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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Onlyasu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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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파일:Asunarologo.jpg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로고
약칭아수나로
유형NGO (비정부 기구)
형태연맹
위치
  •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2가 57-4 2층
활동 지역대한민국
공식 언어한국어
웹사이트http://asunaro.or.kr


대세는 저항하는 청소년! 청소년 인권행동 아수나로 위키백과 계정입니다.



아수나로????!?!???[편집]

아수나로는 간단히 말하면 청소년인권단체입니다. 학생인권단체도 아니고, 청소년인권동아리도 아닙니다. 아수나로는 모든 청소년이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이 중심이 되어 직접 행동을 통해 잘못된 것을 바꿔나가는 단체 입니다.

처음 아수나로를 접하시는 분들은 ‘아수나로’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아수나로’라는 단체 이름에 대해 설명을 간단히 드리자면, ‘아수나로’는 일본의 소설가인 ‘무라카미 류’의 소설, ‘엑소더스’에 나오는 단체의 이름입니다. 소설 ‘엑소더스’에서 청소년들은 ‘아수나로’라는 이름의 단체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국가를 세웁니다. ‘아수나로’의 사전적인 의미는 “측백나뭇과의 상록 교목”, 그러니까 나무 이름이고, ‘불멸’, ‘불사’의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수나로’라는 이름이 때로는 ‘아나수로’, ‘아수라장’, ‘아수나라’, ‘아수나루’ 등으로 잘못 불리기도 합니다. ^^;


주장하는 것, 지향하는 것들[편집]

아수나로는 단순히 법이나 조약 같이 문자로 표시된 인권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발칙하고 넓은 범위의 인권을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에게만 밤늦게까지 게임을 못하게 하도록 한 심야온라인게임규제 조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청소년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이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인 냥 말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합니다.

아수나로는 청소년의 인권을 억압하는 사회의 체제나 ‘구조’에 반대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많은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두발규제만 보아도 단순히 교사들이나 교장이 나빠서 학생들의 머리를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 시절을 지나오면서 좀 더 다루기 쉬운 ‘국민’을 만들기 위해 국가에서 개인을 통제하려는 음모가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두발규제는 경쟁 위주의 교육제도와 결합하면서 ‘머리를 자유롭게 하면 공부를 못한다.’는 해괴한 논리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수나로가 모든 인권 문제는 다 제도 때문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인권 문제를 얘기할 때, 제도나 사회의 구조를 얘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사회를 통째로 바꾸는 것보다 급한 인권침해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기도 하고, 사회 구조나 제도적인 부분만 고쳐서는 인권이 보장받기 어려운 점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수나로는 청소년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신’ 싸워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 대신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해준다는 말에도 반대합니다. 청소년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만 하는 많은 권리들은 청소년들의 손으로 직접 얻어나가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인적 자원도 미래의 주인도 아닌, 이미 자신의 주인이고 사회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짧은 듯하면서 은근히 긴, 아수나로의 역사[편집]

2004~05년


많은 사람들이 아수나로 카페가 만들어진 날을 보고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때가 2005년 1월인 줄 착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아수나로는 2004년 말에 만들어졌습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청소년인권행동’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였습니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는 2004년 이전부터 각기 다른 단체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던 피터, 혁수, 제엠, 꿈틀이 등이 청소년인권운동의 이론적인 부분과 노하우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때는 스무 살을 넘겨버린 활동가들이 청소년활동가들에게 지원을 하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무렵의 활동은 두발자유 운동에 참여하거나 청소년보호법 개정에 반대하는 활동이다가, 2005년 말에 들어서는 전주나 수원 등에서 직접 행동을 통한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2006년

약 1년 간 ‘청소년인권연구포럼’으로 활동하던 아수나로는 ‘스무 살을 넘긴 활동가들의 청소년운동에 대한 지원’이라는 활동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2006년 2월, 4명이 모인 총회에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명칭과 활동 방향을 바꾸기로 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만들어졌던 지부는 서울지부와 진주지부 정도였지만, 2006년 한 해 동안 울산, 광주, 부산 등지에서 지부가 만들어졌습니다. 2006년의 주요 활동은 4월 두발자유 거리 캠페인과 5.14 두발자유 집회, 양동중학교 학내시위 대응, 두발자유를 위한 자전거시위, 서울동성고 1인 시위, 학생인권법 통과를 위한 활동 등이 있습니다. 특히 8월 14일부터 5일간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파란만장 청소년인권 전국행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2007년


2007년은 좀 더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다운 틀을 잡아간 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월에 서울에서 있었던 총회에서 아수나로의 활동 방향과 지향점 등을 담은 회칙과 기본원칙이 만들어지기도 했고, 아수나로 내에서 혹시 일어날 수도 있는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내규도 만들어졌습니다. 각 지역모임(지부)들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간 때였습니다.

