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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음악은 서양음악의 대칭(對稱)으로, 그것은 보통 (1)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2) 인도네시아·타이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3)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아시아, (4) 아랍·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아라비아·이슬람 문화권으로 대별된다. 중국은 일찍이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 즉 5도와 4도를 거듭하여 12율(律)을 결정하였고, 아악(雅樂)과 당악(唐樂)을 산출하였으며, 한국·일본·몽고·베트남은 중국음악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의 '아악', 일본의 '가가쿠', 베트남의 '냐냑'은 모두 중국의 '야유에(雅樂)'를 자기 나라 발음으로 부른 것으로, 중국음악문화의 영향을 엿보게 한다. 인도네시아와 타이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의 음악은 무용·연극에 많이 쓰이는 점과 선율타악기(旋律打樂器)를 쓰는 점에서 공통된다. 인도네시아의 합주 가믈란(gamelan)에서는 목금(木琴)의 감방 카이유(gambang kayu)와 뚜껑 덮은 사발 모양의 징(鉦)인 감방 강사(gambang gangsa)가 사용되고, 타이의 피파트(pi phat)에서도 그 두 악기와 같은 콘웡(khon wong)과 라나트(ranat)가 쓰이고, 크메르의 합주음악에서도 타이의 악기와 같되 이름이 다른 콘톤(khon th n)과 로네아트(roneat)가 사용된다. 인도의 음악은 한 옥타브(octave)를 22스루티(sruti)로 잘게 쪼개고, 음계(音階) 비슷한 선율형(旋律型)인 라가(raga)가 수십종 있는데, 그것들은 각각 우주와 관계가 지어졌고, 리듬 체계를 가진 탈라(tala)는 일례를 들면, 7박이 3박+2박+2박으로 되어 있듯이, 2박과 3박을 혼합 사용하고 있고, 또 연주악기는 지속(持續) 저음(低音)인 드론(drone)을 수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끝으로 아라비아·이슬람 문화권은 터키 그리고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근동(近東)지방과 모로코·알제리 등의 북아프리카 연안지방을 포함하나 이스라엘만은 예외인데, 이 문화권 안의 음악은 그 정밀한 음악이론과 사용악기에서 공통점을 보여준다. 일찍이 10세기의 알 파라비(Al Farabi)의 <악서(樂書, kitab al musiqi al kabin)>는 4도를 거듭하여 한 옥타브 안에 17율(律)을 정하였고, 인도의 라가(raga)에 해당이 되는 마캄(maqam, 근래 아랍에서는 나람(nara'm), 페르시아에서는 다스트가(dast­gah)라고 부른다)은 파라비시대부터 쓰인 말인데, 이런 여러 가지 마캄은 우주와 관련시켜졌고, 리듬형을 가리키는 아랍의 이카트(iqa'at)는 페르시아의 다릅(darb)·이집트의 두룹(durub), 터키의 우술(usul), 북아프리카의 마짐(mazim)과 같은 것인데, 그것은 일례를 들면 8박을 4박+4박으로 보지 않고 3박+3박+2박으로 본다. 서양의 류트(lute)와 같은 우드(ud)란 현악기는 아랍·이란·터키에서 모두 쓰이고, 낫카라(naqqara)와 다라붓카(darabukka)라는 북들은 아라비아·이슬람 문화권 안의 음악에서 널리 쓰인다. 또 해금(奚琴) 같은 북아프리카의 케만자(kemanja)는 터키에서는 케만(keman)이라 하고 아랍에서는 레밥(rebab)이라고 하는데, 그것들도 아랍·이슬람 문화권 안의 음악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음악, 인도네시아와 타이를 중심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음악, 인도를 중심으로 하는 남아시아의 음악과 아랍·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아라비아·이슬람 문화권의 음악은 각각 다른 특징을 가졌으나, 그 네 문화권의 공통점 즉 동양 여러 나라 음악의 일반적 공통점은 첫째로 다성음악(多聲音樂)이 아니고 단선율(單旋律)을 쓴다는 점이다. 그러나 순선율음악이라는 이유로 동양음악을 다성음악인 서양음악에 비하여 원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 하면 서양음악에서 단선율을 쓰는 그레고리언 찬트(Gregorian chant)를 원시음악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동양음악은 대체로 성악을 주로 한다. 따라서 기악에서 그리고 다성음악에서 낼 수 없는 미분음(微分音)을 살린다. 셋째로 박절법(拍節法)이 2박 3박을 한데 섞어 쓰고 3박 또는 2박 한가지로 시종(始終)하지 않는 것이다. 끝으로 동양음악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전통을 고수하나, 이와 반대로 서양음악은 창작한 것을 악보에 그리고 개성을 강하게 표현한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 수(隋)의 양제(煬帝)는 "곡(曲)을 많이 타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같다. 책을 많이 읽으면 책을 지을 수 있는 것같이, 곡을 많이 타면 곡을 지을 수 있으니, 이것은 자연의 이치이다"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동양에서도 전통을 고수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곡을 짓는 활동이 있던 것을 말해 준다. 다만 서양음악에서는 대개 악상(樂想)을 전개할 것을 설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의식적으로 창작하는 데 비하여 동양음악에서는 오랜 연주경험의 힘으로 기존곡과 다른 새 곡이 생긴다 <李 惠 求>

중국음악[편집]

中國-音樂 중국의 음악은 그 이론과 악기 면에서 주변의 여러 나라, 즉 한국·일본·베트남·타이 등의 음악에 큰 영향을 주었다. 중국 역사의 장구함과 영토의 광대함, 그리고 50여 소수 이민족을 포함하는 점을 감안할 때 한마디로 중국 음악이라 해도 그것은 매우 다종다양(多種多樣)하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한(漢)민족을 중심으로 한 중국 음악의 발자취를 살피기로 한다.

중국음악의 역사[편집]

中國音樂-歷史 중국의 음악은 태고(太古)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체로 네 가지 발달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즉 태고 때부터 4세기까지 한민족의 고유음악이 점차 발달하여 독자적인 형식을 낳은 고유음악의 시대, 수(隋)·당(唐) 시대에 서역(西域)을 통하여 인도·이란·그리스 등의 음악이 흘러들어 중국 고유의 형식과 융합되어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된 국제음악의 시대, 그 후 전란시를 거치고 송(宋)과 특히 명(明) 시대에 고래(古來)의 음악의 부흥을 꾀함과 더불어 생겨난 희곡(戱曲)의 전성기인 국민음악의 시대, 그리고 현대의 서양음악의 영향을 받은 현대음악의 시대가 그것이다.

고유음악의 시대[편집]

은(殷, ?-기원전 1100) 시대의 음악은 전설적으로밖에는 알려지지 않았으며, 다음의 주(周, 기원전 1100년-256) 시대에 칠현(七絃)악기가 나타나고 문무(文舞)·무무(武舞) 같은 무용형식이 생겼다. 또 <시경(詩經)>이 편찬되고, '풍(風)', '아(雅)', '송(頌)'의 악식(樂式)이 성립되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청동기(靑銅器)가 쓰였으므로 많은 종(鐘)이 만들어졌으며, 삼분(三分) 손익법(損益法)에 의하여 음계(音階)의 기본인 오성(五聲)과 십이율(十二律)이 정해져서 중국 음악의 기틀이 잡혔다. 다음의 한(漢)시대에 이르러서는 악극(樂劇)의 규모가 더 커지고, 아악(雅樂)을 관장하는 대악서(大樂署)가 생겨, 궁중 제사에 사용되는 종묘악(宗廟樂)이 제도적으로 확립되었다. 한(漢)의 무제(武帝) 때 비파(琵琶)·호궁(胡弓)과 같은 이란계의 악기가 서역(西域)에서 수입되어 초기 중국의 음악은 한층 내용이 풍부해졌다.

삼분손익법

三分損益法 주대(周代)의 고전 『관자(管子)』에 나타나 있는 음계음을 구하는 방식. 어떤 길이의 피리가 내는 음을 바탕음(基音) '궁'으로 잡으면, 그 길이의 3분의 1을 줄인(3분의 1의 損) 길이의 피리의 음은 궁보다 완전 5도가 높은 음 '치(徵)'이며, 징을 내는 피리 길이의 3분의 1을 더한(3분의 1의 益) 길이의 피리가 내는 음은 징보다 완전 4도가 낮은 음 '상(商)'이다. 다시 '상'의 3분의 1을 줄여 '우(羽)'를 얻고, '우'의 3분의 1을 더하여 '각(角)'을 얻는다. 이렇게 얻어진 '궁', '상', '각', '치', '우'의 음계를 5성(五聲)이라 부르고, 이 삼분손익의 방법을 더 반복하여 얻어지는 황종(黃鐘)·대려(大呂)·태족·협종(夾鐘)·고선(姑洗)·중려(仲呂)·생빈·임종(林鐘)·이칙(夷則)·남려(南呂)·무사(無射)·응종(應鐘)의 음계를 12율(十二律)이라고 부른다.

국제음악의 시대[편집]

남북조(南北朝) 시대에는 북방민족이 화북(華北)을 제압하고 한민족은 양쯔강 남쪽으로 이동하여 모두 여러 조(朝)를 겪었는데, 그간 남조의 나라들은 주로 중국 고유의 아악(雅樂) 및 속악(俗樂, 淸商三調 등)을 전하고, 북조는 당시의 인도 및 이란의 문화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달한 서역(西域) 여러 나라의 악무(樂舞)를 수입하여 이것을 중국 고유의 음악에 융합하기를 힘썼다. 후에 북조에서 일어나 중국을 통일한 수(隋)나라(581-619)는 이들 서역의 음악과 중국 고유의 음악을 합쳐서, 내용과 원산지에 따라 칠부기(七部伎)로 나누어 궁중의 향연악(響宴樂)을 삼았다. 후에 이 칠부기에 소륵(疎勒, 카시가르)과 강국(康國, 사마르칸드)의 기를 더하여 9부기(九部伎)가 됨으로써 그 국제적 성격이 더욱 강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종묘(宗廟)의 제악(祭樂)인 아악과 함께 향연악으로서의 9부기가 융성하였다. 다음의 당대(唐代, 618-907)는 주변의 여러 나라를 속국(屬國)으로 하는 공전(空前)의 대제국을 이룩하였으며, 이들 속국의 악무가 모두 중앙에 끌어들여져서 대규모의 음악이 행해졌다. 이리하여 태종(太宗, 627-649) 때에는 앞서의 9기에 그 중의 문강기를 없애는 대신 연악기(燕樂伎)와 고창기(高昌伎, 투르판국)를 더하여 10부기로 하였다. 이 당시에 만들어진 진왕파진악(秦王破陣樂)은 그 규모와 화려함에 있어 전무후무한 것이었으며, 그 성명(盛名)은 멀리 인도에까지 떨쳤다. 이 당시 아악(雅樂)은 당하(堂下)에서 연주되는 악현(樂縣)과 당상(堂上)에서 연주되는 등가(登歌)의 2개의 관현악을 갖추어 연주되었고, 팔일(八佾)의 무용은 무무(武舞)와 문무(文舞)로 이루어졌다. 궁중에는 늘 수천의 악인(樂人)이 옹(擁)되고 있었으며, 대관현악에 쓰이는 악기는 수십 종에 이르렀다. 현종(玄宗, 712-756)은 이러한 관현악법을 향연악에도 응용하여, 향연악을 입부기(立部伎)와 좌부기(左部伎)로 갈라서 연주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성대(盛大)하던 당대 악무도 당나라가 망하자 갑자기 쇠퇴하여, 5대를 거친 후 송(宋)에 겨우 그 일부분이 전해졌다. 오늘날의 중국에서는 당대의 악무는 그 편영(片影)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고려조는 송으로부터 그 일부를 수입하고, 이조(李朝)에 들어와서는 여러모로 연구를 거듭하여 당의 아악의 옛모습을 많이 살리게 되어, 이것을 이왕가(李王家)의 종묘(宗廟) 및 문묘(文廟)의 악무로 삼아왔다. 해방 후 한국정부의 육성책에 의하여 그 연구가 더욱 진행되고 있다.

향연악響宴樂

주로 왕가(王家)의 제사에 쓰인 음악을 아악(雅樂)이라 부름에 대하여, 주로 향연에 연주되는 음악을 향연악(響宴樂)이라 부른다. 당(唐)대의 향연악은 그 규모·형식·내용에 있어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대(盛大)한 것이었다.

7부기七部伎

수(隋) 시대의 향연악은 서역(西域)의 음악을 많이 도입한 것이었는데, 그것을 원산지별로 특색을 살려서 일곱 종류로 나누어 연주하였으므로 7부기라고 불렀다. 그 내용은 ⑴ 국기(國伎)인 청상기(淸商伎), ⑵ 서량기, ⑶ 고려기(高麗伎, 고구려), ⑷ 천축기(天竺伎, 인도), ⑸ 안국기(安國伎, 부하라국), ⑹ 구자기(龜玆伎, 쿠차국), ⑺ 문강기(文康伎)이다. 7부기 중 4부기가 외족의 음악으로 되어 있다.

