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주판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주판

주판(籌板, 珠板, abacus) 또는 수판(數板)은 계산을 하기 위한 도구로, 손으로 막대나 줄에 끼워놓은 주판알을 튕겨서 조작한다. 고대에서부터 사용된 계산용 도구로 인도-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기 전 수천 년 동안 고대 근동·유럽·중국·러시아 등을 포함한 전세계 곳곳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1]

직사각형 모습으로 틀을 만든 2차원 공간에 주판알을 줄에 꿰어서 진열한 형태를 하고 있다. 초기에는 평평한 판에 홈을 파서 주판알을 움직이는 형태도 있었으나 점차 틀만 만들어 놓고 막대에 묶어서 튕기는 방식을 사용하게 되어 신속한 조작이 가능하게끔 개선되었다.

주판을 쓰는 계산법을 주산(籌算, 珠算)이라 한다. 1개의 윗알은 5를, 4개의 아랫알은 하나당 1을 뜻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부기와 더불어 주산이 상업고등학교의 교과목 중 하나였다.

역사

[편집]

메소포타미아

[편집]

수메르의 주판은 기원전 2700년에서 2300년 사이에 등장했다. 이 주판은 60진법 숫자 체계의 연속적인 크기 순서를 한정하는 연속적인 열의 표를 담고 있었다.[2]

일부 학자들은 주판의 표현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는 바빌로니아 설형 문자를 지적한다.[3] Ettore Carruccio와 같은 고대 바빌로니아 학자들[4]은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덧셈과 뺄셈 연산을 위해 주판을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원시적인 장치는 더 복잡한 계산에는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5]

이집트

[편집]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고대 이집트에서 산판을 언급했다. 그는 이집트인들이 그리스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조작하는 방법과는 반대 방향으로 자갈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작했다고 적었다. 고고학자들은 카운터counters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다양한 크기의 고대 원반을 발견했다. 그러나 이 도구의 벽 묘사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6]

페르시아

[편집]

기원전 600년경, 페르시아인들이 처음으로 주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케메네스 제국 때였다.[7] 파르티아, 사산 왕조, 이란 제국 시대에 학자들은 인도, 중국, 로마 제국 등 주변 국가들과 지식과 발명품을 교환하는데 집중했는데, 이로 인해 주판이 다른 나라로 수출되었을 수도 있다.

그리스

[편집]
1899년에 촬영된 살라미스 석판의 초기 사진. 원본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아테네 국립 금석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리스에 주판이 사용된 최초의 고고학적 증거는 기원전 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8] 데모스테네스(기원전 384년~기원전 322년)는 계산을 위해 자갈을 사용해야 하는 필요성이 너무 어렵다고 불평했다.[9][10] 기원전 4세기 알렉시스(Alexis)의 희곡은 회계를 위해 주판과 자갈을 언급하고 있으며, 디오게네스(Diogenes)와 폴리비우스(Polybius)는 둘 다 주판을 인간 행동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여 주판 위의 자갈처럼 "때로는 더 많은 것을, 때로는 더 적은 것을 위해 서 있던 사람들"을 인간 행동에 대한 은유로 사용하였다.[10] 그리스 주판은 나무나 대리석으로 만든 판으로, 수학적 계산을 위해 나무나 금속으로 된 작은 카운터가 미리 설치되어 있었다. 이 그리스 주판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에트루리아 문명, 고대 로마, 그리고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서구 기독교 세계에서 사용되었다.

