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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편집]

헤로도토스이소크라테스 및 다른 초기 작가들은 모두 피타고라스가 에게 해 동쪽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났다는 데 설명이 일치하며, 또한 그가 므네사르코스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1] 피타고라스의 아버지는 보석 각수장 또는 상인이었다. 피타고라스라는 이름은 피티안 아폴론과 엮여 설명되는데, 아리스티포스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진리를 말하며(agor-) 이는 피티안(Pyth-)에 못지 않는다.” 또 이암블리코스는, 피티아가 피타고라스를 임신한 어미에게 예언하기를 최고로 위려(偉麗)하고 지혜롭고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아이를 낳을 것이라 했다는 일화를 전한다.[2] 나중에 어떤 사료에서 피타고라스 어머니의 이름은 피티아스라고 나온다.[3] 그의 탄생 시기에 관해서는, 아리스토크세누스가 진술하길 피타고라스가 폴리크라테스의 통치 하에 있던 사모스를 떠날 무렵이 40세였다고 했으므로 기원전 570년 즈음이라고 생각된다.[4]

고대의 전기 작가가 피타고라스의 범상치 않은 철학관의 기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신뢰할 만한 정보는 없으나, 일대(一大)의 현자들이 피타고라스를 맡았다. 어떤 선생은 거의 전적으로 그리스에서 가르침을 주었고 다른 선생의 가르침은 오로지 이집트나 동방에서 이루어졌다. 사모스의 크레오필로스,[5] 헤르모다마스,[6] 프리메네의 비아스,[5] 탈레스,[5] 아낙시만드로스,[7] 시로스의 페레키데스[8] 등이 피타고라스의 스승으로 언급된다. 또 이집트인들이 지리학을, 페니키아인들이 산수를, 칼데아인들이 천문학을, 마기승들이 교의와 금언(金言)을 가르쳤다고 한다.[9] 그의 스승에 관한 다양한 주장들을 살펴보면 페레키데스가 가장 자주 언급된다.

피타고라스가 오랜 여행을 했고 이집트 뿐 아니라 아라비아, 페니키아, 유대 지방, 바빌론, 심지어는 인도까지 다녀왔으며, 그 목적이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집대성하려는, 특히 신들의 신비적인 밀교의 의식을 배우려는 것이었음은 고대에는 자명한 사실이었다.[10] 바빌론까지 갔다는 것은 가능하며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다. 플루타르코스는 그의 저서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관하여》에서, 피타고라스는 이집트를 여행하는 동안

주석[편집]

  1. Herodotus, iv. 95, Isocrates, Busiris, 28-9; 후기 작가들은 피타고라스를 티레니아 사람 또는 필리아스 사람이라 불렀으며, 아버지의 이름은 마르마코스나 데마라투스였다고 한다(Later writers called him a Tyrrhenian or Phliasian, and gave Marmacus, or Demaratus, as the name of his father), Diogenes Laërtius, viii. 1; Porphyry, Vit. Pyth. 1, 2; Justin, xx. 4; Pausanias, ii. 13.
  2. Riedweg, Christoph. 《Pythagoras: His Life, Teaching and Influence》. 코넬 대학교 출판부. 5~6, 59, 73쪽. 
  3. Apollonius of Tyana ap. Porphyry, Vit. Pyth. 2
  4. Porphyry, Vit. Pyth. 9
  5. Iamblichus, Vit. Pyth. 9
  6. Porphyry, Vit. Pyth. 2, Diogenes Laërtius, viii. 2
  7. Iamblichus, Vit. Pyth. 9; Porphyry, Vit. Pyth. 2
  8. Aristoxenus and others in Diogenes Laërtius, i. 118, 119; Cicero, de Div. i. 49
  9. Porphyry, Vit. Pyth. 6
  10. Diogenes Laërtius, viii. 2; Porphyry, Vit. Pyth. 11, 12; Iamblichus, Vit. Pyth. 14, e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