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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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宋昌植, 1900년 7월 4일 이천 ~ 1951년)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00년 7월 4일,경기도 이천에서 4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송창식이 11살 때 저혈압으로 떠나가 버렸고,어머니는 20살 때 췌장암으로 떠나가 버렸다. 송창식은 어린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바다에서 어장을 13년간 하며 시집,장가 다 보냈다. 그리고 경기도 김포에서 밭 700마지기와 논 23마지기를 간 적이 있는 송창식은 정미소도 차리며 300억이 넘는 수익을 벌었고 이후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 가입했으며 고향인 이천에서 2년간 국회의원을 했다. 퇴직한지 한달 후,6.25가 터졌다. 그가 정착한 경상남도 고성군에 인민군 20명이 난입해 송창식이 번 300억 또한 산산조각이 나고 정미소 또한 북측군의 폭격으로 인해 불에 타 날라갔고,경기도 김포에서 소유한 밭 700마지기 중 600마지기와 논 23마지기 중 19마지기는 소련군의 폭탄과 지뢰에 맞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송창식도 북한군 3명에게 지뢰 400개와 폭탄 900개를 맞고 8달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1951년에 죽음을 맞았다.

생전 송창식은 아내 성양욱(1905~1993)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낳았다. 장남 송익호와 차남 송익모를 제외하고 전부 남한에 남았다. 장남 송익호와 차남 송익모는 의용군에 입대했으며,삼남 송익구는 한국전쟁 때 육군일병과 주한통역관으로 참전했다.그는 한국전쟁 때 국가유공자를 인정받아 태극무공훈장과 표창장을 받았고,1959년 결혼해 4남 3녀를 두었으며,아내와 금슬이 좋다고 경남 고성에서 유명한 사랑꾼으로 불렸다. 아내 성양욱은 1953년부터 당뇨 합병증과 저혈압,간경화를 앓았고, 1955년 퇴행성 관절염 판정을 받고 1975년에는 암과 천식,1982년에는 패혈증과 치매,파킨슨을 앓았으며,삼남과 같이 살았다. 그리고 1989년,급성폐렴과 루게릭병,리트증후군,중풍을 앓다 1993년 세상을 떠났다.

역대 선거 결과[편집]

실시년도 선거 대수 직책 선거구 정당 득표수 득표율 순위 당락 비고
1948년 총선 1대 국회의원 경기 이천군 대한독립촉성국민회 10,383표
32.46%
1위 초선

참고 자료[편집]

전임
(초대)
제헌 국회의원(이천군)
1948년 5월 31일 - 1950년 5월 30일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임
이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