서기 1846년 그리스의 살라미스섬에서 발견된 판(살라미스판)은 기원전 300년의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계산판이다. 길이 149 cm, 너비 75 cm, 두께 4.5 cm의 흰색 대리석판으로 5개의 표시 그룹이 있다. 판 중앙에는 수직선으로 똑같이 나누어진 5개의 평행선이 있으며, 가장 아래의 수평선과 단일 수직선의 교차점에서 반원으로 마감되어 있다. 이 선 아래에는 수평 균열이 있는 넓은 공간이 있다. 이 균열 아래에는 11개의 평행선이 또 다른 그룹으로 있으며, 다시 수직선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지만 교차점의 맨 위에 반원이 있다. 이 선 중 세 번째, 여섯 번째, 아홉 번째는 수직선과 교차하는 곳에 십자로 표시되어 있다.[11] 또한 이 시기에 다리우스 꽃병이 1851년에 발굴되었다. 꽃병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한 손에는 왁스판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테이블 위의 카운터를 조작하는 "재무 담당자"가 그려져 있었다.[9]

로마

[편집]
로마 주판의 복제판

고대 로마의 일반적인 계산 방법은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매끄러운 테이블 위에 카운터를 움직이는 것이었다. 원래는 자갈(라틴어: calculi)이 사용되었다. 표시된 선은 로마 숫자 체계에서처럼 단위, 5, 10 등을 나타냈다.

기원전 1세기에 호라티우스는 얇은 검은색 왁스 층으로 덮여 있고 그 위에 스타일러스를 사용하여 기둥과 숫자를 새긴 판인 왁스 주판에 대해 언급했다.[12]

최근에 복원된 로마 주판의 고고학적 증거의 한 예는 기원후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기에는 각각 최대 5개의 구슬이 들어 있는 8개의 긴 홈과 각각에 구슬이 하나 또는 전혀 들어 있지 않은 8개의 짧은 홈이 있다. I로 표시된 홈은 단위, X는 10, 이런 식으로 백만까지 나타낸다. 짧은 홈의 구슬은 로마 숫자와 관련된 이 · 오진법(bi-quinary coded decimal) 체계와 비슷한 5(5개의 단위, 5개의 10 등)를 나타낸다. 오른쪽의 짧은 홈은 로마의 "온스"(ounces, 즉, 분수)를 표시하는 데 사용되었을 수 있다.

중세 유럽

[편집]

로마의 '카운터 캐스팅' 시스템은 중세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19세기까지 제한적으로 사용되었다.[13] 부유한 율리시스트는 제톤(jeton)이라 불리는 장식용 주조 카운터를 사용했다.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주판을 개량하여 다시 도입하면서, 주판은 11세기에[14][15] 다시 유럽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주판은 전통적인 로마식 주판과 달리 철사에 구슬을 달아서 훨씬 더 빨리 사용할 수 있었고, 더 쉽게 옮길 수 있었다.[16]

중국

[편집]
중국식 주판(솬판))
중국식 주판(솬판)(사진에 표시된 숫자는 6,302,715,408)
주판
정체자 算盤
간체자 算盘
영어 표기"calculating tray"

중국의 주판에 관한 가장 오래된 문서는 기원전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17]

중국 주판은 솬판(算盤/算盘)이라고도 하며, 작업자에 따라 길이와 너비가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7개 이상의 막대가 있다. 상단의 각 막대에는 구슬이 2개, 하단에는 구슬이 5개씩 있어 2진 부호화 십진법 체계로 숫자를 나타낸다. 구슬은 일반적으로 둥근 하드우드로 만들어진다. 구슬은 가운데 기둥을 향해 위아래로 움직여서 센다. 가운데 기둥을 방향으로 놓은 구슬은 세고, 기둥에서 떨어진 구슬은 세지 않는다.[18] 위쪽 구슬 중 하나는 5이고 아래쪽 구슬 중 하나는 1이다. 각 막대 아래에는 자릿수 값을 나타내는 숫자가 있다. 솬판은 수평 축을 따라 빠르게 움직여 중앙의 수평 기둥에서 모든 구슬을 돌려 즉시 시작 위치로 재설정할 수 있다.

중국 솬판의 원형은 한나라에 등장했으며, 구슬은 타원형이다. 송나라와 그 이전 시대에는 현대 산판과 유사한 1:4 유형 또는 4구슬 산판을 사용했으며, 이 구슬 모양은 일반적으로 일본식 주판으로 알려져 있다.

