 딸의 충효와 절의를 기리고자 세워놓은 2기의 비이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봉익대부전공판서를 지내던 신사천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던 중, 왜적이 여러 차례 침략하자 이에 맞서 싸워 큰 공을 세우고, 우왕 8년(1382)에 순절하였다. 그의 큰딸은 랑장 김우현의 처가 되어 남편과 함께 왜적과 싸우다 목숨을 잃었으며, 작은딸 역시 16세 처녀의 몸으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전법판서 조준이 경상도 체복사로 왔다가 이 사연을 듣고 왕에게 상소하니, 왕은 비를 세우도록 하고 포상을 내리었으며, 그 사연을『삼강행실록』에 기록하였다.

한 채의 비각 안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이 비들은 낮은 사각받침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조선 태종 5년(1405)에 세운 것이다. 1994년에 비각과 사당을 새로이 지어 그 안에 모셔두었다.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