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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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任那)는 임나가라(任那加羅) 혹은 임나국(任那國)이라고 불리던 고대 국가이다. 임나가 어느 나라를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견이 있다. 일본서기에 등장하여 가야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이에 관하여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가설[편집]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이다. 일본서기에는 임나와 축자국(築紫國)의 거리가 이천여리라 하였는데 축자국과 가야(김해) 지역의 거리가 대략 이천여리라는 것이다[1]. 광개토대왕릉비에 나오는 '임나가라(任那加羅)'[2]라는 표현을 근거로 임나는 곧 가라(가야)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鳳林寺眞鏡大師寶月凌空塔碑)[3]의 내용을 근거로 흥무대왕(김유신)을 임나왕족이라 보고 금관가야가 곧 임나라고 판단한다. 혹은 임나를 대가야(합천)로 비정하기도 한다. 임나를 가야와 동일시하여 한반도 내에 위치했다고 보는 것은 임나일본부설의 핵심 논거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임나와 가야는 별개의 용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역사서에도 임나를 가라의 별칭이라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임나가라의 가라는 나라(國)를 가리키는 일반명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에 쓰인 심희의 일대기에 근거한 서로 다른 해석[4]도 존재한다.

또한 일본서기의 임나 지리 설명을 근거로 임나의 위치를 대마도로 비정하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따르면 구야한국에서 대마도까지가 천여리, 대마도에서 일대국(현 이키섬)까지가 천여리, 그리고 일대국에서 말로국(末盧國, 현 마츠우라(松浦))까지가 천여리라고 하였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축자국에서 이천여리라면 가야 지역은 너무 멀다. 任那의 任이 '맡을 임'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맡라'라는 국명을 한자 任那로 표시했다는 추정도 있다. 일본서기 신공왕후 9년 여름 4월에는 매두라국(梅豆羅國)이 나오며 이것이 잘못 전해져 송포(松浦)가 되었다고 한다. 梅豆羅는 일본말로 メヅラ(medzura)로 읽는데 松浦의 일본어 음이 まつら(matsura)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말로국과 현재의 송포는 북큐슈 서쪽 해안에 위치한다.

일본서기에서는 임나를 여러 나라를 합쳐 부르는 말로 사용하기도 하였다는 해석도 있다.[5]. 공교롭게도 일본서기가 임나의 멸망을 기록한 562년에 삼국사기에서는 가야가 신라를 배반하여 왕이 이사부로 하여금 토벌케 하였다고 기록한다[6]. 만약 두 사건이 동일하다면 가야와 임나 모두 특정 지역의 국가집단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일본서기》 숭신천황(崇神天皇) 65년(기원전 33년) 7월, 任那者去筑紫國二千餘里北阻海以在鷄林之西南. 임나의 지리에 대한 설명인데 단순히 가야로 보기에는 모순이 있다. 축자국에서 이천여리 떨어져 있고 북쪽이 바다로 막혀 있으며 계림의 남서쪽에 위치한다고 했는데 이 세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지역은 한반도에 없기 때문이다.
  2. 『광개토대왕릉비』에 "뒤를 급히 쫓아 임나가라(任那加羅) 종발성에 이르니 성을 곧 되찾았다.(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城卽歸服)"는 내용이 나온다.
  3. 출전 :『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원문: 大師諱審希俗姓新金氏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每苦隣兵投於我國遠祖興武大王鼇山稟氣鰈水騰精握文符而出自相庭携武略而高扶王室▨▨終平二敵永安兎郡之人克奉三朝遐撫辰韓之俗 번역: 대사(大師)의 이름은 심희(審希)요, 속성은 김씨(金氏)이니, 그 선조는 임나(任那)의 왕족이요, 풀에서 성스러운 가지를 뽑았다. 이웃나라의 침략에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에 투항하였다. 먼 조상(遠祖)인 흥무대왕(興武大王)은 오산(鼇山)의 정기를 타고, 바다(鰈水)의 정기에 올라서, 문신의 길조를 잡아 재상의 뜰에 나왔고, 무신의 지략을 잡아 왕실을 높이 부양하였으며, 평생토록 ▨▨하여 두 적이 영원히 안정되고 토군(兎郡)의 사람들이 능히 세 조정을 받들어 멀리 진한(辰韓)의 풍속을 어루만졌다.
  4. 원문: 大師諱審希俗姓新金氏其先任那王族草拔聖枝每苦隣兵投於我國遠祖興武大王 번역: 대사(大師)의 이름은 심희(審希), 속성은 김씨(金氏)다. 그 선조는 임나(任那)의 왕족 草拔聖枝로, 매번 이웃나라 병사들로 괴로워하다가 우리나라의 원조(遠祖) 흥무대왕(興武大王)에게 투항하였다. 이 경우 임나와 금관가야는 별개의 국가가 되며 심희는 금관가야가 아닌 임나국의 후손이 된다.
  5. 《일본서기》 卄三年春正月新羅打滅任那官家[一本云卄一年任那滅焉]. 總言任那, 別言加羅國安羅國斯二岐國多羅國卒麻國古嵯國子他國散半下國乞飡國稔禮國合十國. 23년(562) 봄 정월 신라가 임나관가(任那官家)를 쳐서 멸망시켰다(어떤 책에는 21년에 임나가 멸망했다고 한다). 통틀어 말하면 임나요, 개별적으로는 加羅國, 安羅國, 斯二岐國, 多羅國, 卒麻國, 古嵯國, 子他國, 散半下國, 乞飡國, 稔禮國으로 모두 열 나라이다.
  6. 《삼국사기》 九月加耶叛王命異斯夫討之斯多含副之. 斯多含領五千騎先馳入栴檀門立白旗城中恐懼不知所爲異斯夫引兵臨之一時盡降. 진흥왕 23년(562) 가을 9월 가야가 반란을 일으키자 왕은 이사부로 하여금 토벌케 하고 사다함이 돕게 하였다. 사다함이 기병 5천을 거느리고 먼저 전단문에 들어가 흰 기를 세우자 성 사람들 전체가 두려워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이사부가 병사를 인솔해 도착하니 일시에 항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