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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Jiseok0409/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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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통일공원[편집]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봉서2리 360-1

건립 개요[편집]

6.25전쟁 당시 산화한 국군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1973년 6월 파주읍 봉서리에 조성된 연면적 12,558평의 공원이다. 

휴전회담 당시 유엔종군기자센터가 자리 잡고 있던 문산역 근처 통일공원에는 6.25의 참극을 전 세계에 보도하기 위해 한국전선에 종군했다가 순직한 서울신문 한규호 기자를 비롯 미국(10명), 프랑스(2명), 영국(4명), 필리핀(1명) 등 국내.외 18명의 종군기자를 위로하는 한국전 순직 종군기자 추념비가 있다. 

이 밖에 6.25 당시 혈전을 벌이다 순직한 육탄 10용사 충용탑 및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이유중 대령, 김만술 소위 기념상 등이 세워져 있다. 통일공원을 건립한 목적은 육군 제1사단 근무중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영령을 추모하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장소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룩한 사단 장병들의 높은 감투정신을 후세에 널리 전하기 위해 건립하였다.[1]

건립 경위[편집]

제 1사단은 6.25사변 당시 개성, 문산지역 전투에서 청사에 길이 빛나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이 찬란한 전공을 위해 용전분투하다 호국의 신으로 장렬하게 산화한 1사단 출신 2385명의 호국 영령에 대한 명복을 기원하고 그 숭고한 애국 애족의 정신을 영원히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59년 2월 경기도 파주군 월롱면 위전리에 최초로 충현탑이 건립되었으나 통일로의 확장으로 일부 지역이 절단되었다. 당 사단이 10년이 지난 1971년 3월에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와서 미 제7보병 사단 예하 제79 포병대대가 주둔했던 지난날의 격전지인 이곳에 총 면적 12558평에 달하는 통일공원 조성 계획을 세워 1972년 4월 10일 착공, 연 인원 5230명, 덤프트럭 265대, 도저18대, 씨멘트 1250포, 관상수 4000여본 등 총 경비 500여만원(2017년 10월 기준 약 83,495,000원)으로 통일공원을 완공함과 더불어 충현탑을 이전 개수 건립하고 6.25사변 23주년을 맞이하여 역대 사단장 및 연대장을 모시고 이에 197년 6월 25일 제막식을 갖는다. ―제 21대 사단장 준장 박학수―

기념비[편집]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편집]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 전공비

건립개요[편집]

1950년 6월 25일 동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국군이 낙동강까지 후퇴하여 국제연합군의 지원으로 1950년 9월 28일에 서울을 수복하고 계속 북진을 거듭하여 통일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뜻밖에 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으로 인하여 1950년 12월 하순에는 중공군의 정월 대공세 작전으로 아군의 임진강 방어선이 무너지고, 두번쨰로는 1.4후퇴로 인하여 서울이 재차 함락하는 불리한 전세였을 때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는 문산 지역에 지대본부를 설치하고 의정부, 동두천지역에는 미 제 3사단 파견대를 비롯 6개 파견대로 편성되어 적 후방 깊숙이 침투하여 중공군 제63군, 제64군에 대한 주요작전계획을 탐지, 보고하여 연합군의 3월 대반격작전(리타)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데 기여함으로써 미제8군으로부터 영웅부대로 인정받아 지대장을 역임한 김동석 대령이 영웅으로 추대되었으며, 특히 문산파견 대장인 김진수 중위는 휘하 무장공작대원들과 함께 대통령특명으로 휴전회담을 방해, 파괴하라는 특별지시를 받고 판문점 휴전회담장을 수차례 걸쳐 기습작전을 지휘, 감행하여 판문전 전시설 등을 파괴하여 회담을 지연스켰으며, 도평리 지역으로 새로 배치되는 중공군 8명 및 관측군관, 통신군관을 생포하여 아군 작전에 필요한 주요 기밀 첩보를 수집하였으며, 1951년 6월에는 문산파견대를 비롯 전지대 파견대를 지휘하여 고량포에 주둔 중이던 인민군 제4사단 사령부를 기습하여 기밀문서수집과 싸이카, 차량 등 다수의 군수물자를 획득하였으며, 대덕산에 주둔 중이던 인민군을 기습하여 수명을 생포하고 다량의 군수물자를 노획하는 등 수많은 작전을 통하여 적군 포로 40여명을 생포 또는 귀순시키는 전과를 올리는 와중에서 아군측 동료들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여 그들의 빛나는 공적을 기리며 명복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 전공비를 세웁니다.

