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헤자즈 정복
사우디의 헤자즈 정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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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의 통일의 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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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
헤자즈 왕국 | |||||||
지휘관 | |||||||
후세인 빈 알리 알리 빈 후세인 나우라스 파샤 | |||||||
병력 | |||||||
5,000명 |
500명[1] 8대의 수송기[2] | ||||||
피해 규모 | |||||||
모름 |
사망자 모름 장갑차 5대 파괴 1대의 수송기 파괴 | ||||||
총계 : 450명 사망 |
사우디의 헤자즈 정복, 또는 제2차 사우디-하심 전쟁은 사우디의 술탄 압둘라지즈 이븐 사우드가 하심가의 헤자즈를 차지하기 위해 1924년에서 1925년까지 벌인 전쟁으로서, 헤자즈가 정복당해 사우디 영토 안으로 편입되며 끝이 난다.
배경
[편집]1924년의 전쟁은 하심가의 헤자즈와 사우디 가문의 리야드 (네지드) 사이에 1919년의 1차 사우디-하심 전쟁에서 촉발된 역사적 갈등의 연장선이다.
전개 과정
[편집]헤자즈 왕국이 성지를 방문하기 위한 네지드 순례객의 입국을 허가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 번 네지드와 헤자즈는 전쟁이 시작하게 된다.[3] 1924년 8월 29일, 이반 사우드는 그의 군사들을 큰 충돌 없이 헤자즈의 타이프 방면으로 전격 시킨다.[3] 그리고 타이프의 함락에 따라, 사우디군과 이크완 부족 연합군은 메카로 이동한다.
그러자, 샤리프 후세인은 영국에게 지원을 요청하지만 영국은 종교적 문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하며 거절한다.[3]설상가상으로 트란스요르단의 압둘라 왕에게 요청한 지원 역시 거절되자, 후세인 빈 알리는 그와 동시에 메카에서 제다로 도피하였다. 그로 인해, 결국 메카는 1924년 10월 13일 큰 충돌 없이 점령되었다.[3]1924년 10월 29일 리야드에서 개최된 이슬람 회담에서 범이슬람 세계는 메카에 대한 이븐 사우드의 관할권을 인정한다.
사우디군의 진군과 함께 제다가 봉쇄되자, 헤자즈군은 와해되기 시작한다.[3]메디나는 1925년 12월 12일 결국 항복하고 얀부 역시 그로부터 12일 후 함락된다.[3] 1925년 12월 제다는 네지드의 술탄 압둘라지즈와 사우디 군에게 점령되었고, 도시의 지도자인 셰이크 압둘라 알리레자에 의해 빈 알리 왕, 압둘라지즈 술탄, 영국 영사 간 항복과 안전한 통행에 대한 논의가 오갔다. 그 후 1926년, 1월 8일 사우디 군은 제다에 입성했다.
결과
[편집]헤자즈 왕국을 성공적으로 정복함으로써,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는 자신을 헤자즈의 왕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 왕국은 이후에 이븐 사우드가 지도자인 네지드-헤자즈 왕국에 합병된다.
헤자즈의 왕 후세인은 키프로스로 도망가면서, 자신의 아들인 알리 빈 후세인을 헤자즈의 왕으로 선포했지만, 왕국이 몰락하면서 왕조 전체가 다 추방되었다. 허나 하심가는 여전히 트란스요르단 토후국과 이라크 왕국을 다스릴 수 있었다.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참고 문헌
[편집]- Al-Harbi, Dalal: King Abdulaziz and his Strategies to deal with events : Events of Jeddah. 2003, King Abdulaziz national library. ISBN 9960-624-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