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부스 아르미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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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코부스 아르미누스

야코부스 아르미누스(라틴어: Jacobus Arminius, 네덜란드어: Jakob Hermanszoon 야코프 헤르만스존[*], 1560년 10월 10일 ~ 1609년 10월 19일)는 개신교 종교 개혁 시대에 활동한 네덜란드의 신학자로 아르미니아주의(Arminianism), 네덜란드 저항파(Dutch Remonstrant) 운동의 기본이 되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반대하였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며 이중 예정론을 반대하였다. 1603년 레이던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로 근무했고 신학에 관한 많은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그가 죽은 이후에 네덜란드 개혁 신학자들은 칼빈주의의 5대 교리인 도르트 신조를 작성했다.

교육[편집]

야코부스 아르미누스는 말버그 대학교(1575)와 레이든 대학교(1576-1581), 바젤 대학교(1582), 칼빈이 세운 제네바 대학교(1582, 1584-1586)에서 공부하였다. 장 칼뱅의 후계자 테오도르 베자(Théodore de Bèze, 1519-1605) 에게 교육을 받았다.

활동[편집]

야코부스 아르미누스 1588년부터 1603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개혁파 목사로 사역했으며, 1603년부터 레이던 대학(Leiden University)의 신학 교수로 재임했다. 그는 예정과 자유 의지, 은혜, 속죄, 성도의 견인에 관해, 벨직 신앙 고백서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표현한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뱅의 가르침을 계승한 베자의 견해와 달랐다.

신학논쟁[편집]

당시 법률가인 디릭 코른헤르트(Dirck Coornhert, 1522-1590)라는 사람이 이중예정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이런 신학적 문제에 반박할 인물로 야코부스 아르미누스가 선임되었는데 오히려 그 자신도 설득을 당하여 칼빈의 이중 예정론에 반대적 사상으로 전환되었다. 1603년 야코부스 아르미누스는 라이덴 대학 신학부 교수로 취임한 후부터는 예정론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여 논쟁의 제공자가 되었다. 그때 그 대학의 신학부 교수였던 철저한 칼뱅주의자였던 프란치스코 호마루스(Franciscus Gomarus, 1563-1641)와 논쟁을 하였다.

그의 예정론[편집]

야코부스 아르미누스가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예정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배제한채 어떤 조건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보는 것이다. 또 타락전 예정론과 타락후 예정론 모두 반대하였다. 그는 예정이 아닌 예지를 주장하였다. 즉 구원의 결정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쁘신 의지가 아닌 그 주체가 인간의 의지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되는 구원에 인간이 스스로 반응하여 결단하는데 초점을 두었다.

참고문헌[편집]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