초반에는 특정 대학에 합격한 것을 알리는 현수막을 철거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었고, 강제야자에 반대하는 버튼을 비롯한 각종 전단지와 물품들이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1인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기도 했고, 4월 14일엔 꽤나 잘 알려진 ‘4.14 미친학교를혁명하라’ 집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07년은 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학내시위가 서울, 울산 등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국기에 대한 경례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고, 8월 부산에서는 체벌로 인해 숨진 학생을 추모하고, 청소년인권의 개선을 요구하는 집회가 아수나로 부산지부의 주최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2007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학생의 날을 맞아 학생인권 보장 6대 요구안 제시, 입시폐지·대학평준화운동에 참여, 대선에서의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활동 등을 했습니다.

2008년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됨에 따라 매우 바빠질 것으로 예상되었던 해였고, 실제로 학교자율화조치와 일제고사의 부활 등 교육 관련 이슈들이 쏟아져 나오고, 5월에 촛불항쟁이 시작되면서 굉장히 바쁘고 힘들었던 해였습니다. 특히 2008년 5월부터 8월까지 이어졌던 촛불항쟁은 많은 청소년들이 아수나로를 알게 되고,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2008년은 <머리의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를 발간하기 위한 작업이 ‘아수나로book'이란 이름으로 시작된 해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2008년은 아수나로가 CMS후원을 도입하기 시작한 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CMS후원을 받게 됨에 따라 좀 더 안정적인 재정 운용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의 주요 활동을 꼽자면, 5월 촛불항쟁이 시작되면서 서울, 부산, 울산 등에서 진행된 ‘5.17 청소년 행동의 날’ 집회, 8월 부산·울산·경남 청소년인권 대행진 ‘이유 있는 반항’ 등이 있고, 서울지역에서는 교육감 선거를 맞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요구하며 ‘캐발랄 젊은 후보 기호 0번 청소년’이 직접 출마 선언을 하고,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10월에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활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2008년부터의 활동들은 주로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는 활동들이 되었습니다만, 7월에 경남 마산에서 학내시위를 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학내 인권 보장을 위한 활동도 있었습니다.

2009년

2008년에 이어 2009년도 아수나로가 했던 대부분의 활동들은 교육 관련 이슈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이런 걸 ‘이슈파이팅’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슈파이팅이 많아지면서 2006년이나 2007년까지 꾸준히 해오던 청소년인권 관련 활동들을 놓치게 된 점이 없잖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슈파이팅으로 인해 새로운 활동회원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2009년의 주요 활동은, 서울에서는 20년 만에 청소년들이 농성을 하기도 했으며, 각 지역에서도 나름대로 활발하게 일제고사로 인한 폐해와 인권침해를 알리는 활동을 했습니다. 경남에서는 그린마일리지(상·벌점제)와 학교 내 휴대전화 규제 조례에 반대하는 활동을 7~10월에 걸쳐 진행하였고, 그린마일리지와 휴대전화규제조례 모두 무력화시키는 성과를 냈습니다. 특히 휴대전화규제조례의 경우 울산, 제주, 서울 등으로 파장이 확대되면서 전국적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슈파이팅 부분을 뺀 활동이나 성과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가 아수나로의 활동가들과 아수나로가 아닌 개인 활동가들의 참여로 2년여의 작업 기간을 거쳐 메이데이 출판사를 통해 전국 서점에 정식으로 출판된 것이 있습니다. 또한 학내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매뉴얼인 <스쿨어택>이 만들어져, 학내에서 활동을 생각 중인 회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학생인권 상황이 어떻게 변했는지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2010년 상반기~

2010년에는 경남중부, 부산에서 활동하던 활동가들이 대학 진학으로 인해 서울을 포함한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됨에 따라 그 지역의 활동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2009년 9월에 새로 생긴 수원지부가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2010년 상반기의 주요 활동으로는, 초·중·고 12년 여 간 감옥 같은 학교에서 살다가 졸업을 하게 된 활동가들이 두부를 먹는 퍼포먼스를 진행하였고, 3월 및 7월 일제고사와 경쟁교육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였습니다.

아수나로의 미래, 전망[편집]

아수나로는 남한에서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현재로선 거의 유일한 ‘전국 단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의 향상을 위해 해오던 일이나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수나로의 미래는 그렇게 어둡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2010년 6월에 있었던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여러 곳에서 ‘진보교육감’이 당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진보교육감’들이 하나같이 ‘학생인권조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해서 그들이 학생들의 인권을 잘 보장해줄 거라고 믿고 기다리고 있거나 하진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육운동을 하는 사람이든 누구든, 청소년들 스스로 행동하고 저항하고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아수나로의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학생인권조례처럼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는 것 말고도 학생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학교 안에서의 활동과 그 지원, 학생 아닌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들을 짜임새 있게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수도권 외의 지역에서 지역모임을 만들어서 꾸준히 활동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아수나로가 성장해서 조금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서는 기존의 활동회원들뿐 아니라 새로 가입해서 매우 지루하고 긴, 이 글을 읽고 있는 신입회원 분들의 역할이 큽니다. 그리고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것은 하지 않겠지만, 학교나 자신이 생활하는 곳곳에서 청소년인권을 위해 고민하고, 행동하려는 청소년들의 역할도 큽니다. 청소년들이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직접 행동하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