입부기와 좌부기立部伎-座部伎

현종 때 향연악에 쓰이던 관현악법으로, 입부기는 당 아래에 선 채 연주되고 좌부기는 당 위에 앉은 채 연주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입부기로 연주되는 음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⑴ 안악(安樂)-성무(城舞)라고도 불리고 가면을 사용함.⑵ 태평악(太平樂)-오방사자무(五方獅子舞)라고도 불림.⑶ 파진악(破陳樂)-무무(武舞)임. ⑷ 경선악(慶善樂)-문무(文舞)임.⑸ 대정악(大定樂)-파진악에서 파생된 것임.⑹ 상원악(上元樂)⑺ 성수악(聖壽樂)-140인의 무자(舞者)가 '성(聖)'자를 비롯한 16글자의 형상을 만들면서 추는 자무(字舞)임.⑻ 광성악(光聖樂)-상원악과 성수악을 겸한 것임.좌부기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⑴ 연악⑵ 장수악(長壽樂)⑶ 천수악(天授樂)⑷ 조가만세악(鳥歌萬歲樂)⑸ 용지악(龍池樂)⑹ 소파진악(小破陳樂)

근대 국민음악의 시대[편집]

수·당시대에 극성(極盛)하던 음악과 무용도 몽고의 침입으로 쇠퇴해 버리고, 국민간에는 송시대부터 싹트기 시작한 시취(戱曲)가 세력을 펴기 시작하였다. 원(元) 시대(1271-1368)에 와서는 여러 북방의 음악과 악기를 도입한 잡극(雜劇)이 성행하여 원곡(元曲)의 명칭으로 국민의 애호를 받았다. 명대(明代, 1368-1644)에 이르러 태조(太祖)는 아악의 부활을 꾀하였으나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다만 속악(俗樂)을 따서 향연악을 새로이 만들었다. 또한 이 시기에 주재육(朱載堉)은 그의 <율려정의(律呂精義)>(1606)에서 세계 최초로 12평균율을 산출하였다. 민간에서는 속악이 성행하였고, 그 일부가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가야금·피리·퉁소의 음악으로서 항간에 퍼졌다. 시취로서는 난징(南京) 부근의 곤산(崑山)지방에서 생겨난 퀀취(崑曲)가 여타의 시취를 누르고 널리 유행되었다. 청(淸, 1636-1912)의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는 음악의 융성에 힘을 써, 향연악에 수십 종의 악기를 등장시키는 등 위용을 보이기는 하였으나, 그 내용에서는 세계적 가치를 가지는 수·당대의 예술에 비길 수 있는 것을 이룩하지는 못하였다. 민간에서는 삼현(三絃)·호궁(胡弓)·피리·비파(琵琶)·퉁소·목금(木琴) 등으로 연주하는 합주곡(合奏曲)이 유행하고 있었다. 한편, 시취는 대단히 성행하여 각지에서 그 지방 특유의 형태를 이룩하였으며, 청조(淸朝) 중기에 안후이(安徵)의 얼황취(二黃劇)와 후베이(湖北)의 시피취(西皮劇)가 북경(北京)에 들어와, 이것이 통합되어 경극(京劇)이라는 이름 아래 오늘날까지 성행하고 있다.

주재육朱載堉(17세기)

명(明)시대의 음악이론가. 주재육은 예로부터 음악의 전통이 무너진 것을 한탄하여, 그 당시까지의 악리(樂理)·악기·무용 등에 관한 학설을 정리 연구하여 <악리전서(樂理全書)>를 저술하였다(1606). 이 책에 포함되는 <율려정의(律呂精義)>는 특히 중요한 것으로, 이 책에서 그는 세계 최초로 12평균율을 산출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경극京劇

경극은 청(淸)시대 중기에 각 지방에서 성행하던 시취(戱曲) 중 안후이(安徵) 지방의 얼황챵(二黃腔)과 후베이(湖北)지방의 시피챵(西皮腔)이 북경에 들어온 후 융합되어 이룩된 것으로, 중국의 전통적 고전극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취戱曲

음악·무용·드라마의 삼자가 유기적으로 일체가 되어 있는 중국의 고전적 가극을 말한다. 멀리 원(元)의 원곡(元曲)에서 명(明)의 퀀취(崑曲), 청(淸)의 얼황취(二黃劇), 방즈취를 거쳐 근래의 경극(京劇)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지방에 따라 각기 내용과 형식을 달리해 종류가 많고 명칭도 수백을 헤아릴 정도이나, 대체로 종합예술이며, 노래를 중시하며 대중적이라는 점에서 모두 시취에 포함시킬 수 있다. 따라서 중국음악의 시대적 구분에서의 제3기인 근대국민음악의 시대는 또한 시취 전성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현대음악[편집]

대만에는 원주민인 고사족(高砂族) 20여만이 중앙 산지에 거주하는데, 이들은 구금(口琴)·피리·비적(鼻笛)·활(弓)과 같은 악기를 써서 주로 즉흥적인 노래를 하는 원시적인 음악을 가지고 있다. 한편, 국민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한민족(漢民族)은 주로 푸젠성(福建省)에서 이주하여 푸젠어를 쓰는 층과 주로 광둥성(廣東省)에 이주하여 광둥어를 쓰는 층으로 이루어지며, 푸젠어를 쓰는 푸젠성 특유의 것(御前淸曲 등)과 북경어를 쓰는 가곡(京劇曲 등)이 연주되는데, 경극곡 등은 일명 북관(北管)이라고도 불리며, 푸젠어를 쓰는 노래는 일명 남관(南管)이라고도 불린다. 아악과 같은 고전은 주로 중화국악회(中華國樂會)에서 연주되며, 농민들 사이에서는 사브량(雜念)이라고도 불리는 민요와, 남녀가 서로 창화(唱和)하는 쇼메이라는 민요가 애창되고 있다. 한편 도시의 청년층에는 서양음악의 영향을 다분히 받은 대중가요가 널리 불리고 있다.

북관과 남관

北管-南管 북경어를 사용하는 경극 등의 음악은 그 악기를 흔히 소나·루오(?)·구(鼓) 등과 같은 북방의 것을 쓰므로 북관(北管)이라고도 부르고, 푸젠셍 계통의 음악은 뒁샤오(洞簫)·비파(琵琶)·산셴(三絃)·파이반(拍板)·메이화차오(梅花操) 등 남방의 악기를 많이 등장시키므로 남관(南管)이라고도 불린다.

중국음악의 악기[편집]

中國音樂-樂器 중국 악기는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은(殷, ?-기원전 1100경)시대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경(磬)·북(鼓)·토적(土笛)·소(簫) 등의 악기가 제사의 가무(歌舞)에 쓰였다고 한다. 주대(周代)에 이르러서는 아악(雅樂)이 형성됨으로써 많은 악기가 사용되었다. 주나라의 제도를 기술한 책인 <주례(周禮)>에는 ⑴ 쇠(金)-종(鐘), ⑵ 돌(石)-경(磬), ⑶ 흙(土)-훈(塤)·부(缶), ⑷ 가죽(革)-뇌고(雷鼓)·영고(靈鼓)·노고(路鼓)·뇌도·영도·노도·진고(晉鼓), ⑸ 실-금(琴)·슬(瑟), ⑹ 나무(木)-축(祝)·어, ⑺ 박-생(笙)·우, ⑻ 대(竹)-관(管)·약·적·지 등의 악기가 기록되어 있어, 현재 아악에 쓰이는 악기의 대부분을 망라하고 있다. 한무제(漢武帝)가 서역(西域)을 정복함에 따라 그 지역에서 비파(琵琶)·공후·호궁(胡弓) 등 서방 이란계의 악기가 수입되었다. 수·당 시대에는 고구려·인도·안국(安國)·구자국(龜玆國)·문강국(文康國)·소륵국(疎勒國) 등 여러 변방국(邊方國)의 다양한 악기가 도입되어 대관현악이 연주되었으나, 그 자세한 악기명은 불명이다. 명(明)시대 이래 성행되어 온 민속악(民俗樂)의 악기로서는 금(琴)·쟁(箏)·비파·삼현(三絃)·호궁(胡弓)·양금(洋琴)·피리·퉁소·찰메러·생(笙)·목금(木琴)·박판(拍板)·각종의 북 등을 들 수 있다.

琴 금은 대표적인 중국 고대의 악기로서, 7현(七絃)을 가지고 있으므로 칠현금이라고도 불린다. 원래 순(舜)시대에는 5현이었으나 주(周)대에 이르러 문왕(文王)이 한 줄, 무왕(武王)이 한 줄을 더하여 모두 7현이 되었다고 일컬어진다. 공자(孔子)도 애용한 아정(雅正)한 악기로 아악에 쓰였다.

瑟 실도 중국 고대 악기의 하나로, 금(琴)과 더불어 아악에 쓰이는 발현(撥絃) 악기이다. 금과는 달리 줄을 떠받치는 음주(音柱)를 가지며 25현으로 되어 있는데, 가운데의 주선(朱線)은 무율(無律)로서, 연주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좌우 12율로 되어 있는데, 본율(本律) 12음은 오른손 인지(人指)로 타고, 청성(淸聲) 12음은 왼손 인지(人指)로 동시에 타서 8도의 화음을 내도록 되어 있다. 소리가 약한 것이 흠이다.

箏 쟁은 실(瑟)과 유사한 발현악기로서, 음주(音柱)를 가지고 음높이(音高)를 조정한다. 12현 또는 13현으로 되어 있고, 당(唐) 이래의 속악(俗樂)에 흔히 사용되어 왔다. 소리는 웅장한 편이며, 음넓이(音域)는 2옥타브이다.

비파

琵琶 한(漢) 시대에 서역에서 수입된 악기. 큰 가지 모양의 타원형 목동(木桐)에 4현 또는 5현을 베푼, 기타처럼 안고 타는 악기.

중국음악의 선법과 음률[편집]

中國音樂-旋法-音律 예로부터 쓰이는 음계로는 5음음계, 즉 궁(宮, Do), 상(商, Re), 각(角, Mi), 치(徵, Sol), 우(羽, La)가 기본음계로서, 통칭 5성(五聲)으로 알려져 있다. 이 밖에 6성(5음+변궁<變宮, Si>) 또는 변치(變緻, Fa)와 7성(5음+변 또는 변치<變緻, Fa )도 쓰인다. 한민족의 민요를 통한 조사통계에 의하면 5성은 약 70%, 6성은 14%, 7성은 6%의 비율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북곡(北曲)은 7성, 남곡(南曲)은 5성이라는 말대로, 5성은 주로 양쯔강 유역에서 7성은 황하 유역에서 흔히 쓰이고 있다. 민요에 나타나는 선법(旋法)은 5음(궁, 상, 각, 치, 우)의 각기(各其)를 으뜸음(主音)으로 하는 5종류의 선법이 있으며, 이 중 치선법(緻音)을 으뜸음으로 하는 선법(緻調式이라고도 부름)이 가장 많고(51%), 다음이 우선법(羽調式이라고도 부름, 20%), 상선법(14%), 궁선법(13%)의 순이며 각(角) 선법은 극히 드물다(2%). 가락마침꼴(旋律終止形)은 하강형(下降形)을 기본형으로 하며, 리듬에서도 여린박마침꼴(弱拍終止形)이 많다. 화성(和聲)이 없는 대신 선법의 전환, 리듬의 변화, 음빛깔(音色)의 교체를 빈번히 행함으로써 멜로디를 풍부하고 복잡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주대(周代)에 삼분손익법에 의한 12율(十二律)의 제정과 명대(明代)에 주재육(朱載堉)의 연비례법(連比例法)에 의한 12평균율(十二平均率)의 산출은 현대적 악리(樂理)의 기본과 상통하는 것으로, 중국문화의 우수성의 한 증시라고 말할 수 있다.

일본음악[편집]

일본의 음악[편집]

日本-音樂 일본음악은 지금도 그 아악(雅樂)에 도오가쿠(唐樂)와 고마가쿠(高麗樂)가 있듯이 한국 음악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말이 중국말보다 우리말에 가까운 까닭에 그런 말에 붙여진 음악이 어떤 점에서 우리 음악과 같은 점을 가졌는지 흥미있는 문제이다. 외래음악이 일본에 들어오기 전에는 일본의 간토(關東)지방에서 출토된 토우(土偶)가 가진 5현악기에 의하여 일본 고유의 악기로 와곤(和琴)이 있었다고 한다. 외래음악의 최초의 기록은 5세기에 신라의 악인(樂人)과 악기가 일본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후 서기 554년에는 백제의 악인 4명이 교체되어 일본에서 백제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서기 684년에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악(三國樂)의 최초의 기록이 보인다. 고구려의 음악과 백제의 음악은 요코부에(橫笛)·마쿠모(莫目)·군코(▩▩)를 썼고, 신라의 음악은 시라기고토(新羅琴, 한국의 가야금)를 썼다. 삼국의 음악 이외에 중국의 기악(伎樂)이 백제 사람 미마지(味摩之)에 의하여 612년에 일본에 전해졌다. 이 가면 무용음악의 악보는 10세기의 적보(笛譜)에 보인다. 도오가쿠(唐樂)의 최초의 기록은 702년이지만, 그 이전 701년에 가가쿠료(雅樂寮)가 설치되어 삼국악과 당악이 가르쳐진 것 같다. 752년 도다이사(東大寺)의 대불(大佛) 개안식(開眼式)에 사용되었던 악기가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에 보존되어 있으며, 8세기에 덴표비와후(天平琵琶譜)와 842년의 고겐후(五絃譜)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9세기에 이르러 고구려·백제·신라의 음악을 합하여 고마가쿠 또는 우방악(右方樂)이라 부르고, 도오가쿠는 일명 좌방악(左方樂)이라고 불러 지금과 같은 제도로 되었다.

도오가쿠[편집]

唐樂 아악의 일종. 오늘날의 도오가쿠는 류테키(龍笛)·히치리키·쇼(笙)·쇼오코(鉦鼓)·갓코·다이코(太鼓)·소오(箏)·비와(琵琶)로 연주되는데, 춤 반주(舞樂)에서는 현악기를 뺀다. 도오가쿠에 쓰이는 선법에는 중국의 상조(商調)에 해당하는 료센(呂旅)과 우조(羽調)에 해당하는 리쓰(律旋)의 두 가지가 있는데, 료센에는 이치고쓰죠(壹越調-d가 중심음)·다이시키죠(大食調-e가 중심음)·소오죠오(g가 중심음)의 3조(調)가 있고, 리쓰센에는 효오죠(平調)-e가 중심음)·오오시키죠 (黃鐘調-a가 중심음)·반시키죠(盤涉調-b가 중심음)의 3조가 있다. 박자에는 주로 하야요효오시(早四拍子)와 하야야효오시(早八拍子)가 있는데, 둘 다 하야뵤오시(早拍子)로서 4/4박자로 되었지만, 먼저 것은 4마디(小節)마다 제3마디에 다이코(太鼓)가 한번 들어가고, 나중 것은 8마디마다 제7마디에 북이 한번 들어가는 점에서 두 가지가 다르다. 그리고 도오가쿠는 북 2번, 즉하야요호오시에서는 8마디, 하야야효오시에서는 16마디가 1악구(樂句)를 이룬다. 예를 들면 에텐라쿠(越天樂)는 하야요호오시로 되어 있고, 세이카이하(靑海波)는 하야야효오시로 되어 있다.