명나라 초기에는 1:5 비율 솬판이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윗판에는 구슬이 하나, 아랫판에는 구슬이 다섯 개 있었다.[19] 명나라 후기에는 2:5 비율 솬판이 등장했다.[19] 윗판에는 구슬이 두 개, 아랫판에는 구슬이 다섯 개 있었다.

솬판을 위해 다양한 계산 기법이 고안되어 효율적인 계산이 가능해졌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사용 방법을 가르친다.

송나라(960–1297)에 장제원이 그린 장대한 두루마리 《청명상하도》에서 약방의 계산대 위에 회계 장부와 의사 처방전 옆에 솬판이 놓여 있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다.

로마 주판과 중국의 솬판이 비슷한 것은 로마 제국과 중국 사이에 무역 관계가 있었다는 증거가 주어졌을 때, 하나가 다른 하나에 영감을 주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직접적인 연관성은 입증되지 않았으며 산판의 유사성은 우연일 수 있으며, 둘 다 궁극적으로 한 손에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세는 데서 비롯되었다. 로마 모델(대부분의 현대 한국과 일본과 같이)이 소수점 한 자리당 4 + 1개의 구슬을 가지고 있는 반면, 표준 솬판은 5 + 2개를 가지고 있다. 우연히도, 이것은 전통적인 중국식 무게 측정에 사용되었을 수 있는 16진법 숫자 체계(또는 최대 18까지의 진법)와 함께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중국, 한국, 일본 모델에서처럼 줄을 사용하는 대신, 로마 모델은 홈을 사용하여 산술 계산을 훨씬 느리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솬판의 또 다른 가능한 출처는 산가지로, 십진법을 사용했지만 자리 표시자로서 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0은 아마도 당나라(618–907)에 중국인에게 소개되었을 것이다. 당시 인도양과 중동을 여행하면서 인도와 직접 접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인도 상인과 수학자에게서 0과 소수점이라는 개념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인도

[편집]

불교 철학에 관한 산스크리트 저작인 바수반두(316-396)의 아비달마구사론에 따르면, 2세기 서기 철학자 바수미트라는 심지(산스크리트어 바르티카(vartikā))를 숫자 1(산스크리트어 에카앙카(ekāṅka))에 꽂으면 1을 의미하고, 심지를 숫자 100에 꽂으면 100을 의미하고, 숫자 1000에 꽂으면 100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배열이 정확히 어떤 것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5세기경 인도의 서기관들은 이미 주판의 내용을 기록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었다.[20] 힌두 경전에서는 주판의 빈 칸을 나타내기 위해 'śūnya'(영)라는 용어를 사용했다.[21]

일본

[편집]
일본 소로반

일본에서는 주판을 소로반(算盤, そろばん)이라고 한다. 14세기에 중국에서 수입되었다.[22] 아마도 지배계급이 이를 채택하기 1세기 이상 전부터 노동계급이 이를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있다. 계급 구조가 이런 변화를 거부했기 때문이다.[23] 거의 사용되지 않는 두 번째와 다섯 번째 구슬을 제거한 1:4 주판은 1940년대에 인기를 얻었다.

오늘날의 일본 주판은 1:4 비율 4구슬 주판으로, 무로마치 시대에 중국에서 도입되었다. 윗판 1구슬, 아랫판 4구슬 형태를 취했다. 윗판의 윗구슬은 5개이고 아랫판 1개는 중국이나 한국의 주판과 비슷하며, 소수점 표현이 가능하므로 주판은 1:4 장치로 설계되었다. 구슬은 항상 마름모 모양이다. 몫 나누기는 일반적으로 나누기 방법 대신 사용된다. 동시에 곱셈과 나눗셈 숫자를 일관되게 만들기 위해 나누기 곱셈을 사용한다. 나중에 일본에는 텐산소로반(天三算盤)이라는 3:5 주판이 있었는데, 지금은 야마가타시 산시 마을에 있는 이제 롱지 컬렉션(Ize Rongji collection)에 있다. 일본은 또한 2:5 유형 주판을 사용했다.

