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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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모[1](李仁模, 표준어: 이인모, 1917년 8월 24일 ~ 2007년 6월 16일)는 조선인민군 언론인이다. 종군기자 출신으로, 1993년 3월 19일 남한에서 40년넘게 비전향 장기수로 있다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귀국을 희망하여 최초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된 사람이다.

생애[편집]

함경남도 풍산군 출신이다. 한국 전쟁조선인민군 종군기자로 참여했다가 대한민국 영역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34년간 복역하면서 전향을 거부하여 비전향장기수가 되었다. 한국 전쟁 당시 역할을 두고서는 대한민국의 재판 기록이 의용군 강제 모집이나 빨치산 활동을 적시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종군기자로서 전선 취재를 담당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어 양측에서 하는 주장이 상충한다.

1952년 빨치산 활동 중 검거되어 7년간 복역했고 1959년 출소했지만 1961년 6월 부산에서 지하당 활동혐의로 붙잡혀 15년형을 선고받아 '실형'을 살고도 두 차례나 더 복역하는 등 총 34년간 옥살이를 한 뒤 88년 석방된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자 북한은 1991년 9월 대남방송인 평양방송을 통해 이인모의 송환을 요구한다. 이후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 등에서 이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1993년 3월 19일 김영삼 정부에 의거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되었으며, 송환되고나서는 한국 전쟁 전에 혼인했던 부인과 딸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남아 있어 이들과 함께 생활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고 다부작 영화 《민족과 운명》에서 리인모의 삶이 소재로 다루어지고 '신념과 의지의 화신'으로 불리는 등 비전향장기수 첫 송환자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극진하게 대접받았다. 그러나 선전용 교화소를 둘러보고 나서 “나같은 사람은 이런 곳에선 단 3년도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발언을 한 후[1] 모든 선전활동이 중단된 채 고립돼 외롭게 죽었다는 주장이 있다.[2]

량강도의 리인모인민학교는 리인모의 이름을 따 개칭한 것이다. 유해는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3]

참고자료[편집]

연관 항목[편집]

각주[편집]

  1. 《뉴스파인더》 (2013.3.18) 북송됐던 리인모, 과연 행복했을까
  2. 《주간조선》 (2009.6.23) 억류 여기자 수감 북한 교화소는 어떤 곳: 고무방망이로 머리 때려 죽이고 여성 음부에 구두 닦는 '인간 지옥'
  3. 《중앙일보》 (2007.7.10) 한국 언론이 처음 가 본 북한 '열사릉'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