고마가쿠[편집]

高麗樂 한국에서 전해간 아악의 일종. 고마부에(高麗笛)·히치리키에 산노쓰즈미(三鼓)·쇼우코(鉦鼓)·다이코(太鼓)를 쓴다. 고마가쿠에는 고마 이치고쓰죠(高麗 壹越調-e가 중심음), 고마효오죠(高麗 平調-f 가 중심음), 고마 소오죠(a가 중심음)의 세 가지를 쓰는데, 고마 효오죠 등 고마가쿠에 쓰이는 조(調)는 도오가쿠에 쓰이는 것보다 장 2도가 높다. 고마가쿠의 박자에는 요효오시(四拍子-8박이 1마디를 이루고 4마디가 한 장단을 이룬다)와 아게효오시(揚拍子-4박이 1마디를 이루고, 2마디가 한 장단을 이룬다), 가라효오시(唐拍子-4박이 1마디를 이루고 2마디 첫박에 북을 친다)의 세 가지가 있다. 고마가쿠는 도오가쿠처럼 라이(來-장고의 굴림채에 해당)를 쓰지 않고 부점(附點)의 리듬을 가진 것이 특이하다. 고마가쿠의 고악보(古樂譜)는 산고요오로쿠(三五要錄)와 진치요오로쿠(仁智要錄)에 기록되어 있다.

사이바라[편집]

催馬樂 가가쿠(雅樂) 이외에 관현 반주의 노래인 사이바라라는 명칭이 859년에 처음으로 <산다이지쓰로쿠(三代實錄)>에 기록되었고 헤이안(平安) 중기에는 궁정음악으로 성립되었으며, 리쓰(律)의 노래와 료(呂)의 노래로 나눈 사이바라후(催馬樂譜)가 찬정(撰定)되었는데, 그 후 폐창되었다가 1626년부터 고악보에 의해 재생되었다. 고도뵤오시(五度拍子)와 산도뵤오시(三度拍子)의 독자적인 것이 있다.

노오가쿠[편집]

能樂 가면(假面)을 사용하는 가무극(歌舞劇)으로서 일본 특유의 전통적인 예능이다.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68-1394) 때 사루가쿠노오(猿樂能)의 배우 간아미 기요쓰구(觀阿彌 淸次)와 제아미 모도키요(世阿彌 元淸)의 부자(父子)는 사루가쿠노오를 가극(歌劇)으로 꾸며 노오가쿠의 기초를 세웠다. 제아미는 가덴(花傳書) 등에서 유현(幽玄)의 맛을 노오(能)의 이상(理想)으로 삼았다. 먼저 후에(笛)·고쓰즈미(小鼓)·오오쓰즈미(大鼓)·다이코(太鼓, 이것을 하야시라 한다)가 무대에 들어오고, 또 합창(合唱, 이것을 지우타<地謠>라고 한다)이 들어와 앉는다. 노오(能)의 구성은 조(序)·하(破)·규(急)의 순서로 되었는데, 먼저 ⑴ 와키시다이(脇次第, 副役인 와키가 노오의 발단의 주지<主旨>를 노래하는 것)를 부르고, ⑵ 와키미치유키(脇道行, 우리말로 路程記)를 노래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조는 끝난다. 다음 하의 초단(初段)은 시데(仕手)가 등장하여 ⑶ 잇세이(一聲, 제1성이란 뜻)를 노래한다. 다음 ⑷ 사시( 레치타티보 같은 것)가 나오고 하의 초단이 끝난다. 하의 중단(中段)에는 ⑸ 몬토(問答)라 하여 두 사람의 문답이 나오고, 다음에 코러스(地謠)의 ⑹ 도오긴(同吟)으로 끝난다. 하의 후단(後段)은 제일 높은 음을 내는 ⑺ 구리와 ⑻ 소리와 춤의 클라이맥스인 구세와 ⑼ 대화(對話)인 론기(論議)와 ⑽ 코러스의 나카이리(中入)로 되었는데, 이 나카이리로 제1막이 끝난다. 여기서 시데는 의상을 갈아입기에 바쁘다. 규(急)는 제2막에 해당하는데, 그 전에 제2막을 기다리는 ⑾ 마치우타(待謠)가 있다. 제2막의 춤 반주는 하야시만으로도 하고 코러스만으로도 하며, 또 두 가지 함께하기도 한다. 그리고 코러스의 ⑿ 기리, 즉 끝의 음악으로 끝난다. 노오의 박자는 가사(歌詞)가 8박인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것을 혼지(本地)라고 한다. 오오(大)노리는 4·4조의 가사를 8박에 붙이고 주우(中)노리는 8·8조의 가사를 8박에 붙이며, 히라(平)노리는 7·5조의 가사를 8박에 붙이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8박의 기본 박자는 가사의 글자수의 다소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화한다.

비와가쿠[편집]

琵琶樂 우리나라의 비파와 같은 현악기인 비와를 뜯으며 사설(辭說)을 읊는 음악. 비와가쿠는 맹인이 지신경(地神經)을 비와에 맞추어 부르는 모오소오비와(盲僧琵琶)가 있는데, 나중 것은 치쿠젠 모오소오(筑前盲僧)와 사쓰마 모오소오로 나누어진다. 그 후 12세기경에 관리(官吏) 후지와라 유키나가(藤原行長)와 중(僧) 지친(慈鎭)이 헤이케비와(平家琵琶)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마쿠라(鎌倉, 1192- ), 무로마치(室町, 1337- )시대에는 이치가타(一方)와 야사카(八坂) 2개의 흐림이 헤이쿄쿠(平曲)의 두 주류가 되어 부케(武家)계급 간에 성행하였다가 에도(江戶, 1603- )시대에는 차차 쇠퇴하였고, 1945년 이후의 현재는 그것을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사쓰마지방의 시마즈 다다요시(鳥津忠良, 1492-1568)는 무사(武士)의 자제(子弟)의 사기 앙양을 목적으로 비와우타(琵琶歌)를 만들어 사쓰마비와의 기원이라고 하겠으나, 19세기 중엽에는 규슈(九州)의 이케다진페이(池田甚兵衛)의 비와가 오늘날 널리 행해지는 사쓰마비와의 직접 조종(祖宗)이다. 20세기에 이르러서는 긴신(錦心)과 니시키(錦)의 두 흐름이 주요한 유파이다. 19세기 말에 지쿠젠비와는 없어졌다가 다시 나왔다. 이 새로운 비와음악은 지쿠젠모오소오비와를 기본으로 하고 사쓰마비와 샤미센(三味線) 음악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지쿠젠비와는 여자에 의하여 많이 주창(奏唱)되어 미성(美聲)에 주력을 하고 있다. 지쿠젠비와는 작은 방에서 듣기 좋고, 사쓰마비와는 무대에서 해도 잘 들린다.

헤이쿄쿠[편집]

平曲 헤이케 가문(平家家門)의 영화와 몰락을 비와에 맞추어 음악적으로 읊는 것. 이것은 200장구(章句)로 되어 있는데, 그것은 각각 몇 개의 단락으로 되었다. 그리고 그 단락은 몇 개의 대선율형(大旋律型)으로 불리는데, 그 선율형에는 23종이 있다고 한다. 아게우타(上歌)·사게우타(下歌)·구도키(口說)는 쇼묘오(聲明)·노오가쿠(能樂)·헤이쿄쿠(平曲)에서 다같이 쓰이는 용어인데, 그 용어로써도 세 가지 음악의 상호 영향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헤이쿄쿠에서는 소리와 비와가 동시에 결합되지 않고 소리와 소리 사이에 비와가 나온다.

사쓰마비와[편집]

사쓰마비와에는 정파(正派)와 긴신류우(錦心流)가 있는데, 이 두 파에서는 노래와 노래 사이에 비와를 넣고, 노래하면서 비와를 타지는 않는다. 그러나 니시키(錦) 비와에서는 노래하면서 비와를 탄다. 노래 부분은 중요한 구절을 장식음으로 늘여서 청중의 갈채를 받는다. 비와는 구즈레(崩), 즉 낮은음과 높은음을 번갈아 바쁘게 타서 전쟁의 정경 묘사에 쓰기도 하고, 긴가와리(吟替)라 하여 노래에 따라서 비와가 애조(哀調)를 띤 선율을 타기도 한다.

지쿠젠비와[편집]

지쿠젠비와는 말로 하는 부분인 지(地)와 소리로 하는 부분인 후시(節)로 되었는데, 말하는 부분에서는 악기의 반주는 없고 구절 끝에 간단한 비와의 음을 넣는다. 노래하는 부분은 악기의 반주로 구(句)와 구 사이에는 간주(間奏-合の手)가 들어간다. 지쿠젠비와에서 가장 특색있는 부분은 반주있는 노래 부분이다.

샤미센 음악[편집]

三味線音樂 일본의 고유 악기인 샤미센(三味線)을 사용하여 연주하는 음악의 총칭. 샤미센음악은 가타리모노(語物-말을 섞어 하는 것)와 우타이모노(唄物-노래)로 갈라져 발달하였는데, 먼저 것의 대표적인 것이 기다유(義太夫)이다.

기다유[편집]

義太夫 샤미센을 반주로 사용하는 음악인 조루리의 한 유파(流派). 기다유는 다케모토 기다유(竹本義太夫, 1651-1714)가 창시했던 것인데, 오사카(大阪)에서 유명한 지카마쓰몬자에몬(近松門左衛門)의 각본을 얻어 그것을 인형극(人形劇)으로 연출하여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그래서 기다유 이전의 조루리를 고조루리라 불러 새 기다유와 구별하였다. 기다유가 조루리 중에서 대표적인 가타리모노라는 뜻은 그것이 기요모토(淸元) 같은 조루리와 비교하면 소리보다 말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유를 악보로 기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나가우타[편집]

長唄 샤미센을 반주로 하는 우타이모노(唄物) 음악의 일종이다. 오사카에서 기다유가 생겨나서 인형극에 쓰인 것처럼 도쿄(東京)에서는 나가우타가 생겨 가부키(歌舞伎)에 전속되었다. 인형극에서 말 못하는 인형을 대신하여 기다유가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반대로, 나가우타는 가부키에서 말은 배우에게 맡기고 주로 노래를 담당하였다. 나가우타의 연혁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가부키에 짧은 노래가 쓰였다가 긴 춤에는 부족하여 긴 음악이 생기게 되었다. 나가우타의 특색은 모든 소형(小形)을 흡수 종합한 점이다. 그 예로는 나가우타에 나오는 오자쓰마라는 부분인데, 그 짧은 선율형은 오자쓰마부시에서 따온 것들이다. 이런 선율형들이 각각 쓰이는 데가 따로 있어서, 예를 들면 마침꼴(終止形)에 쓰이는 선율형 또는 레치타티보에 쓰이는 선율형 등이 있어서, 그런 약속만 알면 음악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가우타는 노오가쿠에 쓰이는 적(笛)과 북들을 갖다 쓰고, 여기에 샤미센과 노래를 합쳐서 관현 반주의 노래가 된다. 노오가쿠에서처럼 다이코의 리듬은 샤미센과 그 이외의 북의 리듬과 맞지 않고, 적(笛)의 선율도 샤미센의 그것과 딴판이어서 일종의 긴장감을 준다. 나가우타는 가부키의 무용형식에 따라서 다음 여섯 부분으로 구분된다. ⑴ 오키 ― 주인공이 나오기 전에 무대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대개 레치타티보같이 노래된다. ⑵ 미치유키(道行) ― 주인공이 하나미치(花道)로 나올 때 악기의 간주(間奏)가 있다. 간주를 아이노데라고 한다. ⑶ 구도키(口說) ― 심경을 호소하는 부분으로서 북들을 쓰지 않는다. ⑷ 오도리지(踊地) ― 다이코를 메고 춤을 춘다. ⑸ 지라시 ― 일정한 형식이 없고, 템포가 점점 빨라져서 종말이 가까워 오는 것을 느낀다. ⑹ 단키레(段切) ― 종결로서 악기가 다 동원되고, 춤은 최후의 포즈(미에)를 취한다. 위에서 말한 구조는 일정하지 않고, 그저 기본적인 것이어서 부분적으로 변한다. 나가우타의 가사는 이야기 전부가 아니고, 어느 유명한 이야기에서 따온 일부분이거나 자연의 풍경을 노래한 것이어서 그 가사는 몰라도 음악을 감상하는 데는 무관할 정도이다. 이와 같이 나가우타는 기다유와 달라 노래 위주이기 때문에 가부키에서 독립하여 연주회용으로 노래되기도 한다.

소오쿄쿠[편집]

筆曲 우리나라의 가야금과 같은 발현악기인 소오를 주요 악기로 하는 음악을 총칭한다. 소오쿄쿠는 성악곡과 기악곡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것을 구미우타(組歌)라 하고 나중의 것을 시라베모노(調物)라고 한다. 구미우타는 보통 소오쿄쿠의 조종(祖宗)으로 중요시되며, 시라베모노의 대표적인 것은 로쿠단(六段)이다. 소오쿄쿠에는 야쓰하시류(八橋流)·이쿠다류(生田流)·야마다류(山田流) 등 여러 유파가 있다. 소오쿄쿠의 고악보는 긴쿄쿠쇼(琴曲抄, 1694)·긴쿄쿠다이이쇼(琴曲大意抄, 1779)·긴쿄쿠시후(琴曲指譜, 1772) 같은 것인데, 이 악보들은 고토(箏)의 악보뿐, 노래의 악보는 기입하지 않았다.

야쓰하시류[편집]

八橋流 야쓰하시 겐쿄(八橋檢校, 1613-1683)는 쓰쿠시류의 소오쿄쿠를 배웠다가 그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통속화하여 근대 소오쿄쿠를 창시하였다. 그는 쓰쿠시고토의 조현법을 버리고 속악(俗樂)의 인센포(陰旋法)에 맞게 히라조시(平調子)와 구모이조시(雲井調子)의 두 가지 조현법을 새로 썼다.

이쿠타류[편집]

生田流 이쿠타 겐코(生田檢校, 1655-1715)는 교토에서 새로운 유파인 이쿠타류를 세웠는데, 그는 소오쿄쿠를 좀더 통속화시키기 위하여 당시 유행하였던 샤미센의 형식 지우타(地唄)를 받아들여 소오와 샤미센으로 지우타를 연주하였는데 그것은 재래의 구미우타(租歌)에 비하여 노래에 간주곡(間奏曲)을 새로 넣어 성악보다 기악을 주로 하였다.

야마다류[편집]

山田流 에도(江戶)의 야마다 겐코(山田檢校, 1757-1817)는 야마다류를 새로 세웠는데, 그는 샤미센의 음악 가도오부시 등을 따다 소오(箏)음악으로 만들었는데, 야마다류는 이쿠타류에 비하여 기악보다 성악에 치중한 편이다. 그 대표적인 곡은 에노시마노쿄쿠(江鳥曲)다.

