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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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녕대군이제묘역
(讓寧大君 李禔 墓域)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종목유형문화재 제11호
(1972년 8월 30일 지정)
수량건물 3동(사당, 서고, 제기고) 및 묘 1기
시대조선시대
소유지덕사
위치
지덕사 (대한민국)
지덕사
주소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4동 양녕로 167
좌표 북위 37° 29′ 49″ 동경 126° 56′ 31″ / 북위 37.49694° 동경 126.94194°  / 37.49694; 126.94194좌표: 북위 37° 29′ 49″ 동경 126° 56′ 31″ / 북위 37.49694° 동경 126.94194°  / 37.49694; 126.94194
정보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지덕사(至德祠)는 서울특별시 동작구 상도4동에 있는 조선 태종의 장남이자 세종의 큰형인 양녕대군(讓寧大君) 제(禔)의 사당과 묘소로 정식 명칭은 지덕사부묘소(至德祠附墓所)이다.

묘역은 11,888평에 사당 건평 9평을 비롯한 3동의 건물과 묘 1기를 포함해 1972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재단법인 지덕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편집]

지덕(至德)이란 중국 주(周)나라 때 태왕(太王)이 맏아들 태백과 둘째아들 우중을 건너뛰어 셋째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할 때 태백과 우중 두 형제는 부왕의 뜻을 헤아려 삭발하고 은거하며 왕위를 사양했다.

훗날 공자(孔子)가 태백은 지덕, 우중은 청권이라고 칭송하였다. 이러한 고사를 바탕으로 양녕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지덕사(至德祠), 효령대군을 모시는 사당을 청권사(淸權祠)라 하였다.[1]

사당의 후면에 양녕대군과 정경부인 광산 김씨(光山金氏)를 합장한 묘소가 자리하며, 그 앞에 장명등과 묘비 및 문인석이 좌우에 2기씩 서 있는데 양녕대군은 유언으로 호화로운 예장을 받지 말고 묘비와 상석을 만들지 말라 했는데 7대손 만(曼)과 8대손 성항(性恒)이 묘소 앞에 석물을 세웠다 한다.

하지만 그 때 세운 묘비는 1910년 경술국치 전날인 8월 28일 밤 벼락소리와 함께 갈라져 1915년 다시 묘비를 세웠다고 전해온다. 또한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양녕대군의 16대손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승만이 남산 서쪽의 도동(桃洞)에 정착할 때, 양녕대군의 봉사손으로 판서를 지낸 이근수의 도동 서당에 다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거기에는 양녕대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 지덕사(至德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살던 초가집이 도동 우수현(雩守峴)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이승만은 그의 아호를 우남(雩南)으로 했다.

양녕대군은 시와 글씨에 능하였는데 서울역남대문의 '숭례문(崇禮門)'이라는 현판 글씨도 썼다.

능고개는 관악구 봉천동 호리목 마을에서 상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이 고개를 넘어가면 상도동 산65-42번지와 217-1번지에 양녕대군의 묘소와 사당인 지덕사(至德祠)가 있는 데서 유래된 이름인데 사당에는 세조가 친히 만든 금자현액(金字懸額)과 조선 중기의 문신인 허목(許穆)의 휘호로 된 지덕사기(至德祠記), 양녕대군의 필적으로 전해지는 숭례문의 탁본 등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교통[편집]

지하철 7호선에서 상도역 2번출구로 나와 양녕로 따라 가다보면 300미터 거리에 세워져 있다.

각주[편집]

  1. 이정근 (2005년 9월 18일). “세종대왕의 '형님'으로 세상 살아가기”. 오마이뉴스. 2012년 11월 30일에 확인함. 

참고 자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