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Tsunami/작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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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초 동맹[편집]

교토 후시미 데라다야 여관
사카모토 료마. 1866년 또는 67년에 우에노 촬영국(上野撮影局)에서 촬영되었다.

1866년 1월 8일, 고마쓰 기요가도(小松帯刀)의 교토 저택에서 기도와 사이고의 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교섭은 난항을 겪고있었다.[1] 료마는 1월 20일 시모노세키에서 [2]교토에 도착 하였으나 아직 맹약이 성립되지 않은것을 알고 경악했고, 기도에게 따지러 갔으나 기도는 '조슈 번은 더이상은 사쓰마 번에 머리를 숙일 수 없다'고 대답했다. [3] 그래서, 그날 밤 료마는 사이고를 설득하였고, 이를 통해 1월 22일[4]에 사쓰마 번은 사이고와 고마쓰, 조슈 번은 기도가 대표가 되어, 두 번은 료마가 입회한 상태에서 후에 삿초 동맹(薩長同盟) 이라고 불리는 맹약을 성립시켰다. 맹약 성립 후에도 기도는 사쓰마에 대한 불신이 강했고, 귀국 도중에도 료마에게 맹약 이행을 요구하고 있었다. 천하의 거대한 번들 끼리의 동맹에 일개 하찮은 낭인이 보증을 선 것이어서, 그가 얼마나 신뢰를 얻고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5]

맹약 성립 다음날인 1월 23일, 료마는 호위 역할이었던 조후 번(長府藩)의 번사 미요시 신조(三吉慎蔵)와 함께, 투숙했던 교토 후시미(伏見) 데라다야(寺田屋)로 돌아가 축배를 들었다. 그러나 그 시각, 후시미 부교(伏見奉行)가 료마를 포박할 준비를 하고있었다.[6] 새벽 2시 경, 1층에서 욕탕에 들어가있던 료마의 연인 료가 창 밖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고, 겹옷 한장만 걸친채로 2층으로 뛰어 올라가 두 사람에게 이러한 상황을 알렸다. 곧 다수의 포리(捕吏)가 여관에 침입했고, 료마는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에게서 받은 권총을, 미요시는 장창을 들고 맞붙었지만, 포리의 수가 너무 많아 료마는 양 손가락을 베이고, 두 사람은 여관 밖으로 탈출했다. 부상을 당한 료마는 재목장에 숨었고, 미요시는 나그네 차림으로 도망친 뒤 후시미의 사쓰마 번저에 숨어 구원을 청했다. 이 덕분에 료마는 삿초 양 번에게 구출되었다. 료마는 데라다야에서 있었던 사건을 12월 4일, 형 곤페이에게 보고했다.[7]

1866년 1월 8일, 고마쓰 다테와키의 교토의 저택에서 가쓰라 다로사이고 다카모리의 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회담은 난항을 겪고 쉽게 타결되지 않았다.[8] 龍馬が1月20日に下関から[9]京都に到着すると未だ盟約が成立していないことに驚愕し、桂に問い質したところ、長州はこれ以上頭を下げられないと答えた[10]。 そこで、その夜に龍馬は西郷を説き伏せて、これにより薩長両藩は1月22日[4]に薩摩側が西郷と小松、長州は桂が代表となり、龍馬が立会人となって列席して、後世薩長同盟と呼ばれることになる盟約を結んだ。盟約成立後も桂の薩摩に対する不信感は根強く、帰国途中で龍馬に盟約履行の裏書きを要求している。天下の大藩同士の同盟に一介の素浪人が保証を与えたものであって、彼がいかに信を得ていたかがわかる[5]

盟約成立から程ない1月23日、龍馬は護衛役の長府藩士・三吉慎蔵と投宿していた伏見寺田屋へ戻り祝杯を挙げた。だがこの時、伏見奉行が龍馬捕縛の準備を進めていた[11]。 明け方2時頃、一階で入浴していた龍馬の恋人のお龍が窓外の異常を察知して袷(あわせ)一枚のまま二階に駆け上がり二人に知らせた。すぐに多数の捕り手が屋内に押し入り、龍馬は高杉晋作から贈られた拳銃を三吉は長槍をもって応戦するが、多勢に無勢で龍馬は両手指を斬られ、両人は屋外に脱出した。負傷した龍馬は材木場に潜み、三吉は旅人を装って伏見薩摩藩邸に逃げ込み救援を求めた。これにより龍馬は薩摩藩に救出された。寺田屋での遭難の様子を龍馬は12月4日付の手紙で兄権平に報告している[7]

龍馬が不在の長崎の亀山社中では1月14日にユニオン号購入で活躍した近藤長次郎(上杉宗次郎)が独断で英国留学を企てて露見し自刃させられる事件が起きていた。事件を知らされた龍馬は『手帳摘要』に「術数はあるが誠が足らず。上杉氏(近藤)の身を亡ぼすところなり」[12]と書き残しているが、後年のお龍の回顧では「自分がいたら殺しはしなかった」と嘆いたという[13]