정보[편집]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5-2-78

관리자 : 대한민국HID제1지대특수요원전우회

건립년도 : 2004년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편집]

파주 통일공원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파주 통일공원 한국전 순직종군기자 추념비

건립개요[편집]

6.25 당시 종군기자들의 프레스선터였던 문산역의 [평화열차]가 내려다 보이는 유서깊은 취재현장에 세워진 이 비는 한국전쟁을 전세계에 보도하다 희생된 국내외 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전국 일선 기자들의 성금과 사회 각계의 지원금에 의해 건립됐다. 이 비의 설계와 조각은 홍익대 최기원 교수가 맡았으며 비문은 유광열, 홍종인, 최석채, 윤종현씨등 1명의 언론인이 작성했다.

비모양[편집]

이 비는 타자기 모양의 화강암으로 된 받침대 위에 저널리스트의 머리 글자 'J'자를 딴 탤리타이프 종이가 높이 솟아있으며 비 윗부분에는 승리의 월계수와 기자정신을 상징하는 펜을 쥔 손과 한국전쟁을 뜻하는 지구의가 조각돼 있다.

추모행사[편집]

한국기자협회는 매년 추모비 건립일인 4월 27일 당시 종군 기자들을 비롯한 언론계 인사들을 초청하여 이 땅에 고귀한 생명을 바친 국내외 종군기자 18명의 영령을 추모하고 그들의 기자정신을 기리고 있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97년 4월 27일

건립자: 한국기자협회

규모: 기단높이 1.4M, 높이 10M 부지면적 25평

살신성인탑[편집]

파주 통일공원 살신성인탑
파주 통일공원 살신성인탑

건립개요[편집]

2000년 6월 27일 10:47분경, 육군 제1보병사단 수색대대장 이종명 중령(전임)과 설동섭 중령(후임)은 대대장 임무 인수인계차 DMZ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19명의 부대원과 함께 수색작전 중 미상의 지뢰폭발로 설중령이 두 다리를 잃게되고 이중령과 수색 3중대장 박영훈 대위가 파편상을 입게 되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이 발생하자 이중령은 자신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부상자들의 신속한 조치와 부하들의 안전을 고려하여 "너희들은 들어오지 마라! 위험하니 내가 들어가겠다. 후송헬기를 신속히 요청하라!"며 다시 설중령을 구하기 위해 혼자서 들어가다가 자신도 지뢰를 밟아 두 다리를 잃게 되었다.

이렇게 두 다리가 모두 절단된 극한 상황에서도 두 대대장은 더 이상의 부하희생을 막기 위해 "위험하니 들어오지 마라! 내가 기어나가겠다." 라고 부하들의 접근을 막았으며, 자신들의 피묻은 총과 철모를 끌어안고 기어나오는 초인적인 희생정신을 보여주었다. 이는 소총과 철모를 두고 나올 경우 부하들이 다시 들어가 장비를 회수할 때의 위험까지 고려한 것이다. 또한 두 대대장은 후송되는 동안에도 "부하들은 다친 사람이 없는가?", "부대에 누를 끼쳐 정말 미안하다." 는 말을 되뇌이며 의식을 잃었다.

이러한 이들의 행동은 평소부터 몸에 배어 있었던 군인정신과 부하 사랑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참군인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육군은 이 뜻을 영원히 귀감으로 삼고자 이 탑을 세우고 「살신성인탑」으로 명명하였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2006년 10월 19일


충현탑[편집]

파주 통일공원 충현탑
파주 통일공원 충현탑

건립개요[편집]

6.25당시 문산 전투에서 산화한 육군 제3270부대 장병 2385명에 대한 호국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하고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1972년 12월 1일 육군 보병 제1사단에서 이 탑을 건립하였다.

[비문] "붉은 무리 탱크를 앞세우고 임진강을 넘어 오던 날 오직 죽음 하나로 지켰던 내 조국, 그날 1사단이 4반세기의 성장 후에 주인으로 돌아와 통일의 지름길 위에 가신 님의 거룩한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여기 통일공원에 단을 세우다."

