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소 (삼국지)
조소(曹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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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9년 ~ 195년 |
사인 | 타살 |
성별 | 남성 |
국적 | 후한 |
별칭 | 조백남(曹伯南) |
자녀 | 조진 |
친척 | 조조(같은 항렬) |
조소(曹邵, ? ~ ?) 또는 조백남(曹伯南)은 중국 후한 말 사람이다. 조조를 위해 희생하였다. 고아가 된 아들 조진은 조조가 길렀다.
사망을 둘러싼 의문[편집]
조조가 거병할 때 무리를 모으다가 주군(州郡)으로부터 죽임을 당했다. 더 구체적인 사망 경위가 《위략》과 《위서》에 적혀있는데 서로 상이하다. 《위서》의 기술이 본전과 더 비슷하다.
위략[편집]
본래 성씨는 진(秦)이며 일찍이 조조와 친했다. 흥평 말 조조가 원술과 함께 도적을 치다가 거꾸로 추격을 당했다. 진씨에게로 도망가니 백남이 문을 열고 숨겨주었다. 도적이 조조의 행방을 묻기에 자신이라 답하고 대신 죽었다. 조조가 그 공을 기려서 조씨로 성을 고쳐주었다.[1]
위서[편집]
충성심이 두텁고 재주와 지혜가 있어서 조조가 매우 신임하였다. 초평 연간에 조조가 거병하려하자 무리를 모아 따라다녔다. 예주자사 황완이 조조를 죽이려 했지만 조조는 놓치고 조소만 죽였다.[2] 그런데 황완은 189년(중평 6년) 9월(음력)에 예주목에서 사도로 올라 중앙으로 불려갔고,[3] 조조가 동탁을 피해 동쪽으로 간 시기도 이때이다.[4] 그래서 초평은 중평의 오기이고 이때 있던 일이 아닌가 한다.[5]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 《삼국지》9권 위서 제9 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