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차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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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차녹

스티븐 차녹 (Stephen Charnock) (1628–1680)은 청교도, 영국 비국교도 독립파 목회자이다.[1] 차녹은 런던의 성 캐터린 크리 (St Katherine Cree) 교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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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녹은 캠브리지의 임마누엘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청교도 목사로서 그의 신앙의 여정의 출발점이 바로 임마누엘 칼리지에서의 공부였으며, 이곳에서 공부 중에 기독교 신앙을 더 심화하게 되었다. 칼리지를 떠난 후, 그는 아마도 개인 교사를 했을 것이라고 추정되며, 그 이후에 서더크에서 짧게 목회 사역을 했다.

1656년에 차녹은 아일랜드로 이동을 하게 되며, 그곳에서 그는 아일랜드의 통치자였던 헨리 크롬웰의 사제가 된다. 더블린에서 차녹은 규칙적으로 설교 사역을 하게 된다. 차녹은 이 설교 사역의 대상을 단순히 특정 계층에 집중한 것이 아니라, 교파를 초월하고, 사회적 신분을 뛰어넘는 포용력을 가진 설교를 하게 된다.

1675년에 차녹은 런던의 크로스비 홀 (Crosby Hall)에서 동사 목사 사역 (co-pastorship)을 시작한다. 이것이 그가 1680년 죽기 전까지 공식적으로 했던 목회 사역이었다.

저서[편집]

대부분의 차녹의 저서들은 그가 죽고 나서 출판되었다. 차녹의 주 저서로는 크로스비 홀에서 강연을 했던 시리즈를 모아서 출판한 Discourses upon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을 으뜸으로 친다.

국내에서는 다음과 같은 차녹의 책들이 번역되어 있다.

참고문헌[편집]

각주[편집]

  1. Hansang Lee (2009). “Trinitarian Theology and Piety: The Attributes of God in the Thought of Stephen Charnock (1628-1680) and William Perkins (1558-1602)”. 《p.11, 인용 [3] There has been a misunderstanding of Charnock’s denominational background that saw him as Presbyterian because he was a co-pastor with Thomas Watson at Crosby Hall from 1675 to his death in 1680. However, there is no literary evidence to support this assumption. According to Gribben’s and Seymour’s account of Irish Puritanism related to Charnock’s ministry in Dublin before the Restoration, he was arguably an Independent Puritan. See Crawford Gribben, The Irish Puritans: James Ussher and the Reformation of the Church (Darlington: Evangelical Press, 2003), pp. 110-5; St. John D. Seymour, The Puritans in Ireland 1647-1661 (Oxford: Clarendon Press, 1921).》 (A Thesis Submitted to New College, the School of Divinity of the University of Edinburgh, for th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