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Mar del Este/왕조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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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조 연합[편집]

1360년 경의 이베리아 반도 정치 양상

레콘키스타가 계속되면서 기독교 계통의 왕국과 소세력이 산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한다. 15세기 경에 그 중 가장 강한 세력은 카스티야 왕국으로 중북부 지방을 차지했으며 북동쪽을 차지한 세력은 아라곤 왕국이었다. 두 왕국은 현재의 포르투갈, 프랑스 및 다른 지역에 존재했던 다른 왕국들과 연합을 이루고 있었다. 1474년 카스티야 왕국의 헨리 5세가 죽자 왕좌를 놓고 세력 다툼이 일어나 포르투갈과 프랑스 세력이 지지하는 조아나 라 벨트랑헤라와 카스티야 귀족과 아라곤 왕국이 지지하는 이사벨라 1세 여왕이 다툼을 벌이게 된다. 카스티야 계승전쟁을 거치면서 이사벨라 여왕이 왕좌에 오르고 페르디난드 2세와 함께 부부가 왕권을 쥐게 된다. 이사벨라 여왕은 부군보다 훨씬 더 강한 왕권을 행사했다.

카스티야 왕국의 이사벨라 여왕과 아라곤 왕국의 페르디난드는 "가톨릭 군주"로 일컬어지기도 하며 이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하사한 별칭이기도 하다. 1469년 바야돌리드에서 결혼해 스페인 왕국의 성립을 위한 작업에 착수하면서 근대 스페인 역사의 기틀을 닦게 된다. 두 사람이 맺은 동맹관계는 실질적으로 각 지역의 정치, 사법구조는 그대로 두는 양상을 띠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지방자치와 정치 각각에 있어 스페인 사회가 별도로 독립된 계기를 주었다. 레콘키스타의 마지막 단계로 무어인의 영역과 그라나다를 정복했고 카나리아 제도를 영토로 삼았다. 알람브라 협약 하에 스페인은 유대인과 무슬림을 추방했으며 무슬림의 영향력은 문화 전반에 남는다. 크리스토발 콜럼버스의 항해시대로 스페인 사회에는 엄청난 부가 흡수되기 시작했으며 유럽 대륙에서 2세기 넘게 가장 강대국으로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스페인어와 대학[편집]

13세기 현재 스페인 지역에서 여러 언어가 사용되고 있었으며 카스티야어, 아라곤어, 카탈루냐어, 바스크어, 갈리시아어, 아스투리아스어, 레온어 등 많은 언어가 사용됐다. 그러나 시간을 거치면서 카스티야어가 카스티야 왕국의 문화와 대화 전반적인 영역을 차지하며 주류 언어로 성장한다.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디난드 3세가 왕좌에 머무르며 그의 말기에 이르자 카스티야어가 공식 문서에 사용되기 시작했고 카스티야의 알폰소 5세 대에 와서는 공식 언어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모든 번역물도 라틴어가 아닌 카스티야어로 작성돼 대중에 공표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13세기 수많은 대학들이 레온과 카스티야에서 설립도기 시작하면서 살라만카 대학교가 유럽의 최초 대학교 중 하나로 설립됐다. 1492년 가톨릭 군주의 지원 하에 카스티야어의 문법 초판이 출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