4구슬 주판은 퍼져서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다. 일본 주판의 개량은 여러 곳에서 이루어졌다. 중국에서는 알루미늄 프레임 플라스틱 구슬 주판을 사용했다. file은 4구슬 옆에 있으며, "clearing" 버튼을 누르면 위쪽 구슬이 위쪽 위치에, 아래쪽 구슬이 아래쪽 위치에 놓인다.

주판은 휴대용 전자계산기가 널리 보급되고 실용성이 높아지고 저렴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에서 제조되고 있다. 소로반은 일본 초등학교에서 수학 수업의 일부로, 주로 암산 속도를 높이는 도구로 사용된다. 시각적 이미지를 활용하면 실제 계산기만큼 빠르게 계산을 완료할 수 있다.[24]

한국

[편집]

중국의 산판은 서기 1400년경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9][25][26][27] 한국어로는 주판, 수판, 주산으로 불린다.[28] 4구 주판(1:4)은 고려시대에 도입되었고, 5구(5:1) 주판은 명나라 때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해졌다. 이후 193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선보인 윗알 1개 · 아랫알 4개로 이루어진 주판을 들여와 사용하고 있다.

아메리카

[편집]
잉 키푸(quipu)의 표현
잉카인들이 사용하는 유파나(yupana).

일부 자료에서는 고대 아즈텍 문화에서 네포왈친친(nepohualtzintzin)이라고 불리는 주판을 사용했다고 언급한다.[29] 이 메소아메리카 주판은 5자리 20진법을 사용했다.[30] 네포왈친친(나와틀어: Nepōhualtzintzin, nepoːwaɬˈt͡sint͡sin)이라는 단어는 다음 어근으로 형성된 나와틀어에서 유래되었다.: "네(Ne)" - 개인 / "포왈(pōhual)" 또는 "포왈리(pōhualli)" ˈpoːwalːi - 계산 / "친친(tzintzin)" ˈt͡sint͡sin - 작은 유사한 요소. 즉, 이 단어의 완전한 의미는 작은 유사한 요소로 계산하는 것이다. 사용법은 칼메칵(Calmecac)에서 어린 시절부터 하늘에 대한 설명을 하는 데 헌신한 학생들이었던 "테말포우케(temalpouhqueh, temaɬˈpoʍkeʔ)"에게 가르쳤다.

네포왈친친은 막대 또는 중간 끈으로 구분된 두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뉜다. 왼쪽 부분에는 4개의 구슬이 있다. 첫 번째 줄의 구슬은 단위 값(1, 2, 3 및 4)을 가지고 있고 오른쪽에는 3개의 구슬이 각각 5, 10 및 15의 값을 가지고 있다. 위쪽 줄의 각 구슬의 값을 알기 위해서는 첫 번째 줄의 해당 카운트 값인 20(각 줄)을 곱하면 된다.

이 장치는 7개의 구슬이 달린 13개의 행, 총 91개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이 문화권의 기본 숫자였다. 그것은 자연 현상, 지하 세계, 그리고 하늘의 순환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나의 네포왈친친(91)은 일년 중 한 계절이 지속되는 일수를 나타내고, 두 개의 네포왈친친(182)은 옥수수의 파종에서 수확까지의 주기 일수를 나타내고, 세 개의 네포왈친친(273)은 아기의 임신 일수를 나타내고, 네 개의 네포왈친친(364)은 한 주기를 완료하여 1년에 근접했다. 현대 컴퓨터 산술로 번역했을 때, 네포왈친친은 부동 소수점에서 10에서 18까지의 순위에 해당했으며, 반올림은 허용되지 않았지만 크고 작은 양을 정확하게 계산했다.

