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카디르 칸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압둘 카디르 칸(우르두어: ‏عبد القدیر خان‎ 압둘 카디르 한, 1936년 4월 1일 ~ )은 파키스탄의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과학자다. 파키스탄은 칸 박사의 지도하에, 1998년 5월 최초의 핵실험에 성공해 이슬람권 최초의 핵보유국이 되었으며 파키스탄의 영웅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칸 박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다수의 국가에 핵확산을 한 혐의로 자택연금을 당하기도 하였다.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거래[편집]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1980년대 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원심분리기 설계도와 부품, 심지어 원심분리기 완제품 20여기와 관련 기술을 제공했다고 밝혔다.[1] 동일한 시기에 이란에도 원심분리기 등을 공급했다.[2]

미국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는 "칸 박사가 리비아에 판매한 중화인민공화국의 핵탄두 설계도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넘겼을 수도 있다"고 보았다.[3]

칸 박사는 파키스탄으로부터 우라늄 농축 핵프로그램(UEP)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를 지난 2000년 파키스탄 보안요원들의 감독 하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항공기에 선적,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했다고 밝혔다.[4]

칸 박사는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내 요청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거래를 응낙해 주았다"고 말했다. 파키스탄은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미사일을 획득한 것으로 전해졌다.[5] 부토 총리는 2007년 12월 총선 유세 도중 사망했다.

부토 전 총리의 측근이자 언론인인 시얌 바티아가 펴낸 책에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1993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국빈 방문할 때, 코트 주머니에 우라늄 농축기술이 담겨진 CD를 건네주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사일 기술을 들여왔다고 한 주장의 진위여부에 대해 칸 박사는 "그같은 말을 뒷받침할 만한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6][7]

핵탄두 소형화[편집]

칸 박사는 1999년 북한의 핵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영변과는 다른 쪽으로 안내됐으며, 정확한 방향은 모르지만 평양에서 한시간 거리의 지하 비밀시설에서, 탄도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플루토늄 소형화 핵탄두 3개를 직접 봤다고, 2004년 파키스탄 수사관들에게 진술했다.[8] 칸 박사는 북한의 핵무기를 목격한 뒤 공개한 첫번째 외국인이다.[9]

1998년과 1999년 평양 북서쪽 110 km 떨어진 평안북도 구성시에서 3~4차례 고폭실험이 실시되었다.[10] 평안북도 영변 서북쪽 40km 지점에 있는 평안북도 구성시 용덕동 고폭실험장에서 북한은 1970년대 부터 백여회의 고폭실험을 했다.[11]

고농축 우라늄[편집]

칸 박사는 북한이 2002년에 원심분리기 3,000대를 가동했다고 말했다. 연간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60kg을 생산하는 규모다.[12]

워싱턴포스트는 정보분석가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 자강도 하갑이 농축우라늄 핵무기 개발 장소로 꼽히고 있다고 보도했다.[13]

각주[편집]

  1. [1]
  2. [2]
  3. [3]
  4. [4]
  5. [5]
  6. [6]
  7. [7]
  8. 칸박사 "北核 장치 3기 봤다", 경향신문, 2004-04-13
  9. "핵장치 봤다", MBC, 2004.04.13
  10. 북한 '핵실험 준비설' 파장/ 미, 북 핵무기 ‘12기 정도' 추정, 한겨레신문, 2006.08.19
  11. 풍계리 핵실험장서 수상한 연기… 北 4곳 ‘이상동향', 동아일보, 2008.10.02
  12. “北 1990년대 초부터 우라늄 농축 핵개발”/WP 파키스탄 핵전문가 칸 박사 비공개 문건 보도, 세계일보, 2009-12-29
  13. "北 자강도 하갑서 核개발", 동아일보, 2002-10-19

관련 항목[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