구미우타[편집]

組歌 구미우타는 독립한 몇 수(首)의 노래를 모은 것인데, 그 노래 1수를 1단(段)이라고 부르며 4구로 되어 있고 128박으로 되어 있다. 위의 예에서 가사의 1구(句)는 상구(上句)와 하구(下句)로 되었는데, 그 상구와 하구는 각각 16박 1프레이즈에 해당한다.

로쿠단[편집]

六段 이것은 6단으로 되었는데, 각 단은 104박으로 되었고, 특히 첫단에는 간도(換頭)라는 일종의 전탄(前彈) 4박을 첫머리에 붙인다. 속도는 서(序)·파(破)·급(急)의 순서로 빨라지고, 끝에서 천천히 그친다.

지우타[편집]

地唄 지우타란 구미우타(성악)와 시라베모노(기악)를 합친 것 같은 것이다. 이것을 또 데고토모노(手事物)라고도 부르는데, 그 까닭은 간주(間奏)인 데고토(手事)를 노래와 노래 사이에 쓰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것은 마에우타(前唄)·데고토(手事-間奏曲)·아토우타(後唄)형식이고, 더 복잡해지면 마에비키(前彈)·마에우타·데고토·아토우타·아토비키(後彈)같이 된다. 보통 지우타는 고토(箏·샤미센·샤쿠하치(尺八)로 합주하는데, 고토가 주선율(主旋律)을 연주하고 샤미센과 샤쿠하치는 거기에 장식음을 더 넣는다. 그 대표적인 곡은 지도리노쿄쿠(千鳥曲)이다.

샤쿠하치 음악[편집]

尺八音樂 일종의 관악기인 샤쿠하치(尺八)를 사용하는 일본음악 전반을 가리킨다. 근대의 형태라는 에도 초기(17세기 초엽)에 낭인(浪人)들로 조직된 후케소오(普化宗)의 무리들(이를 고무소오<虛無僧>라고도 함)이 교토의 메이안사(明音寺)를 본거지로 삼고 샤쿠하치를 불며 시주(施主)를 받았다. 이들의 음악을 메이안류(明音流)라고 하고, 에도 중기에 에도에서 명수(名手) 구로자와킨코(黑尺琴古)가 나와 긴코류(琴古流)를 개시하였고, 그 후 메이지(明治)시대인 1896년에 오사카의 나카오 도산(中尾都山)이 도산류(都山流)를 열어 이 도산류와 긴코류 두 유파가 지금까지 전국에 퍼져 있다. 샤쿠하치음악은 첫째 고곡(古曲)인 혼쿄쿠(本曲)와 둘째 가이쿄쿠(外曲), 신쿄쿠(新曲)의 세 종류로 분류된다.

혼쿄쿠[편집]

本曲 혼쿄쿠의 중요한 것으로는 초대(初代) 킨코(琴古)에서부터 전해오는 무카이치레이보·쿄쿠우레이보(虛空鈴慕)·신노쿄레이(眞虛鈴) 같은 것이다. 이 곡은 인센포(陰) 선법(旋法)으로 되었다.

시카노토오네[편집]

鹿遠音 혼쿄쿠와 같이 고곡(古曲)의 하나로 연주되는 샤쿠하치 이중주곡이다. 이것은 한쌍의 사슴이 서로 짝을 부르는 것을 그린 것으로, 2개의 샤쿠하치가 다른 곡을 각각 불면서 점점 하나로 되게 만든다.

가이쿄쿠[편집]

外曲 유명한 샤미센 곡에서 따온 것, 또는 지우타에서 고토(箏)와 합주하는 것이다. 고토와 합주하는 경우에는 고토가 주선율을 타고 샤쿠하치는 거기에 장식을 가하는 것이어서, 샤쿠하치의 독립된 형식이라고는 볼 수 없다.

신쿄쿠[편집]

新曲 신쿄쿠는 그 범위가 넓어서, 샤쿠하치를 많이 써서 합주를 한다든지 서양형식을 써서 새로운 곡을 만든다든지 한다.

일본음악의 악기[편집]

日本音樂-樂器 일본의 악기에는 현악기에 샤미센·쟈히센(蛇皮線)·고큐우(胡弓)·소오(箏)·비와(琵琶) 등이 있으며 관악기에는 샤쿠하치·노오칸(能管)·시노부에 등이 있고 타악기에는 다이코(太鼓)·고쓰즈미(小鼓) 등이 있다. 특히 아악기로는 히치리키, 소오(笙), 고마부에(高麗笛) 등이 있다.

샤미센[편집]

三味線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현악기. 민요의 반주나 근세 일본음악의 대부분의 종목에 사용된다. 3현의 발현악기로, 중국의 삼현이 류추(琉球)를 거쳐서 1562년경에 일본에 전래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조현법은 대개 3가지를 들 수 있다. ⑴ 혼조시(本調子)는 예를 들면 Beb와 같이 완전 4도와 완전 5도로 고르는 것이고, ⑵ 니아가리(2올림)는 Bf b 같이 제2선을 e에서 f 로 올려 5도와 4도로 고르는 것이고, ⑶ 산사가리(3내림)는 Bea같이 제3선을 b에서 a로 내려 4도·4도로 고른 것이다.

비와[편집]

琵琶 서양의 류트족(lute族)의 악기와 비슷하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비파라고 부르는 동양의 고유 악기이다. 일본의 비와음악인 비와가쿠(琵琶樂)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비와가 쓰인다. 아악의 관현합주(管絃合奏)에 쓰이는 것을 가쿠비와(樂琵琶)라 하는데, 이것은 4현이다. 이 밖에 모오소오비와 헤이케비와, 사쓰마비와, 지쿠젠비와 등이 있다.

모오소오비와[편집]

盲僧琵琶 맹인인 중(僧)이 지신경(地神經)을 부르며 기원할 때 반주로 사용하는 비와의 일종이다. 이것은 눈먼 중이 가지고 다니기에 편리하게 가쿠비와보다 비교적 작다. 모오소오비와는 사쓰마모오소오비와와 지쿠젠모오소오비와의 2가지가 있다. 사쓰마모오소오비와는 3현(絃) 6괘이고, 지쿠젠모오소오비와는 4현 5괘이다. 후에는 사쓰마 지방에서는 사쓰마비와, 지쿠젠 지방에서는 지쿠젠비와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사쓰마비와[편집]

규슈(九州)의 사쓰마 지방에서 창시된 비와우다(琵琶歌)의 반주에 사용하는 비와(琵琶). 비와우다의 명칭으로도 쓰인다. 가쿠비와에 비하여 지판(指板)의 부분이 길고 괘가 높은 것이 다른 점이다. 4현 4괘의 것과 5현 5괘의 것이 있다.

지쿠젠비와[편집]

메이지 시대에 새로 만든 비와우다의 반주에 사용하는 비와. 음악의 명칭이기도 하다. 이 악기는 작고 그 바치(撥)도 기다유의 샤미센 바치같이 비교적 작다.

소오[편집]

箏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널리 분포되어 있는 대표적인 발현악기(撥絃樂器)이다. 13현으로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가야금같이 안족(雁足)을 옮겨 줄을 고른다. 일본의 소오는 4종류가 있다. 아악에 사용하는 것을 가쿠소오(樂箏)라 하고, 쓰쿠시류의 소오쿄쿠(箏曲)에 사용되는 것을 쓰쿠시고토라 한다. 또한 근대 소오쿄쿠에 사용하는 것을 조쿠소오(俗箏)라 하며 대정(大正)시대에 신일본음악 운동의 추진자들이 일본 악기의 낮은음 부족을 보완하기 위하여 17현의 새로운 소오를 만들었다. 이것이 17겐소오(絃箏)이다.

샤쿠하치[편집]

尺八 관현악기의 일종. 백제 의자왕이 일본에 보낸 헌물장(獻物帳-奈良 正倉院 所藏)에 그 이름을 보이고 또 실물도 쇼소인(正倉院)에 보존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보는 그런 사쿠하치는 그 취공(吹孔) 이 우리 단소(短簫)같이 둥글게 파낸 것이 아니고 비스듬히 깎아내린 것이다. 사쿠하치의 지공(指孔)은 전부 다섯으로 d(全開音), f, g, a, c, d의 6음을 내지만 실제 연주할 때는 우리 젓대(大芩)같이 지공을 전부 막지 않고 반만 막는다든가 입술의 각도를 변화시켜 6음 이외의 음을 내며 고개를 흔들어서 비브라토를 낸다. 그렇게 음을 올리는 것을 가리라 하고 내리는 것을 메리라고 한다. 크레센도가 사용되는데, 그것은 음량(音量)뿐만 아니라 음빛깔(音色)의 변화를 가져온다.

인도네시아음악[편집]

인도네시아의 음악[편집]

Indonesia-音樂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를 중심으로 하는 인도네시아는 AD 1-2세기경에 인도의 영향을 받아 힌두교(Hinduism)가 들어왔고, 다시 5세기경에는 불교가 들어와 두 가지 종교가 융합하여 번영을 이루었다. 자바에 있는 보로 부두르(Boro Budur)의 석조(石彫)사원은 8세기 이전의 토착의 악기와 인도의 불교음악의 악기를 전하고 있다. 13세기에 회회교(回回敎, Mohammedanism)가 들어와 15세기에는 회회교도가 자바섬을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다. 따라서 힌두교는 발리섬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게 되었다. 16세기부터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서양의 영향을 받았다. 인도네시아 음악의 대표적인 것은 가믈란(gam lan)이다.

가믈란[편집]

gamelan 인도네시아 음악의 일종으로서 대규모의 기악합주형태. 이 말은 오케스트라라는 뜻이다. 이 관현악은 두어개 악기에서부터 75개 이상의 악기를 사용한다. 이렇게 오케스트라의 규모의 대소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는 기본적인 것이 있으니, 첫째로 기본선율은 비교적 느리게 원점(原点)만 치고, 둘째로 이 중심테마에 간점(間点)을 넣는데 그 간점에도 여러 층이 있고, 끝으로 공(gong, 징)이 이따금 울려 선율에 구두점을 찍어 준다. 가믈란은 주로 무용과 연극의 반주에 쓰인다. 연극에는 배우와 춤추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과 부채같이 넓은 것을 사람 모양으로 오리고 채색한 것을 휘장 위로 꼭두각시처럼 놀리는 와양 쿨리트(wayang kulit)가 있는데 이 인형극에서는 가믈란은 인형을 놀리는 사람(dalang)의 말이 들리게 가만히 연주한다. 가믈란은 달랑이 시키는 곡을 연주하므로 연극을 시작할 때까지 무슨 곡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른다. 인형극은 대략 8시부터 12시까지와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3시부터 6시까지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연출하는데 가믈란은 그 세 경우에 맞는 파테트(patet, 旋法)를 각각 연주하고, 또한 힌두(Hindu) 이야기일 때는 슬렌드로음계(slendro 音階)로 연주하고, 자바의 이야기일 때는 펠로그음계(pelog 音階)로 연주한다.

인도네시아음악의 기본음계[편집]

Indonesia 音樂-基本音階인도네시아 음악에는 두 가지 기본음계가 있는데, 하나는 슬렌드로(slendro)이고 또하나는 펠로그(pelog)이다. 그러나 실제 악기의 조율(調律)을 조사해 보면, 음정이 악기마다 달라서 같은 음정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음정을 얘기할 때 그것은 대표적 음정이지 표준음정이 아닌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려면 이 음정은 어디의 어느 악기의 음정이라고 써야 한다. 보통 슬렌드로는 5음계이고 펠로그는 7음계라지만 그 두 음계의 차이는 그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음정이 넓고 좁은 것에 달렸다. 자바 사람들은 슬렌드로는 넓은 음정으로 된 것이고 펠로그는 좁은 음정으로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다음 표는 슬렌드로와 펠로그의 음정을 센트법(cent 法)으로 표시하고, 서양 평균율(平均率)과 비교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음악의 선법[편집]

Indonesia 音樂-旋法 인도네시아 음악에서는 선법을 파테트(petet)라고 하며 여러 가지 파테트가 있다. 슬렌드로에는 세 파테트가 있으니, 즉 파테트 넴(patet nem), 파테트 상가(patet sanga), 파테트 마뉴라(patet manyura)이고, 또 펠로그에도 위에 예시한 표와 같이 세 가지 파테트가 있다.인도네시아의 음명(音名)은 바랑(barang, 기초라는 뜻), 굴루(gulu, 제3이란 뜻), 다다(dada), 리마(lima, 제5라는 뜻), 넴(nem, 제6이란 뜻) 등이 있어 각 파테트마다 중요음은 동그라미(○)로 표시하였다. 예를 들면 위의 표에서 슬렌드로 파테트 마뉴라(slendro patet manyura)는 다다(dada, 서양음의 G 비슷한 것), 넴(nem, C에 가까운 것), 굴루(gulu, F에 가까운 것)를 중요음으로 썼다. 또 파테트 상가는 넴과 다다를 쓰지 않고 대신 바랑과 리마를 중요음으로 썼다. 이같이 슬렌드로 음계에서는 파테트, 즉 선법이 달라짐에 따라서 같은 음이라도 그 음의 기능이 달라진다. 위에 말한 파테트 마뉴라에서 세 중요음 F-C-G가 5도 관계에 있는데, 그 5도들은 동일한 5도가 아니고 각각 다르다. 따라서 그 다른 5도를 로마 숫자 Ⅰ, Ⅱ, Ⅲ으로 표시하였는데, 이 제1의 5도, 제2의 5도가 선율진행을 인도한다. 펠로그 음계는 7음으로 되어 있지만 그 중 5음만이 세 가지 파테트에 필요하고 2개의 부차적 음은 파테트에 따라서 다르다. 그 부차적 음은 위의 표에서 괄호로 표시되었다. 연주할 때 첫머리 또는 끝나는 선율형에 의하여 그 음악이 무슨 파테트인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각각 다른 파테트로 연극의 장면이 낮인지 밤인지 어느 계절인지를 연상할 수 있다.

