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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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용(李燦容, 일본식 이름: 松川明義, 松川燦容, 1893년 1월 27일 ~ ?)은 일제 강점기의 관료로, 본적은 황해도 금천군 남면이다.

생애[편집]

1912년 3월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으며, 같은 해 8월 경상남도 사천군 서기로 임명되었다. 경상남도 재무부 서기(1912년 11월 임명)와 경상남도 울산군 서기(1913년 9월), 경상남도 김해군 서기(1919년 9월), 김해군 속(屬, 1921년), 창녕군 속(1923년), 경상남도 밀양군 속(1924년 3월 ~ 1928년 12월), 대구전매지국 사업과 속(1924년), 대구전매지국 밀양출장소 속(1925년 ~ 1928년)을 역임했다.

1928년 11월 16일 일본 정부로부터 쇼와 대례 기념장을 받았으며, 같은 해 12월 경상남도 합천군수로 임명되었다. 1929년 6월 조선박람회 경상남도협찬회 평의원으로 선임되었으며, 1932년 10월 1일 일본 정부로부터 조선 쇼와 5년 국세 조사 기념장, 1934년 3월 9일 훈6등 서보장을 받았다. 1935년 10월 1일 조선총독부로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표창과 은배 1조를 받았다.

경상남도 밀양군수(1935년 4월 임명)와 울산군수(1941년 5월 ~ 1943년 8월)로 재직하는 동안 밀양군 농회장, 국민총력밀양군연맹 이사장, 국민총력울산군수산연맹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1939년 10월 26일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서보장을 받았다. 밀양군수 재직 시절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 업무, 시국인식강연회·강습회·좌담회 개최를 통한 국방사상 보급 및 선전 업무, 국채 소화 및 저축 장려 업무, 국방헌금 모집 업무를 수행하는 등 일본의 침략 전쟁에 적극 협력했으며, 1940년 4월 29일 중일 전쟁에 협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쌍광욱일장을 받았다.

1941년 12월 27일 고등관 3등, 1942년 2월 16일 종5위에 각각 서위되었으며, 1943년 11월 19일 경상남도 동래군 북면 면장으로 임명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관료 부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고자료[편집]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2009). 〈이찬용〉.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4》. 서울. 433~4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