정보[편집]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관리번호 : 15-2-23

건립자 : 육군 보병 제 1사단

관리자 : 육군 보병 제 1사단장

건립년도 : 2004년


소위 김만술상[편집]

파주 통일공원 소위 김만술상
파주 통일공원 소위 김만술상

건립개요[편집]

6.25 자유수호 전쟁 당시 1953년 7월 연천 북방의 베티고지에서 불과 1개 소대의 병력으로 중공군 2개 대대를 맞아 생사를 초월한 필승의 신념으로 최후까지 싸워 물리쳐 세계 전쟁사의 유래가 없는 대승을 거두어 국군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과시한 보병제 1사단 11연대 2대대 6중대 김만술 소위의 베티고지 혈전 신화를 기념하고자 1996년 12월 4일 고 기만술 소위 흉상을 건립하였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96년 12월 4일






이유중 대령 기념비[편집]

파주 통일공원 이유중 대령 기념비
파주 통일공원 이유중 대령 기념비

건립개요[편집]

이 기념비는 천상천하 제 1보병사단 12연대 3대대장 이유중 대령의 투철한 군인정신을 높이 찬양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고 이유중 대령은 1980년 겨울 DMZ에서 수색정찰작전을 수행하던 중 생명까지 위태로운 중상을 입었다. 그러나 그는 작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으므로 병원에 가지 않고 부상당한 몸으로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더욱이 작전이 종료되었을 때 곧바로 병원에 갔어야 했으나 부대가 안전하게 복귀할 때까지 지휘하다가 치료의 시기를 놓쳐 순직하였다.

이는 평상시 조국을 사랑화는 마음, 군인의 책임정신, 솔선 수범적 근무태도를 그대로 나타낸 것이다. 그는 항상 '너의 칼이 짧으면 그만큼 한발 앞으로 나가라/ 어떠한 어려움도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다.' 이라는 말을 가슴에 갖고서 부대를 지휘하였다.

고 이유중 대령이 보여준 숭고한 정신과 솔선수범적 태도는 모든 군인의 귀감이며, 국가와 군발전의 초석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81년 12월 23일



임광빈 중령 기념비[편집]

파주 통일공원 임광빈 중령 기념비
파주 통일공원 임광빈 중령 기념비

건립개요[편집]

고 임광빈 중령은 1989년 4월 24일 보병 제11연대 1대대 작전장교로 보직되어 우수하게 근무하던 중 동년 8월 22일 '89을지훈련'기간 적 주력 섬멸 전투 훈련 중 임진강에서 부대원을 안전하게 도하시킨후 자신은 급류에 의해 순직 하였다. 이에 고인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살신성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1989년 11월 29일 여기에 기념비를 세웠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89년 11월 29일









육탄십용사충용탑[편집]

파주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충용탑
파주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충용탑

건립개요[편집]

1949년 5월 송악산 전투에서 박겨포탄을 안고 적기관총 진지에 몸을 던져 장렬하게 산화함으로서 나라를 지킨 보병 제1사단 11연대 육탄 10용사의 충혼을 위무하고 이분들이 보여준 살신구국의 군인 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자 육군 전하사관의 후원으로 1980년 5월 3일 건립하였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80년 5월 3일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편집]

파주 통일공원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파주 통일공원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건립개요[편집]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에서 해방과 동시 국토의 절반인 38선 이북이 공산화되고 김일성의 학정이 날로 심해 인간의 기본권리인 자유마저 빼앗기게 되자 함경남도 풍산군에서 반공 청년들이 서북광복동지회를 조직하고 1. 우리는 공산당을 타도한다 2. 우리는 민주사회의 역군이 된다 3. 우리는 자주독립을 쟁취한다. 는 강령 아래 개마고원 일대에서 대 공산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들의 전력이 날로 강해지자 당황한 공산집단은 많은 병력을 동원하여 소탕전을 개시하였다. 이 전투로 희생된 투사의 수가 200여명에 이르렀다. 투사들은 굴하지 아니하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계속 항쟁하다가 1.4후퇴로 일부는 남하하고 일부는 공산치하에서 끝내 자유의 빞을 보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한민국정부는 이들의 투철한 반공사상과 애국심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본 위령탑을 건설하였다.

정보[편집]

건립년월일: 1987년 6월 24일

파주 통일공원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비문


편의시설[편집]

족구장, 테니스장, 간이운동시설, 쉼터, 화장실, 편의점 등 여러 편의시설이 있다.

  1. “통일공원(파주)”. 2017년 11월 28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