寺田屋遭難での龍馬の傷は深く、特に左手人差し指が曲がらなくなり、以後、それが理由で写真撮影などでは左手を隠していることが多いのではないかと指摘する人もいる。[14]。 西郷の勧めにより、刀傷の治療のために薩摩の霧島温泉で療養することを決めた龍馬は2月29日に薩摩藩船・三邦丸に便乗してお龍を伴い京都を出立した。3月10日に薩摩に到着し、83日間逗留した。二人は温泉療養の傍ら霧島山日当山温泉塩浸温泉鹿児島などを巡った。温泉で休養を取ると共に左手の傷を治療したこの旅は龍馬とお龍との蜜月旅行となり、これが日本最初の新婚旅行とされている[15]

5月1日、薩摩藩からの要請に応えて長州から兵糧500俵を積んだ「ユニオン号」が鹿児島に入港したが、この航海で薩摩藩から供与された帆船ワイル・ウエフ号が遭難沈没し、土佐脱藩の池内蔵太ら12名が犠牲になってしまった。幕府による長州再征が迫っており、薩摩は国難にある長州から兵糧は受け取れないと謝辞し、ユニオン号は長州へ引き返した。

6月、幕府は10万を超える兵力を投入して第二次長州征伐を開始した。6月16日に「ユニオン号」に乗って下関に寄港した龍馬は長州藩の求めにより参戦することになり、高杉晋作が指揮する6月17日小倉藩への渡海作戦で龍馬はユニオン号を指揮して最初で最後の実戦を経験した[16] [17]。 龍馬はこの戦いについて戦況図付きの長文の手紙を兄・権平に書き送っている[7]

長州藩は西洋の新式兵器を装備していたのに対して幕府軍は総じて旧式であり、指揮統制も拙劣だった。幕府軍は圧倒的な兵力を投入しても長州軍には敵わず、長州軍は連戦連勝した。思わしくない戦況に幕府軍総司令官の将軍・徳川家茂は心労が重なり7月10日大坂城で病に倒れ、7月20日に21歳の短い人生を終えた。このため、第二次長州征伐は立ち消えとなり、勝海舟が長州藩と談判を行い9月19日に幕府軍は撤兵した(小倉口では交戦が続き和議が成立したのは翌慶応3年1月23日)。

  1. 마쓰우라 레이, 위의 책, 165~167쪽
  2. 유니온 호 소유권 문제를 해결하러 갔다. 마쓰우라 레이, 위의 책, 166쪽
  3. 마쓰우라 레이, 위의 책, 170~171쪽
  4. 1월 21일 이라는 설도 있다. 마쓰우라 레이, 위의 책, 175쪽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mstutyou01"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5. 여전히 삿초 동맹은 료마 최대의 공적이라고 불리지만, 실제로는 사이고나 고마쓰 등 사쓰마 번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는 설도 있다.(아오야마 타다마사(青山忠正) 등) 그리고 삿초 연합을 완수하는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후, 아오야마를 시작으로, 간바시 노리마사(芳即正), 미야케 쓰구노부(三宅紹宣), 미야치 마사토(宮地正人), 다카하시 히데나오(高橋秀直), 사사키 스구루(佐々木克)등의 연구자를 중심으로 삿초 동맹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삿초 동맹 연구의 활동에 대해선, 기리노 사쿠진(桐野作人)《동맹의 실상과 료마가 수행한 임무는? 》(同盟の実相と龍馬の果たした役割とは?) (2006년, 신 역사 군상 시리즈 4(新・歷史群像シリーズ 4) 《유신창세 사카모토 료마》, 학연 출판사(學硏パブリッシング))에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mstutyou02"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6. 상경한 즈음 회견했던 오오쿠보 이치오(大久保一翁)에게 경계를 당하고 있었다. 《미요시 신조 일기》(三吉慎蔵日記)
  7. 미야지 사이치로(宮地佐一郎) 지음 (2003년), 《료마의 편지》(龍馬の手紙), 고단샤 학습문고(講談社學術文庫), 237~243쪽. 인용 오류: 잘못된 <ref> 태그; "tegami"이 다른 콘텐츠로 여러 번 정의되었습니다
  8. 마쓰우라 레이(松浦玲) 지음, 황선종 옮김 (2009년), 《사카모토 료마 평전》, 더숲, 96~98쪽. ISBN 9788996279556
  9. ユニオン号所有権問題の談判を行っていた。松浦玲『坂本龍馬』(岩波新書、2008年)p.92-94
  10. 松浦玲『坂本龍馬』(岩波新書、2008年)p.96-97
  11. 上京した際に会見した大久保一翁から警句されていた。『三吉慎蔵日記』
  12. 原文「術数有余而至誠不足、上杉氏之身ヲ亡ス所以ナリ」 坂本龍馬 (in 일본어). 위키문헌. 
  13. 川田瑞穂『千里駒後日譚』(明治32年)千里駒後日譚 (in 일본어). 위키문헌. 
  14. 『坂本龍馬伝』p.42
  15. 小松清廉が先であるという異論もある。「日本初の新婚旅行は小松帯刀?通説“龍馬”に異論登場」読売新聞 2008年10月16日
  16. 松浦玲『坂本龍馬』(岩波新書、2008年)p.110-112
  17. 『維新土佐勤王史』などの記述をもとに龍馬本人は実戦には参加せずに陸上で観戦していたとする説もある。『坂本龍馬歴史大事典』(新人物往来社、2008年)p.110-117、『坂本龍馬と海援隊』(新・歴史群像シリーズ 20)(学研パブリッシング、2009年)p.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