인도네시아음악의 악기[편집]

Indonesia 音樂-樂器 인도네시아 음악의 악기는 크게 5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중요한 선율타악기로는 사론(saron), 근데르(g nder)가 있으며, (2) 장식(裝飾) 선율타악기에는 보낭(bonang), 감방 카유(gambang kayu)가 있는데 감방카유는 실로폰같이 목제의 건반을 가지고 있으며 빠른 패시지(passage)로 테마를 장식한다. (3) 리듬악기에는 4가지 종류의 공(gong)이 있으니 크투크(k tuk), 크농(k nong), 큼풀(k mpul), 큰징(gong ageng) 등이다. (4) 현악기에는 해금같이 2현을 가진 레밥(rebab), 양금 같은 첼렘풍(tjelempung) 등이 있고, (5) 관악기에는 단소 같은 술링(suling) 등이 있다.

사론[편집]

saron 인도네시아의 선율타악기. 가믈란(gamelan)의 연주에 가장 기본적인 선율악기이다. 실로폰같이 생긴 악기로, 청동편(靑桐片)을 줄지어 늘어놓고 나무로 만든 망치로 친다. 선율의 한 음을 치고 나서는 왼손의 모지(母指)와 식지(食指)로 철편을 잡아서 그 여음을 막는다. 사론에는 대·중·소 세 가지가 있는데, 작은 것은 소리가 높고 큰 것은 소리가 낮다. 대개 크고 낮은 소리를 내는 악기는 음을 드문드문 치는데 높은 소리를 내는 악기일수록 잔(細)음을 많이 넣는다. 마치 여과기(濾過器)에서 밑의 모래는 제일 굵고 올라갈수록 모래가 작아지는 것과 같다.

근데르[편집]

g nder 인도네시아의 선율타악기. 대·중·소의 세 가지가 있는데, 이것은 방향(方響)처럼 철편(鐵片)을 끈으로 엮어서 그 철편 하나하나에 공명(共鳴)의 대통(大筒)을 밑에 놓은 것이다. 근데르는 공명통과 솜방망이 같은 망치로 인하여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중형(中形)의 근데르가 간점(間点)을 많이 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두 손이 각각 다른 멜로디를 부산하게 치기 때문에 그 여음을 손가락으로 잡아막는 데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보낭[편집]

bonang 인도네시아의 선율타악기. 사론이나 근데르가 주선율을 연주하는 데 비해 보낭은 주선율의 장식음을 연주한다. 꼭지 달린 덮개가 있는 밥그릇 같은 것 10개 이상을 줄 위에 두 줄로 올려놓은 것으로, 대·중·소 3가지가 있다. 테마의 변주곡을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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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g 이 악기는 우리나라의 징과 비슷한 타악기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인다. 인도네시아 음악에서는 리듬타악기로 쓰며 여러 가지가 있다. 아래에 예시한 16박의 악구(樂句)에서 갖가지의 공은 선율에 제각기 구두점(句讀點)을 찍는다. 4가지 공의 리듬은 아래와 같이 나온다. 제일 작은 밥그릇 같은 크투크(k tuk)는 제일 자주 치고, 그보다 좀 큰 크농(k nong)은 그 다음이고, 몇 개의 공을 매단 큼풀(k mpul)은 세 번만 치고, 매단 큰징(gongageng)은 한번만 나온다. 이 큰 징을 한번 치면 한 악구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타이음악[편집]

타이의 음악[편집]

Thai-音樂 타이의 음악은 인도차이나반도의 음악 중에서 가장 발달된 것으로, 자바섬의 음악과 더불어 동남아시아 음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타이의 음악은 종교 및 기타 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인도, 크메르,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 남방 여러 나라로부터의 직접적 또는 간접적 영향을 받아 이룩되었다.

타이음악의 역사[편집]

Thai 音樂-歷史 오늘날의 타이 민족은 큰 타이와 작은 타이로 나뉘는데, 아유티아 왕조, 방콕 왕조를 일으키고 타이국의 문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작은 타이, 즉 타이족이다. 타이의 음악을 대표하는 것도 즉 이 타이족의 음악, 특히 그 합주(合奏)음악이며, 자바섬의 가믈란과 더불어 동남아 특유의 음악으로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음악, 특히 그 5음 음계가 타이의 음악에 영향을 주었으리라는 것은 타이 민족의 역사적 출발로 보아 쉽사리 짐작이 가는 일이다. 특히 가곡에서 그 영향은 뚜렷하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표격인 기악 합주곡에는 그 음률, 악곡 형식, 악기 편성 등의 면에서 중국의 영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즉, 그들의 선조는 아악이나 향연악과 같은 중국의 고전음악을 끝내 배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타이의 정통음악은 그들의 남중국 시대의 문화의 자연적인 발전에서 이룩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남하하기 시작하여 크메르의 문화에 접하자 갑자기 문화에 눈이 뜨임으로써, 특히 앙코르 공략으로 크메르 문화를 자국(自國)의 아유티아로 가져옴으로써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타이의 음악이 캄보디아의 음악을 토대로 형성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또한 인도 예술의 강한 영향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크메르의 음악은 인도의 음악, 특히 그 악기의 도입에서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의 대사원 '앙코르 와트'의 회랑(回廊)의 수많은 '라마야나' 조각벽화의 의상(意想)이 훨씬 후에 건축된 타이의 왕궁사원 프라케오의 '라마야나' 벽화에 나타나 있는 것, 그리고 타이의 고전음악의 주축이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에 관한 악곡이라는 점이 이와 같은 사정을 말해준다. 한마디로, 타이의 음악은 7-10세기에 동남아 전역에 지배적이었던 인도의 음악을 지주(支柱)로 삼고 자바섬의 '가믈란' 음악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캄보디아의 음악을 모체로 하여 자기 나름의 발전을 해온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타이음악의 특색[편집]

Thai 音樂-特色 일반적으로 타이의 음악이라고 말할 때는 아유티아 왕조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 고전음악을 가리킨다. 그 음계는 중국의 5성(五聲)과 비슷한 펜타토닉(5음음계)이지만, 악기상의 음률은 한 옥타브를 7등분한 7평균율로 되어 있는 것이 이색적이다. 다만 노래는 중국에서와 같은 배음률(倍音律)에 의한 5음으로 불리므로, 엄밀히는 노래와 기악의 음이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그러한 모순이 실제상의 연주에서는 그리 대수롭지 않고, 그런대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타이의 고전음악은 노래와 몸짓과 무용, 그리고 마호리(Mahori), 피파트(Pipat)의 두 편제(編制)를 가지는 기악과의 합연(合演), 즉 일종의 가무극(歌舞劇)의 형태로 존속해 왔다. 기악만 따로 연주되는 경우에도 그것은 그와 같은 가무극 중의 곡인 수가 많다.

라마키엔[편집]

Ramakyen 타이에서 상연되는 가무극의 사실상 거의 대부분이 인도의 '라마야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엄청난 길이의 번안극(飜案劇) '라마키엔'에 속하는 것이다. '라마키엔'은 그러므로 사실상 타이의 고전음악을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유티아 시대부터 2·3백년에 걸쳐 제작되고 연주되어 온 이 '라마키엔'은 프라케오 사원 회랑(回廊)의 라마야나 밀화 178장면을 주제로 삼은 것으로, 그 각본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고, 중요한 시구(詩句)와 장면에는 모두 곡이 붙여져, 타이의 예술국의 통계에 의하면 아유티아 왕조 이래 작곡된 곡의 수는 1,200장면에 이른다고 한다. 이 극을 전부 상연하는 데에는 수백 시간이 걸리며, 따라서 실제의 상연은 언제나 그것의 일부분, 즉 한 장면만이 상연된다. 그 음악의 연주방식은 노래와 기악의 동시적 연주가 아니라, 노래와 기악과의 교호적(交互的)인 연주방식에 의거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타이의 기악에는 타악(打樂)이 많아 동시적 연주에 의해서는 노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노래에서의 5음음계(중국 계통)와 악기의 음률이 엄밀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타이음악의 음계와 음률[편집]

Thai 音樂-音階-音律 타이의 음악에 특이한 것은 그 음률이다. 노래나 기악의 실제 연주에서의 가락은 펜타토닉(pentatonic, 5음음계)의 음악의 성격을 띠고 있으나, 그것은 12평균율에 근거한 5음이 아니라 한 옥타브를 7등분한 7평균율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피타고라스의 음계나 중국의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에 의한 5음(나아가서는 12평균율)의 결정은 모두 배음률에서 출발하여 완전5도 음정을 기준삼아 얻어진 것이나, 타이의 음률은 그러한 배분율에 의하지 않고 소리와 소리와의 간격을 똑같이 한 7평균율인 것이 특색이다. 즉, 타이의 7음음계에는 온음(全音)이나 반음(半音)의 음정이 없이 그 소리들 사이의 간격이 모두 고른 것이다. 타이의 기본 악기인 리아트를 비롯한 모든 고전음악의 악기가 이 음률로 조율되어 있다. 따라서 펜타토닉에 기본을 둔 타이의 음악의 실제의 연주에서는 제4, 제7음은 다만 장식적·경과적으로밖에는 쓰이지 않는다. 이러한 특이한 타이의 음률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만들어졌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조바꿈(轉調)이 자유롭다는 등의 이점도 있고 하여 다소의 불합리를 무릅쓰고도 오늘날까지 이 음률이 쓰이고 있는 것 같다.

마호리 편성[편집]

Mahori 編成 피파트 편성과 함께 타이의 고전음악의 악기 편성 방식 중 하나로서, 현악기가 중심이 되고 흔히 여성에 의하여 연주된다. 악기 구성은 현악기인 자케(Ja-khe), 소삼사이(Saw sam sai), 크라찹피(Krachabpi), 소우(Saw u), 타악기인 라나트(Ranat, 여러 종류), 콘웡(Khon wong), 톤(Thon), 람마나(Rammana), 칭(Ching), 관악기인 클루이(Khlui) 등이다.

피파트 편성[편집]

Pipat 編成 마호리 편성과 함께 타이의 고전음악의 연주를 위한 악기 편성 방식의 하나로서 타악기가 중심이고, 악기 구성은 타악기인 라나트(Ranat, 여러 종류), 콘웡(Khon wong, 여러 종류), 송나(Song na), 타폰(Taponeon), 크랍셉파(Crapp sebpa), 콩 디오(Khong dio), 글로타트(Glo tat)와 관악기인 피이(Pee) 등이다.

타이음악의 악기[편집]

Thai 音樂-樂器 타이의 악기에는 마호리(Mahori), 피파트(Pipat)에 쓰이는 고전악기와 약간의 민속악기가 있다. 고전악기로서 중요한 것으로는 자케, 라나트, 소삼사이, 피이 등이 있다.

자케[편집]

Ja-khe 악어 모양의 발현악기. 원래는 악어를 잡아 말려서 그 몸통에 3현을 단 것이었다. 인도에서 생긴 것으로 미얀마를 거쳐 크메르에 전해진 것이 다시 타이로 들어온 것이다. 줄은 견현(絹絃) 둘과 금속선 하나로 되어 있고, 11개의 플랫(flat)이 등비간격(等比間隔)으로 놓여 있다.

소삼사이[편집]

Saw sam sai 3현호궁(三絃胡弓). 크메르에서 들어왔다. 아유티아 시대에도 있었던 모양으로, 타이의 오랜 사원(寺院) 벽화의 천녀주악도(天女奏樂圖)에도 나타나 있다. 하트 모양의 동체에 손잡이가 길어 우아한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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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 복황(複簧) 종적(縱笛). 방추형(紡錘形)의 목관악기로 직경 3cm, 길이 40cm 가량이다. 여섯 개의 구멍이 있다. 여러 종류가 있는데, 피나이(Pi nai)가 가장 크고, 피노크(Pi nok)가 중간 크기, 피클랑(Pi klang)이 가장 작다. 피파트(Pipat) 편성의 주요 선율악기로서 타이의 고유악기이다.

라나트[편집]

Ranat 목금계(木琴系) 타건악기(打鍵樂器). 타이의 대표적인 악기로서 고음부를 맡는 라나트 에크(Ranat ek)와 저음부를 맡는 라나트툼(Ranat thum)이 있다.

베트남음악[편집]

베트남의 음악[편집]

Vietnam-音樂 베트남 민족의 주류는 원래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베트남 땅으로 이주해 온 남방형 몽고족으로, 선주민을 비롯한 여러 남방민족 및 한(漢)민족과 혼혈을 이루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베트남이 정치적으로 역사에 나타나기는 기원전 214년의 진시황제(秦始皇帝)의 남월정략(南越政略)부터인데, 후한(後漢)의 광무제(光武帝) 때 마원(馬援) 장군이 코친차이나(交趾支那)를 포함한 베트남 일대를 유린함에 따라 베트남 고유의 문화가 철저히 파괴되고 한문화가 이식되었다. 그 후 150년경에 남쪽의 몽크메르의 일족이 임읍국(林邑國)을 일으키고 북상하여 베트남 땅에서 한민족의 세력과 각축전을 벌였다. 임읍은 후에 참파(占城)라 불리어, 그 후에도 누차 베트남을 괴롭혔다. 이와 같이 베트남의 역사는 건국 초부터 북과 남으로부터의 침략에 의한 고난의 역사였다. 베트남의 음악이 애수를 띠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에서 연유한 것이다. 베트남의 최초의 통일국가는 정부령(丁部領)에 의한 대구월(大瞿越)이었으나 이는 곧 여환(黎桓)에 의하여 멸망되었다(981년). 1009년부터는 이조(李朝)가 시작되어 지금의 하노이에 도읍하였으나 8대 혜종(惠宗) 때 진(陳)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1428년에 여리(黎利)가 그 당시 베트남을 지배하던 명군(明軍)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중국의 아악이 들어온 것은 이 후려조(後黎朝)의 4대 왕 성종(聖宗) 때(15세기)이며, 성종은 유교를 들여 국교로 삼고 공자묘를 세워 때때로 아악으로 제사를 드렸다. 그 후 베트남은 북은 정씨(鄭氏), 남은 완씨(阮氏)가 할거하여 마침내 여왕조는 1793년에 소멸되었다. 후에 완씨의 일족 완복영(阮福映)이 왕위에 올라 통일베트남에 군림하였다. 후에 프랑스의 보호국이 되면서 그의 후대는 왕조의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2차대전 종식과 함께 왕통이 끊겼다. 이동안 성종 때 들어온 아악은 분쟁과 전쟁의 연속 속에서도 그 활동이 끊기지 않았으며, 특히 완조(阮朝)가 흥하던 시기에는 후에(順化, Hu )의 성묘(聖廟)의 춘추석전(春秋釋奠)도 매우 성대하였다. 후한 이래의 중국인의 유입은 중국음악의 침투를 촉진시켜 베트남 고유의 음악의 형성을 곤란케 하였다. 오늘날 베트남 음악의 주류를 이루는 아악과 전통 가곡은 모두 중국에서 전승된 것이고 그 음악의 내용, 형식, 이론, 그리고 악기 구성이 모두 한민족의 정복 이후의 소산으로서 그 원전(原典)을 모두 중국에 두고 있다. 선율도 중국의 것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대부분이고, 음계도 중국과 같은 5음음계에 의하며 그 계명(階名) 또한 중국이 속악(俗樂)의 계명인 호(合, Sol), 샹(上, Do), 세(尺, Re), 콩(工, Mi), 류(六, Sol), 우(五, La)를 쓰고 있다. 이와 같이 베트남의 음악은 너무나 많이 중국의 음악에 의존하고 그것의 답습에 그친 느낌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동남아시아의 음악으로서보다는 중국 음악의 일부 또는 방계(傍系)로서 분류된다. 추뇨(Chunho)는 중국의 고사(故事)를 한시(漢詩)로 읊는 가곡형식이며, 추놈(Chunom)은 일반 시정민(市井民)이 즐겨 부르는 속어조의 노래로 가사 중에 독특한 은어가 포함되는 것이 많은데, 예컨대 '달과 바람'=남녀의 만남, '금과 옥'=사랑의 고백, 봄비=애정, 비엔호아의 보석=아가씨와 같은 것이 그것이다. 민요도 그리 수가 많지 않고 뚜렷한 민족적 특성을 가지는 선법이나 형식을 이룩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트롱콴(Trong quan)은 유희를 더불은 남녀간의 문답가(問答歌)로서, 베트남의 일부 지역의 경축일에 곧잘 불리고 있다. 요컨대 베트남의 민족음악은 앞으로 형성, 발전되어야 할 과제인 것으로 여겨진다.