네포왈친친을 재발견한 사람은 멕시코의 엔지니어 다비드 에스파르사 이달고(David Esparza Hidalgo)이다.[31] 그는 멕시코 전역을 여행하면서 이 악기의 다양한 조각과 그림을 발견했고, 그 중 몇 개를 금, 옥, 조개껍질 등으로 복원했다.[32] 매우 오래된 네포우알친친은 올멕 문화에 기인하며, 일부 팔찌는 마야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양한 형태와 소재로 만들어졌다.

산체스는 《마야의 산술(Arithmetic in Maya)》에서 유카탄반도에서 달력 데이터를 계산하는 또 다른 5진법, 4진법 주판이 발견되었다고 기록했다. 이 주판은 손가락 주판이었는데, 한쪽에는 0, 1, 2, 3, 4가 사용되었고, 다른 한쪽에는 0, 1, 2, 3이 사용되었다. 두 주기의 시작과 끝에 0이 사용된 점에 주목.

잉카의 키푸는 숫자 데이터를 기록하는 데 사용된 색깔 있는 매듭 끈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으로,[33] 고급 계수 막대와 유사하지만 계산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계산은 페루 정복 이후에도 여전히 사용되었던 유파나(yupana, 케추아어로 "계산 도구"를 의미함. 그림 참조)를 사용하여 수행되었다. 유파나의 작동 원리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1년 이탈리아 수학자 드 파스칼레가 설명을 제안했다. 연구자들은 여러 유파나의 형태를 비교함으로써 계산이 도구의 다른 필드에 대한 자릿값으로 피보나치 수열 1, 1, 2, 3, 5와 10, 20, 40의 거듭제곱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피보나치 수열을 사용하면 한 필드 내의 입자 수를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34]

러시아

[편집]
러시아 주판

러시아의 주판인 스쵸티(러시아어: счёты(스쵸트(러시아어: счёт)에서 유래한 복수형)는 일반적으로 기울어진 1개의 덱으로 되어 있으며, 각 줄에 10개의 구슬이 달려 있다(4분의 1루블 분수의 경우 4개의 구슬이 달린 줄이 하나 있다). 4개의 구슬로 된 줄에는 1916년까지 주조되었던 4분의 1코펙에 도입되었다.[35] 러시아 주판은 수직으로 사용되며, 각 줄은 수평으로 놓인다. 구슬을 양쪽에 고정하기 위해 줄은 보통 중앙이 위로 향하게 한다. 모든 구슬을 오른쪽으로 옮기면 주판이 꺼집니다. 조작할 때는 구슬을 왼쪽으로 옮긴다. 쉽게 볼 수 있도록 각 줄의 가운데 두 구슬(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구슬)은 보통 다른 여덟 개의 구슬과 다른 색으로 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수천 개의 줄(그리고 백만 개의 줄(있는 경우)) 중 왼쪽 구슬의 색도 다를 수 있다.

러시아 주판은 구소련 전역의 상점과 시장에서 사용되었으며,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사용법을 가르쳤다.[36][37] 1874년에 발명된 기계식 계산기인 오드너 산술계(Odhner arithmometer)조차도 러시아에서는 대체하지 못했다. 야코프 페렐만에 따르면, 러시아 제국으로 계산기를 수입하려던 일부 사업가들이 숙련된 주판 조작자를 보고 절망에 빠져 떠났다고 한다.[38] 마찬가지로, 1924년 이후 펠릭스 산술계(Felix arithmometer)가 대량 생산되었지만, 소련에서는 주판 사용이 크게 줄어들지 않았다.[39] 러시아산 주판은 1974년 국산 소형 계산기의 대량 생산 이후에야 인기를 잃기 시작했다.[40]

러시아의 주판은 1820년경 나폴레옹 군대에서 복무했고 러시아에서 전쟁 포로가 된 수학자 장빅토르 퐁슬레(Jean-Victor Poncelet)에 의해 프랑스로 전해졌다.[41] 주판은 16세기 서유럽에서 십진법 표기법과 알고리즘적 방법의 등장으로 사용이 중단되었다. 퐁슬레와 동시대 프랑스인들에게는 주판이 새로운 것이었다. 퐁슬레는 주판을 어떤 실용적인 목적이 아닌, 교육 및 시연 도구로 사용했다.[42] 투르크인과 아르메니아인은 러시아의 스쵸티와 유사한 주판을 사용했다. 투르크인들은 이를 쿨바(coulba)라고, 아르메니아인들은 코렙(choreb)이라고 불렀다.[43]

용도

[편집]

금융권에 컴퓨터가 도입되지 않았던 1990년 이전에는 은행 등에서 주판을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컴퓨터의 도입 후 주판은 완전히 사라졌다.

