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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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중(尹毅中, 1524년 ~ ?)은 조선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남(海南). 자는 치원(致遠), 호는 낙천(駱川) 또는 태천(駘川), 이견당(理遣堂)[1] 등이다.[2]

생애[편집]

1548년(명종 3)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정원주서·저작 등을 거쳐 1553년 부수찬이 되고, 이듬해 검토관을 역임하였다. 1555년 일종의 안식년인 사가독서를 얻었다. 1557년 사인을 거쳤고 직제학, 형조참의 등의 벼슬에 올랐다. 1566년 호조참판에 올랐으며, 이듬해에는 안주영위사로써 명 사신을 맞았다. 그 후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였고, 다음으로 이조 참판에 임명되었다. 명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동서 분당 이후엔 동인의 입장에 섰다. 1572년 평안도 관찰사가 되었고, 1574년 대사간, 예조참판, 부제학을 거쳐 1581년 형조참판이 되었다. 1589년 정여립의 옥사가 일어나자, 동인의 지도자로서 정여립과 친하다는 이유와, 축재를 많이 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받았다가 광해군 2년에 복직하였다.

가족[편집]

  • 증조부 : 윤경(尹耕)
    • 할아버지 : 윤효정(尹孝貞)
      • 아버지 : 정랑 윤구(尹衢)
      • 어머니 : 임휴(任畦)의 딸

각주[편집]

  1. 金命時, 『撫松小說』, “理遣尹判書毅中”
  2. 윤의중 -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