트롱콴[편집]

Trong quan 베트남의 일부 지역의 경축일에 곧잘 불리는 유희를 겸한 남녀간의 문답가로서, 땅에 구덩이를 판 후 뚜껑을 덮고 그 위에 활모양의 대를 건네어 두들기면 소리가 나게 만들어 그 양켠에 남녀들이 마주 앉아 두들기며 주고 받는 노래이다. 예컨대 남자가 "높은 것과 낮은 것은 무엇이지" 하고 부르면, 여자가 "봉우리 위의 구름과 골짜기의 물이지" 하고 대답한다. 즉흥적으로 응답을 하지 못하면 상대방의 주문에 응해야 한다.

베트남의 악기[편집]

Vietnam-樂器 현재 쓰이고 있는 베트남의 악기는 거의 모두가 중국에서 들여온 것으로 동남아시아적 특성이 없고, 구조나 주법(奏法)도 중국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관악기보다는 16현 쟁(箏), 월금(月琴), 비파(琵琶), 3현호궁(三絃胡弓)과 같이 현악기가 주로 되어 있고, 기타 북, 피리, 공(Gong), 방울, 목어(木魚) 등의 악기가 있다.

16현 쟁[편집]

十六絃箏 중국의 진쟁(奏箏)과 같은 것으로 16개의 놋줄이 있는 점이 다르다. 손톱으로 타며 왼손으로는 끊임없이 비브라토를 넣는다.

베트남의 월금[편집]

Vietnam-月琴 베트남의 민족적 악기라고 할 만한 것. 몸통은 달처럼 둥글고 손잡이는 길며, 줄은 4개 있으나 완전 5도 간격으로 조현(調絃)된 두 줄씩의 2음이다. 8개의 음기둥(音柱)이 있다.

베트남의 고대악기[편집]

Vietnam-古代樂器 현대의 베트남의 악기는 거의 모두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나, 20세기 중반 베트남 땅의 여러 곳에서 고대 베트남의 악기가 속속 발굴됨으로써고고학적으로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그 중에서 특히 돌의 실로폰은 1949년 2월 베트남 중부의 다알락(Darlak)주에서 도로공사 중에 왕족의 묘로 여겨지는 곳에서 나왔고, 청동고는 1924년 베트남의 돈손(東山, Don son) 마을 근처에서 중소형의 것이, 그리고 1937년 3월 호앙하(Hoang ha) 마을에서 대형의 것이 발굴되었다. 하지만 이들 고대악기들은 현대의 베트남과는 상관이 없다.

돌의 실로폰[편집]

Lithophon 1949년 베트남 중부의 다알락 주에서 도로공사 중에 발견된 것으로 10자루의 경질석회암의 석판(石板)으로 되어 있다. 큰 석판은 1m 가량, 작은 것은 70cm 가량이다. 기원전 3000년경의 악기로 추정되며, 현재 파리의 인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청동고[편집]

靑桐鼓 1924년부터 28년에 걸친 기간에 베트남의 돈손마을의 분묘터에서 많은 청동기와 함께 여러 개의 청동고가 나왔고, 다시 1937년 3월, 하아돈(Hadon)주 호앙하 마을에서 대형의 청동고가 나왔다. 이 청동고의 높이는 61.5cm이고 고면(鼓面)의 지름은 84cm이며, 측면에는 여러 가지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인도음악[편집]

인도음악의 역사[편집]

印度音樂-歷史 인도 음악사는 4기로 나눌 수 있다. 바라문 경전(經典)인 베다(Veda)를 중심으로 한 베다 시대는 기원전 2000년경에서 시작되고, 고전시대는 2세기에서 시작되는데, 이 시기에는 복잡한 이론체계가 전개되고 라가(raga)의 개념이 새로 생겼다. 그 다음 중세기(中世紀)는 11세기와 12세기의 회교도의 침입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이 중세기에 북인도 음악과 남인도 음악이 갈라졌고, 그 다음 근대(近代)는 18세기에서 시작되는데, 이 시대에 북인도와 남인도의 음악체계가 고정되었다.

베다의 낭송[편집]

Veda-朗誦 베다는 4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3가지 베다만 낭송된다. 즉 야주르 베다(Yajur Veda)는 1음(音)만으로 낭송되고, 리그베다(Rigveda)는 가사의 악센트에 따라 중음(中音, ud tta)·저음(低音, anud tta)·고음(高音, svar­ita)으로 낭송된다. 사마베다(S maveda)는 큰 의식에서 좀더 넓은 음넓이로 간음(間音)을 더 넣으면서 낭송된다.

고전시대의 음조직[편집]

古典時代-音組織 인도음악의 가장 오랜 문헌은 최초의 음악이론가로 알려진 바라타(Bharata)가 쓴 <나티야샤스트라(N tya S stra)>인데, 이 책은 기원전 200년 또는 200년, 심지어는 500년의 것이라고 학자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주장되었다. 이 책에서는 7음을 사(sa), 리(ri), 가(ga), 마(ma), 파(pa), 다(dha), 니(ni)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각각 Sadja, Risabha, G ndh ra, Madhyama, Pancama, Dhaivata, Nis da의 첫음절을 딴 것이다. 이 7개의 음정을 22스루티스(surtis)로 측정했는데, 그 22스루티스는 한 옥타브를 이루는 것이다. 기본 음계(gr ma)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사음계(SA-gr ma'(C음계)이고, 또 하나는 '마음계(MA-gr ma)'(F음계)이다. 이 두 음계를 각각 7음 위에 옮겨 놓으면, 모두 14조(調, murchan )를 얻게 되는데, '사음계'에서 4개, '마음계'에서 3개만 쓰고 그 일곱을 '자티(jati)'라고 불렀다. 이 자티가 무르차나(murchan )와 다른 점은 단순한 음계가 아니고, 그 중에 센음(强音) 또는 중요한 음과 여린음(弱音) 또는 중요치 않은 음을 가진 점이다. 이 점에서 자티는 라가(raga)의 전신(前身)이라고 할 수 있다. 라가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것은 마탕가(Matanga, 5세기)의 <브라데시(Brhaddesi)>라는 책인데, 그 책에서 그는 기이티(g ti, 멜로디)를 여러 종류로 분류하였고, 그 중의 하나로 라가 기이티(r ga-g ti)를 들었다. 마탕가는 라가 기이티의 연주로 생기는 별다른 곡취(曲趣, rasa)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중세의 인도음악[편집]

中世-印度音樂

북인도[편집]

北印度 이슬람세력의 침입으로 인도음악의 새로운 면이 생겼는데, 그 특징은 라가가 더 복잡해진 점과 북인도 음악에 모하메단과 힌두의 요소가 융합한 점 및 특히 북인도와 남인도의 음악 스타일이 갈라진 점이다. 음악가이며 이론가로서 유명한 사룬가 데바(S runga D va)의 <삼기타라트나카라(Samgita-Ratn kara, 13세기)>는 후세의 이론가에 의하여 많이 인용되었는데, 그 기본음계에 관한 기술(記述)이 모호하여, 후세에 혼란을 빚어냈다. 푼다리카 비탈라(Pundrarika Vitthala, 17세기)는 라가를 남성(男性, purusa)과 여성(女性, bharya) 및 자손(子孫, putra)으로 분류하였다.

남인도[편집]

南印度 사룬가 데바 시대까지는 북인도와 남인도의 음조직에 별로 차이가 없었다가, 12세기의 음악사전 비슷한 마아노살라아사(Manosalasa)에서 처음으로 '카르나티크(Carnatic) 음악' 즉 남부음악이란 말이 사용되었다. 라아마아마탸(Ramamatya, 16세기)는 라가를 멜라(mela, 부모)와 자냐(janya, 자손)로 분류하고, 그 기본음계(mela)를 고대의 무카리(Mukhari)로 정하였는데, 그것은 지금의 카나캉기(Kanakangi)에 해당하며 CDbEbFGAbBbbC이다. 이 음들이 남인도 음조직의 기본인 슈다 스바라스(shuddha svaras, 원음)이고 그 밖의 음계들은 이 멜라의 변화형이다.

근대의 인도음악[편집]

近代-印度音樂

북인도[편집]

北印度 파트나의 무하메드 레자 칸(Muhammed Rezza Khan of Patna)은 라가를 남성 라가와 여성 라가로 분류하는 것은 우습다 하고, 여러 음계(라가)의 구성음(構成音)에 의하여 새로 라가를 분류하였는데, 여러 라가 중 기본 라가인 빌라발 라가(raga Bilaval)를 채택하였다. 그 음계는 대략 서양의 장음계 비슷하다(CDEFGABC). 바하트칸데(Bhatkhande, 1934-1941)는 북인도의 라가 전부를 10개의 기본음계로 분류하여 근대의 북인도 음악체계를 창시하였다. 10개의 기본음계는 ⑴ Bilaval, ⑵ Kalyan, ⑶ Khambaj, ⑷ Bhairon, ⑸ Poorvi, ⑹ Marva, ⑺ Bhairavi, ⑻ Asavari, ⑼ Kafi, ⑽ Todi 등이다.

남인도[편집]

南印度 또한 고빈다(Govinda)는 그의 저술 삼그라하쿠다 마니(Samgraha-Cuda-Mani, 18세기 후기)에서 72개의 멜라(mela)와 그 밑에 딸린 많은 자냐(Janya)로 분류하는 방법에 더 손질을 하였다. 72개의 멜라가 아래와 같이 12개의 차크라(chakra)에 묶였다.

라가[편집]

Raga 인도음악의 선법(旋法)과 음계에 관한 이론 용어. 오늘날 라가의 특색을 결정하는 요소가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음계이다. 인도의 음계는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가 똑같지 않는 경우도 있다. 각 라가는 자기의 일정한 음을 갖고, 계속 그 음만이 사용되어야 하고, 그 밖에 딴음을 첨가하지 못한다. 따라서 전조(轉調)는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둘째로 평음계와 달라서 라가는 강(强)한 음(중요한 음)과 약한 음(중요치 않은 음)을 가졌다. 위에서 말한 음계의 종류와 또 그 음계 중에서 어느 음이 중요하냐에 따라서 라가의 종류가 결정된다. 기본음 사(SA) 다음에 바디(vadi, 發言者) 또는 암사(amsa, 남인도 음악에서 사용)가 중요한 음이다. 대개 멜로디는 사음이나 바디음으로 끝내고 때로는 바디보다 4도 또는 5도 위 음인 삼바디(samvadi)음으로 그친다. 이런 강한 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음들이 북의 '강한' 박자 삼(sam)장단과 동시에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아래에 c d e g a c 5음계로 된 두 가지 다른 라가의 공식을 들었는데, 그 예에 나오는 2분, 4분, 8분음표들은 시가(時價)를 표시한 것이 아니고,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것을 표시한 것이다. 이 예를 보면 다같이 5음으로 되었지만 전자에서는 e음이 바디(vadi)이고, 후자에서는 a음이 바디이기 때문에, 라가가 각각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셋째로 SA(주음, 主音)와 PA(속음, 屬音)는 장식음을 갖지 않지만, 그 밖의 음들은 장식음을 갖는데 그 장식음에 따라서도 라가가 달라진다. 끝으로 한 라가에서 어느 강한 음만 줄곧 쓰기 때문에 그 라가에 곡취(曲趣, Mood) 또는 분위기가 자연 생긴다. 이 라가의 곡취가 나중에 라가를 어느 신(神)의 형태로 그리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각 라가는 음을 길게 끄는 드론(drone)으로 반주되어 그것은 음계의 기초음인 SA음과 그 5도 위의 음 PA음, 이 두 음만을 계속 길게 소리낸다. 만일 라가의 음계가 5도음을 갖지 않을 때는 4도 MA음이 드론으로 쓰인다. 또 음계가 5도도 4도도 갖지 않으면, 장7도 NI음이 사용된다. 예를 들면, 기초음이 C라면 다음 같은 드론형이 될 것이다. 이 드론의 악기는 탐부라(tambura)이다.