주판은 어린이들에게 수의 개념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용으로 주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평소 암산에 능통했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은, 주판을 이용한 계산에 통달하는 것은 단지 기계적인 훈련에 불과하며, 수를 아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하기도 했다.[44]

제조 업체

[편집]

대한민국에서 주판을 제조하는 업체는 여러 곳이 있으나, 시장 규모가 워낙 작아 모두 영세한 수준이다.

각주

[편집]
  1. ↑ Boyer & Merzbach 1991, 252–253쪽
  2. ↑ Ifrah 2001, 11쪽
  3. ↑ Crump 1992, 188쪽
  4. ↑ Melville 2001
  5. ↑ Carruccio 2006, 14쪽
  6. ↑ Smith 1958, 157–160쪽
  7. ↑ Carr 2014
  8. ↑ Ifrah 2001, 15쪽
  9. 1 2 3 Williams 1997, 55쪽
  10. 1 2 Pullan 1968, 16쪽
  11. ↑ Williams 1997, 55–56쪽
  12. ↑ Ifrah 2001, 18쪽
  13. ↑ Pullan 1968, 18쪽
  14. ↑ Brown 2010, 81–82쪽
  15. ↑ Brown 2011
  16. ↑ Huff 1993, 50쪽
  17. ↑ Ifrah 2001, 17쪽
  18. ↑ Fernandes 2003
  19. 1 2 “中国算盘 | 清华大学科学博物馆” (중국어). 《Department of the History of Science, Tsinghua University》. 2020년 8월 22일. 2021년 8월 8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21년 8월 8일에 확인함.
  20. ↑ Körner 1996, 232쪽
  21. ↑ Mollin 1998, 3쪽
  22. ↑ Gullberg 1997, 169쪽
  23. ↑ Williams 1997, 65쪽
  24. ↑ Murray 1982
  25. ↑ Anon 2002
  26. ↑ Jami 1998, 4쪽
  27. ↑ “abacus”. 2014년 5월 9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8년 5월 13일에 확인함.
  28. ↑ Anon 2013
  29. ↑ Sanyal 2008
  30. ↑ Anon 2004
  31. ↑ Hidalgo 1977, 94쪽
  32. ↑ Hidalgo 1977, 94–101쪽
  33. ↑ Albree 2000, 42쪽
  34. ↑ Aimi & De Pasquale 2005
  35. ↑ Sokolov, Viatcheslav; Karelskaia, Svetlana; Zuga, Ekaterina (February 2023). “The schoty (abacus) as the phenomenon of Russian accounting” (영어). 《Accounting History》 28 (1): 90–118. doi:10.1177/10323732221132005. ISSN 1032-3732. S2CID 256789240.
  36. ↑ Burnett & Ryan 1998, 7쪽
  37. ↑ Hudgins 2004, 219쪽
  38. ↑ Arithmetic for Entertainment, [[|야코프 페렐만Yakov Perelman]], page 51.
  39. ↑ Leushina 1991, 427쪽
  40. ↑ “The Abacus Today”. 《Mathematics in School》 4 (5): 18–19. 1975. ISSN 0305-7259.
  41. ↑ Trogeman & Ernst 2001, 24쪽
  42. ↑ Flegg 1983, 72쪽
  43. ↑ Williams 1997, 64쪽
  44. ↑ Surely You are Joking, Mr. Feynman, 1985, Richard Feynman

같이 보기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