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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KYPark/이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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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립자 물리학과 핵무기 제조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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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소 박사의 경기고 후배이자 그가 재직할 무렵 스토니브룩의 뉴욕주립대학을 다닌 오명 건국대 총장은 그의 자서전《30년 후의 코리아를 꿈꿔라》(2009)에서

"벤저민 리 박사는 어디까지나 이론물리학자였다. 평생 실험실에서 소립자물리학을 연구한 그가 핵무기 개발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소립자물리학은 물질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소립자가 무엇이며, 이들 사이에 어떠한 힘이 작용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소립자물리학이 핵(核)의 구조를 연구하는 학문이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핵무기와 혼동해서 말을 만들어낸 것 같다. 소립자물리학은 핵무기 개발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

이라고 말했다. 또, KBS 다큐멘타리 《이휘소의 진실》(2010.04.30 - 05.01)에서도, 이휘소는 소립자 분야의 이론물리학자이므로 핵무기 개발에 관여했을 리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런데...

이휘소는 60년대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로버트 오펜하이머 소장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론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제2차 세계 대전중에 원자폭탄 연구소 소장으로서 맨해튼 계획의 선봉장이었다.

또, 이휘소는 힉스 메커니즘으로 유명한데, 1967년 스티븐 와인버그압두스 살람은 이것을 셸던 글래쇼약전자기력 이론으로 끌어들이는 획기적인 표준모형을 제안하였다. 이 세 사람은 이 이론적 발전의 공로로 1979년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1] 그중 파키스탄 출신의 압두스 살람은 국제 이론 물리 센터 소장으로서 특히 1972-77년중 파키스탄의 핵무기의 이론적 설계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한편,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을 자극한 인도의 핵무기 개발의 대부 호미 예한기르 바바 인도 원자력 위원회 회장도 원래 이론물리학자였다. 1966년 1월 24일에 그가 타고 가던 인디아 항공 소속 보잉 707 여객기가 몽블랑 산 근처에서 아마 조종사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추락하면서 사망하였는데, 이 사고에 대해서도 미국 중앙 정보국 관련 음모론이 제기되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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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만일 이휘소가 살아 있었다면 세 사람까지만 공동 수상이 가능한 노벨상의 수상자는 누구누구 되었을까? 이것은 DNA 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이바지한 네 사람중 로절린드 프랭클린이 요절한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