탈라[편집]

tala 인도음악의 리듬에 관한 기본 개념인 용어. 탈라는 서양음악에서처럼 한마디 (小節)를 더 잘게 쪼개지 않고, 몇 개의 마디를 모은 것으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다마르 탈라(Dhamar-tala)에서는 다음과 같은 4마디로 이루어진 아바르타(avarta)가 계속 반복된다.제1마디는 5박, 제2마디는 2박, 제3마디는 3박, 제4마디는 4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네 마디가 모여서 아바르타를 이룬다. 이 14박의 탈라에서 첫박(sam)은 '×'로 표시되고, 제6박(2마디 첫박)은 '2'로 표시되며, 제8박(3마디 첫박)은 '0(khali)'로 표시되고, 11박((4마디 첫박)은 '3'으로 표시된다. sam에서는 두 손을 치는데, 탈라는 이 첫박에서 시작하지 않고, 그와 반대로 그치는데, 이 점에서 한국음악의 장단과 다르다. khali에서는 두 손을 치지 않고, 오른손을 쳐들어서 앞으로 sam이 나올 것을 주의시킨다. 북인도 음악에서 보통 제일 많이 쓰이는 탈라는 다음과 같다.위에서 차우탈과 엑탈은 다같이 12박, 6마디로 되었지만 그 북치는 법에서 다르다. 즉 엑탈은 딘(dhin), 딘(dhin), 다(dha) … 같이 치고, 차우탈은 다(dha), 다(dha), 딘(dhin) … 같이 친다.남인도의 탈라는 북인도의 것과 같지만 분류되어 있다. 즉, 3박으로 된 것은 트리수라 자티(trisura jati)이고, 4박으로 된 것은 챠투수라 자티(chiatusura jati)이며, 5박으로 된 것은 칸다 자티(khanda jati)이고, 7박으로 된 것은 미스라 자티(misra jati)이며, 9박으로 된 것은 산키르나 자티(sankirna jati)이다. 이 다섯 자티 중에서 두 자티만을 들어서, 그 두 자티로 된 기본 탈라 7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또 하나 자주 사용되는 탈라는 아디 탈라(Adi-tala; 4+2+2)인데, 이것은 챠투수라 자티의 트리푸타 탈라에 지나지 않는다.

기 본 탈 라


(tala)

자 티(jati)

트리수라(trisura)

챠투수라(chiatusura)

에 카 (Eka)


루 우 파 카 (Rupaka)


잠 파 (Jhampa)


트 리 푸 타 (Triputa)


마 아 탸 (Matya)


드 루 바 (Dhruva)


아 아 타 (?ta)

3


2+3


3+1+2


3+2+2


3+2+3


3+2+3+3


3+3+2+2

4


2+4


4+1+2


4+2+2


4+2+4


4+2+4+4


4+4+2+2


드루파드[편집]

Dhrupad 북인도 음악의 형식. 이것은 모하메단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고대 힌두 형식으로, 지금은 드물게 연주한다. 드루파드의 연주는 장식음을 일체 쓰지 않고, 라가를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드루파드는 여러 시간 계속하기도 하는데, 언제든지 느리고 위엄 있는 템포로 노래하고, 탈라도 몇 가지만 쓰인다. 즉 차우탈(Chaut l), 다마르(Dham r), 수르파크타(Surphakta; 2+2+2+2+2)와 테브라(Tevra; 3+2+3) 따위다. 드루파드 연주에 쓰이는 북은 고대 무리당감(muridangam)이다. 드루파드의 구조는 이와 같다. ⒜ 알라프( l p)는 우리 국악의 다스름같이 박자가 없는 전주곡으로, 노래하는 사람이 라가의 주요형(主要形)을 연주해 보인다. 이 알라프 앞에서는 탐부라(tambura)라는 4현 악기의 드론(drone, 長引聲) 반주는 있지만 북은 쓰이지 않는다. ⒝ 아스타이(Asthayi)는 노래의 제일부(第一部)인데, 보통 아래 4음(tetrachord)을 많이 낸다. 이 부분에서 북이 처음으로 들어간다. 물론 탐부라도 계속 반주를 한다. ⒞ 안타라(Antara)는 노래의 제2부로, 위의 4음(upper tetrachord)을 강조한다. ⒟ 산차리(Sanch ri)는 노래의 제3부로, 음넓이(音域)를 전부 쓴다. ⒠ 아보그(Abhog)는 제4부로, 보통 제1부 아스타이로 되돌아가고, 때로는 이 제4부에 빠른 선율이 새로 나오기도 한다.

캬알[편집]

Khy l 힌두 음악인(人)도 모하메드 음악인도 다 만든 북인도 음악의 형식. 비교적 근대의 것이고, 자주 쓰인다. 캬알은 대개 아스타이와 안타이로 되었는데, 자세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으로 되었다. ⒜ 알라프( l p). ⒝ 아스타이(Asthayi), ⒞ 안타라(Antara)와 아스타이 1부의 반복. ⒟ 본(本) 알라프, 즉 알라프를 고수(鼓手)와 함께 복잡하게 만든 것. ⒠ 아스타이와 안타라의 반복. ⒡ 볼탄(Bol-t n)은 빠르고 장식음과 변주가 많다. ⒢ 아스타이와 안타라의 반복. ⒣ 본(本) 타안(T n proper)은 가사 없이, '아' 또는 '나'란 말로 노래하는 변주곡. ⒤ 종곡(終曲)으로 아스타이를 반복하거나 빠른 새 선율을 쓴다.

키르타나[편집]

Kirtana 남인도 음악의 형식. 키르타나는 북인도 음악의 형식과 비슷하여 팔라비(Pallavi), 아누팔라비(Anupallavi), 차르나(Charna), 팔라비의 4부로 되었는데 그것은 드루파드의 아스타이, 안타라, 산차리, 아보그와 같은 것이다. 이 키르타나는 음악을 배우지 않은 사람도 부를 수 있게 간단하지만, 크르티(Krti)는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어야 부를 수 있는 것인데, 그것도 키르타나와 같은 구조를 가졌다.

비나[편집]

vina 인도음악의 악기. 인도 고대의 비나는 흔히 괘(fret)가 붙여져 있고, 그 밑에는 공명(共鳴)박이 보통 북인도에서는 두 개, 남인도에서는 한 개 달렸다. 괘 위에 줄이 넷 얹혀 있는데, 그것을 왼손으로 짚고, 또 그 옆에 줄 셋이 있는데 그것은 개방현(開放絃)으로 길게 끄는 드론(drone)으로 반주한다. 줄은 4도와 5도로 또는 4도로, 또는 5도로 조현(調絃)한다. 이 악기는 드루파드 연주에 쓰인다.

시타르[편집]

sitar 이 악기는 비파와 같이 생겼는데, 목이 길고, 괘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시타르는 셋 내지 일곱 줄을 가졌고, 밑에 공명줄 12개(또는 13개)를 가졌다. 현법은 비나의 그것과 같다.

사로드[편집]

sarod 북인도의 발현악기(撥絃樂器). 플렉트럼(plectrum)으로 뜯기도 하고 활(弓)로 긋기도 한다. 창자(gut)줄이 여섯이고 그 밑에 가는 철사의 공명줄이 약 12개 있다.

탐부라[편집]

tambura 지속주음(持續主音) 연주를 위한 인도음악의 현악기. 시타르와 같이 목(neck)이 길지만 그러나 괘가 없고 그 철사줄은 넷이고 개방현으로 그저 드론(drone)반주만 한다.

사랑기[편집]

sarangi 북인도의 찰현(擦絃)악기. 원래 춤의 반주에 쓰이는 통속악기인데, 창자줄 셋과 공명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짧은 활로 줄을 긋는다.

딜루바[편집]

dilruba 인도의 찰현악기. 사랑기와 같이 활로 연주하지만, 목이 길고 괘를 가졌다. 선율줄은 셋 또는 넷이고 그 밑에 공명줄이 많이 있다.

반스리[편집]

bansri 인도음악에서 쓰는 가로피리(橫笛). 인도에는 여러 가지의 피리가 많은데, 대개 대(竹)로 만들고 구멍의 수가 각각 다르다.

샤나이[편집]

shanai, sanayi 인도의 관악기. 우리나라의 쇠납(호적 또는 태평소)과 같고 통속적으로 사용된다.

무리당감[편집]

muridangam 인도의 타악기. 우리나라의 장고와 같이 좌우 양쪽에 가죽을 붙였지만 허리가 가늘지 않고 반대로 더 굵다. 이 옛날 악기는 북부 인도에서 드루파드 반주에 쓰이고 남인도에서 쓰이기도 한다.

타블라[편집]

tabla 인도의 타악기로서 일종의 북. 쌍으로 되어 있으며 무리당감 북의 허리를 두 동강으로 잘라낸 것같이 생겼다. 오른쪽 북은 타블라라고 부르고 왼쪽 북은 바야(b y )라고 부른다.

아랍음악[편집]

아랍의 음악[편집]

Arab-音樂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일본·인도의 음악과 함께 동양 문화민족의 대표이며, 서아시아·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 북해안에 걸친 이슬람 음악권의 본원이기도 하다. 광의로는 이슬람 음악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협의로는 터키·페르시아 등의 음악과 구별하여 아라비아반도(사우디아라비아)의 음악을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이웃인 이라크·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스라엘 등 각국의 아랍인 음악도 포함한다. 이슬람 교도의 음악적 영향은 중세 유럽·근세 이후의 인도·동남아시아·에티오피아·수단 등에까지 미쳤으며, 그리스트교 및 불교의 문명 속에서 자란 음악과 함께 세계의 3대 음악권의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슬람 이전의 아랍음악[편집]

Islam 以前-Arab 音樂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국(敎國) 창립(622)까지의 자연숭배나 우상숭배를 했던 무명시대(無明時代)에도 아랍 음악은 물론 있었다. 유목생활 가운데서 원시적인 노동의 노래나 제전음악(祭典音樂)이 발생했으나, 일찍부터 선진 문명국인 헤브라이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데헤자스 지방(홍해와 마주한 반도 북서부)을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여 대상(隊商)의 활동이 융성해짐에 따라 노래(후다)가 발생했다. 2, 3세기에 왕국이 남북에 건립, 궁정에서 직업 음악가나 무희(舞姬)가 활동하고, 또한 악기 하나로 각지를 돌아다니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중요한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후세의 아랍 음악인은 이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이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까지 번짐과 동시에 성지(聖地)를 쫓겨난 유태인이 반도의 서해안에 남하하여 헤브라이 음악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사산조(朝) 페르시아(3-7세기)의 음악도 크게 채택되었다. 나슈브(戀歌), 라사(哀歌), 카시그(讚歌) 등의 시(詩)가 생겨났으며, 시인이 작시·작곡을 겸하였다.

이슬람 시대의 아랍음악[편집]

Islam 時代-Arab 音樂 622년의 마호메트의 헤지라(메디나 聖遷) 이후의 이슬람 시대는 사라센 제국 시대와 그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음악사적으로 다시 세분하면 정통 칼리프 시대(622-661), 옴미아드조 시대(661-750)의 융성기, 아바스조 시대(750-1258)의 거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전성기와 그 후반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정체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융성기[편집]

隆盛期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제(禁制)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속음악은 궁정·귀족·부호 등의 보호 아래 교의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하였다. 마호메트의 한 아내는 가희(歌姬) 출신이었으며, 아랍의 대표적 악기가 된 우드('ud)의 보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옴미아드조에 와서는 사라센 제국이 건설되자 수도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 페르시아나 비잔틴과 교섭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채택, 그리스의 과학이나 예술이 시리아어(語)나 아랍어로 번역되어 과학적인 음악이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다른 동양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아랍 음악의 특징이 되었으며, 궁정의 할렘이 융성해지고 가희나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여 귀족 및 부호와 유대를 맺었다. 일찍부터 음악이론서도 저술되고 그리스어에 따라 음악을 무지키(Mus gi)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전성기[편집]

全盛期 다음의 압바스조 500년 동안의 음악의 전성기는 처음 100년간이라고 하겠으며, 한편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750년 동안 융성했던 옴미아드조에서는 초기 250년 동안이 이슬람 음악의 전성기였다. 압바스조는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겨 공전의 대도시를 만들었으며, 당시의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이나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및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와 함께 세계의 4대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과학과 예술이 궁정 귀족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특히 <아라비안나이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제5대왕 하른 아라시도(재위 786-809)의 호화로운 궁정생활 속에는 음악과 무용이 중요한 구실을 다하였다. 이 황금시대에 음악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이론가와 음악가가 배출되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잘잘(Zal Zal)은 새로운 아랍 음계를 발견, 그것이 오늘날 아랍 음악의 최대 특징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는 <노래의 서(書), (Kitabal Aghani)>를 저술하였으며, 알 킨디(al-Kindi, 873년경. 류트의 4현과 리듬적 선법에 대해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는 <음악의 서>를 저술하였다. 후자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아랍 음악서의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시르야브는 코르도바로 옮겨 코르도바 학파의 다수 명인(名人)이나 학자를 육성하였다.

정체기[편집]

停滯期 10세기 이후의 동(東)칼리프, 11세기 이후의 서(西)칼리프는 이슬람 음악의 정체기를 맞았으나 이 동안에도 이론가를 배출하여, 특히 음계이론의 연구로는 뛰어난 것이 많았다. 10세기경에 나타난 라바브(rabab)가 보급된 것도 이 시대이며 풍압(風壓) 오르간과 수압(水壓) 오르간이 아랍에서 발달, 유럽에 보급되어 오르간의 역사에 큰 구실을 한 것도 이 시대였다. 몽고인에 의한 파괴가 있은 뒤에 11-13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 계속되는 오스만 투르크 및 티무르의 통치를 받아 서아시아의 이슬람권이 분열하기 시작하자 터키나 페르시아는 독자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아랍 본토의 음악과는 이미 그 본질이 다른 국민음악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서아프리카 북쪽 해안 등도 이슬람 음악권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카프카즈의 중계로 멀리 인도 북부나 동인도 제도에도 이슬람교도의 손으로 이슬람 음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키타브 알 아그하니[편집]

Kitab al-Aghani 노래의 서로 번역되는 이 책은 10세기에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가 저술. 이 책에는 시인과 가수들에 관한 전기(傳記)가 실려 있으며 궁정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관한 기록도 있다. 또한 의식적인 기교의 성장과 확실한 여러 가지 형식적 규약과 함께 궁정음악은 대중음악과 유리된 상태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아랍족의 문화사로서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성을 지닌다.

