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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Triican/용두산 화재 (1954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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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산 화재 사건(1954년 12월 26일)

용두산 화재 사건 혹은 3차 부산 화재는 1954년 12월 26일 부산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용두산 판자촌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이다.

당시 부산은 전쟁으로 인해 피난민이 몰려든 탓에 화재에 취약한 상태였고 그러하기에 이 용두산 화재 사건 이전에도 동년 12월 10일에 용두산에서 화재 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었고 그 이후로도 1955년 ㅁㅁ의 부산역 화재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54년 12월 26일의 용두산 화재 사건은 12월 10일의 용두산 화재 사건과 1955년의 부산역 화재 사건과 달리 기록이 매우 소략한 편이다. 다만 후술할 대규모 문화재 전소로 인해서 조선왕들의 어진 등에 큰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오늘날에도 간간히 화자되는 화재 사건이 되었다.

경위[편집]

12월 26일의 용두산 화재는 12월 10일의 용두산 화재나 부산역 화재와 달리 국회에서 자세한 보고가 제공되지 않았다. 사건으로부터 몇개월이 지난 4월과 7월의 속기록 발언을 보면 당시 의원들도 신문 기사로 사건을 파악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구황실사무총국 산하 문화재 전소[편집]

이 화재 사건이 오늘날까지 화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당시 국립국악원 창고가 전소하는 과정에서 약 3400여점의 구황실 소유 문화재가 전소되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피해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바가 없다.

1960년 구황실사무총국 서고가 전소해서 다른 구황실 재산목록과 더불어 40권 분량의 유물대장이 소실되었다고 하는데 이로써 이 유물대장과의 대조로 소실된 유물들의 목록을 재구성할 수 없다.

다만 당시 기사나 국회 속기록을 참고하면 문교부와 대통령에게 유물대장과의 대조를 통해 소실된 유물의 목록이 작성되었던 정황이 파악된다. 당시 문교부장관이었던 이석근은 1955년 4월 21일의 국회 회의에서 굉장히 구체적인 수치인 3256점의 유물이 소실되었다고 언급한다.

또한 당시 치안국에서 현재 소실된 유물대장과 비교한 조사를 착수했다고 하는데

제67회 국무회의록에서도 3차 부산 화재와 국보 소실 정황에 대한 보고가 언급된다.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