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리야마 고분 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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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타마현립 사키타마사적박물관 소장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의 앞면(왼쪽)과 뒷면(오른쪽)

이나리야마 고분 철검은 1968년 사이타마현 이나리야마(稲荷山) 고분에서 발견된 철검으로 1978년 X선을 이용하여 그 명문이 판독되었다. 칼의 앞뒤에 금으로 115자의 한자가 상감되어 있다. 1981년 중요문화재로, 1983년에는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사이타마 현립 사키타마 사적 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명문[편집]

(앞면) 辛亥年七月中記。乎獲居臣、上祖名意富比垝、其児多加利足尼、其児名互已加利獲居、其児名多加披次獲居、其児名多沙鬼獲居、其児名半互比、

(뒷면) 其児名加差披余、其児名乎獲居臣。世々為杖刀人首、奉事来至今。 獲加多支鹵大王寺在斯鬼宮時、吾左治天下、令作此百練利刀、記吾奉事根原也。

신해년 7월에 적는다.

오와케-오미(乎獲居臣), 시조의 이름은 오호-히코(意富比垝), 그 아들은 타카리-스쿠네(多加利足尼), 그 아들의 이름은 테요카리-와케(互已加利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타카히(하)시-와케(多加披次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타사키-와케(多沙鬼獲居), 그 아들의 이름은 하테히(半互比), 그 아들의 이름은 카사히(하)요(加差披余), 그 아들의 이름이 오와케-오미이다.

세세로 장도인(杖刀人)의 우두머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봉사하여 왔다. 와카타키로-오키미(獲加多支鹵大王)를 모시어 시키-미야(斯鬼宮)에 있을 때 나는 천하를 다스림을 도와서 이 백련리도(百練利刀)를 만들게 하였으니, 내가 봉사한 근원을 적는다.

해석[편집]

  • 와케(獲居)

과거 유력자를 부르던 칭호.[1]

  • 와카타키로-오키미(獲加多支鹵大王)

고대 일본의 역사를 채록한 『고사기』와 『일본서기』에 따르면, 456년부터 479년까지 즉위한 유랴쿠 천황(雄略天皇)의 이름이 오하쓰세-와카타케루-미코토(大長谷-若建-命/大泊瀬-幼武-尊)라고 한다. 앞서 1873년에 구마모토현에다후나야마 고분에서 발굴되었던 은상감 철검에는 '復□□□歯大王'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종래에는 반정천황의 이름인 미즈하(瑞歯)로 해석되었으나 이를 통해 '獲(加多支)鹵大王'으로 바로잡혔다.

  • 신해년 7월에(辛亥年七月中)

이에 따라 신해년은 유랴쿠 천황의 재위 기간인 471년으로 비정되지만, 혹은 문구를 새겨넣은 것이 '봉사의 근원'을 추억하기 위한 것이므로 그 사후인 531년으로 비정하기도 한다. 또한 중(中)은 이두식 문법에 따라 조사 '~에'를 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 시키-미야(斯鬼宮)

오늘날의 나라현 시키군에 있던 궁으로 추정된다.

  • 백련리도(百練利刀)

칠지도의 명문에 '백련철(百練鐵)로 만들었다'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백련(百練)은 쇠를 두드려 만들던 당시의 기술에 의해 좋은 철을 수식하는 어휘로 추정된다. 리도(利刀)는 예리한 칼이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