아랍음악의 악리[편집]

Arab 音樂-樂理 아랍인의 악리 연구가 결실을 맺은 것은 코르도바였으며, 그리스적·아랍적인 이론이 여기서 완성을 보아 중세 유럽인은 코르도바로부터 배우는 바가 많았으며 중세 음악에의 영향, 특히 세속음악에의 자극이 컸다. 이론가의 제1인자인 알리 알 이스파하니(Ali al-Isfah ni)를 비롯하여 음악 이론가, 철학자 및 과학자로 유명한 알 파라비(Al-F r bi)의 저서인 <음악의 대서(大書)(Kitab al-Musiqi al-Kabir)>가 현존하여, 최근에 프랑스인 엘랑제르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동양의 다른 여러 나라와 현저하게 다른 점은 과학적인 음악 이론이 그리스로부터 들어와 발전했다는 점이다. 음악이론은 예술로서라기보다 과학적인 음악이론으로서 발달한 점이 중국과 흡사하며 아랍의 우드('ud), 중국의 율관(律管)은 그리스의 모노코드(monochord)와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였다. 근세 인도의 음악이론, 특히 음계론 및 리듬론의 발달도 이슬람의 영향에 의하는 점이 많았다. 우드를 비롯한 현악기에 음의 수리론(數理論)을 반영하여 척도(尺度)가 새겨져 있다는 점도 진귀하다. 음률은 옛날에는 9율(九律)이었다고 전해지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9율은 4도 음정을 차례로 겹쳐 얻은 음정을 1옥타브 안에 배열시킨 것이다.

아랍음악의 선법[편집]

Arab 音樂-旋法 아랍 특유의 전통에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요소가 가미되는 가운데, 특히 옴미아드 시기(Ommiad, 661-750)에서는 8개의 온음계적 선법 조직의 발생을 볼 수 있다. 음정구조 면에서 이 8개의 온음계적 선법은 유럽의 교회 선법과 유사하다. 비록 그 유사성이 선율적인 데까지 뻗쳤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조직은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Ishaq al-Mawsili, 850년), 가수들·작곡가 및 류트의 명인 등에서 그 선법 조직에 관한 훌륭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류트 명인들은 라이벌 학파가 제창한 새 양식(주로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것들)에 대해서 그 조직을 유지해 왔다.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의 제자인 지르야브(Ziryab)도 에스파냐에서 같은 명성을 얻었는데 그는 우드('ud, lute)에 다섯번째의 현(絃)을 가함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엔 고전적인 악기가 퍽 인기였다. 특히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와 그의 문하생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9세기와 10세기 동안에 발생한 양식으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들 중에서 오늘날까지 도입되어 남아 있는 기초 이론인 순전히 3/4 음정의 온음계적(온음과 반음) 선법조직은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로 인해서 오랜 음조직이 없어지게 되고 다수의 새로운 선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30종의 선법이 만들어졌는데, 그 대부분이 3/4 음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이 중동의 예술음악에 특징적인 면을 남겼다. 또한 13세기-16세기에 걸친 저명한 음악이론가들, 특히 사피 알 딘 알 우르마우이(Safi al-Din al-Urmawi), 쿠트브 알 딘 시히라지(Qutbal-Din Shirazi), 아브드 알 카아디르('Abd al-Qadir), 알 라드히키(al-Ladhiqi) 등은 옥타브 스케일로서 이 선법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 사용되었던 음표 및 음악을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보면, 분명히 당시의 선법이란 것이 보통 4도, 때로는 3도(중간 3도 혹은 장 3도) 혹은 5도를 잇는 작은 단위가 한정된 수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선법(Shadd, awaz, 후에 마캄이라 부르게 됨)은 음정이 단순하게 연속해서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자주 나타나는 어떤 일정한 선율형을 지님으로써, 두 개 혹은 뚜렷한 형으로 그 특징이 있는 몇 개의 단위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융합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첫음과 마침음의 위치가 선법으로 말미암아 정해진다. 즉 마침음이 되는 으뜸음(아래옥타브음)을 가지고 윗단위 선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고 아랫단위의 선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는데 흔히 쓰이는 선율형은 위 옥타브의 음으로 시작되게끔 구성되었다. 탐색 과정에(특히 연주자의 기교를 테스트하도록 짜여진 경과구에서) 더 많은 단위를 간결하게 도입할 수도 있는데 조바꿈이 매우 오묘한 효과를 준다.

마캄[편집]

maqam 아랍·터키·페르시아의 음악 용어. 본래는 아랍어로 7-8세기경에 아랍에 들어온 여러 나라의 선법을 일컫는 명칭에 불과했으나 아랍 음악 이론의 발달에 따라 그것을 음계의 체계로 집약,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순전히 음계의 뜻으로, 또는 마침음의 위치에 의한 선법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는가 하면, 전통적인 선율형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해석되어 현재 아랍 국가들 내부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마캄의 집약체계를 가지고 있다.

아랍음악의 리듬[편집]

Arab 音樂-Rhythm 리듬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의 아랍 음악인들은 관습에 의한 불가분의 기본적인 시간 단위를 설정한다. 거기에서 이론상의 선율 주기를 도출하는데, 각 주기는 시간 단위의 정해진 수로 이루어지며 그 주기 안에서 센박, 여린박, 그리고 쉼을 잘 배치해 놓음으로써 식별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기는 길이가 같더라도 극히 명확하다.알 타킬 알 아우알알 타킬 알 타 니연주에서는 몇 개의 쉼표가 들어갈 수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선율 기법의 발전과 더불어 리듬형의 수도 9세기의 8개에서 16세기에는 20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후자의 20여개 중에는 페르시아인과 터키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도 몇 개 포함되어 있으며, 한편 수우피(Sufi) 교파의 의식 가운데 포함되었던 아크사크(aksak) 댄스 리듬도 채택된 것이 몇 개 있다. 양식상의 의미를 갖는 '무거운' 리듬과 '가벼운' 리듬의 차이점이 옛날에는 퍽 강했다. 몇 개의 리듬 주기는 굉장히 큰 시간 단위의 수를 포함하는 관계로(작으면 24, 크면 200까지) 많이 쓰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리듬 주기는 한 악곡에만 쓰여진다. 한때 아브드 알 카아디르('Abd al-Qadir, 1435)는 수개의 리듬이 도입되거나 두 개의 리듬이 그 안에서 동시에 사용되는 형식을 시도한 바 있다.

아랍음악의 형식[편집]

Arab 音樂-形式 9세기 또는 이미 이슬람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몇몇 장르로 나누어지는 많은 형식이 인정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시 사용되던 몇 개의 기법적인 용어들에 대한 의미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중 몇 개는 시구(보통 운율)와 노래 사이에 구조적인 상호 관련성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지만 시적 운율과 같은 이름을 지닌 리듬 주기 사이에는 확실하게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뒤늦게 아브드 알 카아디르는 형식에 대한 유익한 설명을 하였다. 한 형식과 그 외 형식들을 구별하여 언급했는데 그 외 형식들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악곡에 가사가 있거나 없거나, 가사가 있다면 그 독창부가 아랍어이건 페르시아어이건, 또는 그 악곡에 악기의 전주(前奏)의 여부, 형식 자체가 무소절(無小節)인지 혹은 하나(혹은 그 이상)의 리듬 주기를 갖는지, 후렴이 있는지 없는지 등이다. 그가 지적한 형식들 중 가장 중요한 형식은 바시트(basit)와 나스히드 알 아라브(Nashid al-'arab)이다.

바시트[편집]

basit 아브드 알 카아디르의 형식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것은 주어진 세 개의 리듬 중에서 그 중 하나에 아랍어로 된 독창부가 있으며 악기의 전주가 뒤따른다.

나스히드 알 아라브[편집]

Nashid al-'arab 여기에서는 4개의 아랍 운율이 노래되는데, 둘째와 셋째가 성악곡으로 연창(演唱)되는 동안에 첫째와 셋째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불려진다.

나우바[편집]

nawba 가장 복합성을 띤 형식인데, 이것은 4악장의 모음곡이다. 제1악장(qawl)과 제4악장(furubasht)은 바시트(basit)를 닮도록 되어 있다. 제2악장(ghazal)은 페르시아의 독창곡이며, 제3악장(tarana)은 아랍이나 페르시아의 4행시(ruba'i)의 곡인데, 바시트로서 동일한 리드믹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같은 선율적이고 리듬적인 선법은 4악장 모두에 쓰일 수 있으며 각 악장은 악기의 도입으로 시작될 수 있다.

현대의 아랍음악[편집]

現代-Arab 音樂 16-19세기의 대부분의 아랍 세계는 오토만(Ottoman)제국에 지배되었다. 이 때는 정치적 내지 문화적으로 쇠퇴기라고 할 수 있다. 궁정에 의존했던 예술 음악은 터키의 고전음악에 많은 영향을 입었지만 터키음악 역시 아랍과 페르시아의 전통에 힘입은 바 컸기 때문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16세기까지의 선법과 리듬은 20세기 예술 음악에 적용할 수 있다. 현대의 마캄(maqam)은 중세의 그것보다는 다소 복잡해졌으나 구조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지역의 극히 중요한 기악적 형식은 타크심(taqsim)과 바쉬라프(bashraf)이다.

타크심[편집]

taqsim 무소절의 즉흥곡. 보통 여기에는 독창이 자주 나타나지만, 일단의 악기 주자들은 마캄을 계속하도록 돌아가면서 연주한다. 선율악기가 내는 악구 반복 저음의 악구에 의해 리듬주기를 나타내는 가운데 하나의 변형인 타크심의 소절 형식도 보인다.

바시라프[편집]

bashraf 주로 단절(單節)을 포함하는 간주곡에 의해 분리되는 같은 길이(khana)의 4악절로 구성되는 소절 형식인데, 간주곡은 앙상블로 연주되며 각 악절은 여러 독창자에 의존한다.

아랍음악의 악기[편집]

Arab 音樂-樂器 역사적 관계로나 풍토의 근사성으로 보아 아랍 악기는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랍 특유의 우드('ud), 라바브(rabab), 나카라(naqqara)를 중심으로 하는 악기편성은 인도 고유의 비나(v na), 사랑기(s rangi), 타블라 바야(tabla-bahya)를 위주로 하는 인도의 악기 편성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또한 과학적인 악기가 악리상(樂理上)으로도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동양에서는 그 유례가 없다고 하겠다.

우드[편집]

'ud 아랍 특유의 나우바(nawba)를 연주할 때 사용되는 발현악기(撥絃樂器)로서, 보통 5현 구조로 되어 있다. 최저현 이외는 모두 겹줄이며, G-A-d-g-e의 순열로 맞춘다. 그러나 현의 수효는 4현에서 6현까지 있으며, 조현법(調絃法)도 4도를 기본으로 한다. 최고·최저현에서는 여러 가지 음정이 되고, 그 종류가 많다. 연주할 때는 새의 날개깃으로 만돌린처럼 퉁긴다. 원래 페르시아에 기원을 둔 이 악기는 10세기 이후, 아랍 음악에서는 중요시되어 왔고, 고래의 이론서의 대부분이 이 악기를 기초로 음계이론을 고찰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의 음악뿐만 아니라 12세기 이후의 남유럽(특히 에스파냐)이나 동유럽에서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라바브[편집]

rabab 아랍의 찰현악기(擦絃樂器)로서 우드와 같이 아랍의 대표적인 악기. 이 악기는 아랍에서 페르시아와 터키로 전해졌으나, 거기서는 케만체라고 불리고, 그 형태도 많이 변하였다. 인도네시아나 타이에도 아랍의 라바브와 흡사한 형태의 악기가 전해졌고, 중국의 호궁(胡弓)이나 몽고의 마두금(馬頭琴) 등도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카눈[편집]

qanun 아랍·터키의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치터족(Zither族)의 발현악기. 엷은 상자 표면에 78개의 양장(羊腸) 또는 나일론 현을 매고 좌우 집게손가락에 끼운 골무로 연주한다. 아랍 음악사를 통해 가장 중요시되는 우드 다음가는 현악기로 치며, 현의 왼쪽에 달린 장치에 의해 미소한 음정의 조절이 가능하여 많은 마캄에 조현(組絃)하여 연주할 수가 있다.

탕부르[편집]

tanb r 서아시아 및 동유럽에서 사용되는 긴 넥(棹)을 가진 류트족(lute族)의 발현악기. 지방에 따라 형태나 주법에 얼마쯤의 차이가 있으며, 종류가 많은데 대부분 긴 넥에 17-26 정도의 플렛이 있고, 3-6개의 현을 나무껍질이나 새의 죽지, 뿔조각, 플라스틱 등의 골무(플렉트럼)로 퉁기는데, 주로 무도나 노래의 반주에 사용된다.

나카라[편집]

naqqara 음높이를 달리하는 2개조의 솥형 북이며, 이란 등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보게 된다. 대형의 것은 말 위에 달게 되며, 그것이 팀파니로 되었다.

다라부카[편집]

darabuka 꽃병 형태의 나무 또는 흙으로 만들어진 통(胴)의 단피고(單皮鼓)로서, 왼쪽에 끼고 오른손으로 친다. 이것이 타이로 건너와서 톤이라든가 타프 등으로 불리고 있다.

타르[편집]

tar 이집트, 시리아 등의 대형 단피고(單皮鼓)이거나 방울 없는 탬버린의 대형북. 그러나 타르는 북의 의미로서 널리 쓰이며 방울 달린 탬버린으로 불린다. 또 이란의 타르는 현악기의 이름으로도 되어 있다.

다프[편집]

daff 데프(deff)라고도 불리며, 헤브라이어로는 토프(tof)라고도 불려서 유래가 깊은 악기. 탬버린의 별칭.

나이[편집]

nay 아랍에서는 피리를 흔히 나이(nay) 또는 네이(ney)라고도 부르며, 갈대피리도 사나이, 스루나이, 그리고 중국서는 소오나 등으로 불리며 동방으로 전파되어 왔다.

산투르[편집]

santur 현대 민속악기로서(프살터족 중) 남아 있는 것에는 아랍의 산투르, 헝가리의 침발론(cymbalon), 독일의 하크브레트(Hackbrett), 영국의 덜시머(dulcimer), 중국과 한국의 양금(洋琴; 楊琴) 등이 있다.민족악기로서의 발현악기에서, 이슬람권(회교권)에서는 치터족(거문고 종류)에 카눈(q n n)과 산투르(sant r)가 있다. 손잡이가 있는 것에서는 탐부라(tamb ra), 세타르(set r), 그리고 타르(tar)라고 하는 호리병박 형태의 동체(胴體)를 지닌 것이 있으며, 다시금 중요한 것에 우드(ud)가 있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바르바트가 아라비아에서 개작되고, 다시금 유럽으로 건너가서 류트로 된 것이다. 우드는 'wood'와 동일한 나무를 말하는 것으로서, 가죽을 붙이지 않고 전부 나무로 만들어진 것에 의거한다. 아라비아의 우드에는 본래 프레트가 없다. 4쌍현이 보통이지만, 6코스 등 다현(多絃)의 것도 만들어지고 있다.


en:Music of Vietn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