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Cjw6679/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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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시절[편집]

서울대학교사범대학초등학교[편집]

모래놀이터

제가 나온 초등학교입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에 위치해있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서울대학교 부속 국립초등학교입니다. 한학년에 5개의 반이 있었고 한 반은 24명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실력이 우수하고 시설이 좋아 인기가 많은 초등학교입니다. 제 기억에 의하면 선생님들의 대부분은 서울대학교나 서울대학교대학원을 나오셨었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매우 많았습니다. 100% 추첨으로 신입생을 뽑는데 제가 입학할 때 24.1:1의 경쟁률을 기록했습니다. 전 운이 좋게도 뒤에서 2번째로 뽑혔습니다.

초등학교 때 성격[편집]

지금과는 다르게 전 초등학교 때 매우 소심한 아이였습니다. 부모님들끼리 친하셔서 제 주위엔 활동적이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많았지만 그 친구들이 축구나 야구를 하러가자고 할 때마다 거절하고 혼자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놀곤했습니다. 스포츠를 좋아하시던 부모님은 저를 I-ONE 축구클럽에 보내 제가 활동적이고 운동을 잘하는 아이로 크기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전 축구클럽에서 항상 골대 옆을 지키는 수비수였습니다.

성격은 순수하고 착했고 교우관계가 좋았습니다. 항상 반장을 했고 똑똑하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중학교 시절[편집]

이반 라키티치, 중학교 때 좋아했던 축구선수

고명중학교[편집]

제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 중학교입니다. 1939년에 세워진 고명중학교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재건축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건물이 아직 목조건물이고 시설이 좋지 못합니다. 화장실이 학교 외부에 있었고 체육관도 없었습니다.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건물 외부를 흰색과 파란색으로 다시 칠한 것 외에는 학교에서 시설관련해서 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습니다.

성격과 취미의 변화[편집]

소심하기만 했던 초등학교 때 성격은 중학교 때 많이 바뀌었습니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중학교에는 순종적이지 않은 친구들이 많았고 사춘기가 오면서 모든 일을 마냥 웃겨넘겼던 전 감정표현에 솔직해졌습니다. 친구들과 싸우는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를 할 때 감정적으로 격양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초등학교 때 관심도 없었던 스포츠에 눈을 뜨게 된 것에는 주변친구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야구선수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승부욕이 강해서 선수친구들의 실력을 따라잡기위해 틈만 나면 투수피칭연습을 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땐 너무 연습을 많이해서 어깨와 팔꿈치에 염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점점 강해져 야구선수가 되고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고 중학교 2학년 말에는 110km를 넘나드는 공을 던졌습니다. 꽤나 빠른 성장세를 보였고 가능성이 많은 선수라고 인정받았었습니다.

야구를 하면서 축구에도 관심이 생겼고 골키퍼로 축구를 시작했습니다. 키가 크고 팔이 길어서 골키퍼로 시작했지만 친구들과 주말까지 매일매일 축구하면서 실력이 급격히 늘어 미드필더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때 FC바르셀로나를 응원하면서 라키티치라는 미드필더의 팬이 되었고 그의 플레이스타일을 모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편집]

신일고등학교[편집]

중학교와는 달리 시설이 매우 우수한 자율형사립고등학교였습니다. 서울특별시 강북구에 위치한 학교는 집에서 버스타고 20분정도 거리였습니다. 선수야구부가 있는 학교여서 이따금씩 관중석에 앉아 야구훈련하는 것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올라오면서 야구선수로 성공하기 매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야구선수의 꿈을 접었습니다.

학업과 장래희망[편집]

항공기 조종사의 꿈을 가졌던 고등학교시절

고등학교 성적은 대학교 입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1학년 때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또 파일럿이 되고 싶다는 꿈을 가졌기에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강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분야의 꿈을 가진 친구들을 모아 항공동아리를 만들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했습니다. 공군사관학교와 항공대학교를 목표로 매일매일 학교자습실과 집앞 독서실에서 공부했고 1학년 2학기에는 내신성적 10등 안에 들기도 했습니다. 매년 반장을 했고 3학년 때는 수학동아리부장으로서 부스활동을 이끌고 동아리활동을 진행하는 등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관학교 1차 시험 직전에 공군사관학교를 지원하지 않고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모교방문설명회 때 75기 정식희 선배생도를 보고 육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파일럿보다 군인이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항공대학교 항공운항과에도 수시로 합격했지만 육군사관학교를 택했습니다.

구기대회의 주역[편집]

중학교 때 급격히 늘은 축구실력은 고등학교 때 빛을 발했습니다. 축구실력으로 친구들에게 인정받았고 2학년 땐 부주장으로 구기대회에 출전하고 3학년땐 주장으로 구기대회에 출전하여 아쉽게 준우승을 했습니다.

육사에 합격하고 지금까지[편집]

공부에 대한 회의[편집]

브롤스타즈를 만든 유명휴대폰게임회사 Supercell

육사에 입학하고 난 뒤엔 공부에 대한 회의를 크게 느꼈습니다. 왜 공부를 해야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지 못하고 1학기를 보냈습니다. 호실동기생과 함께 '브롤스타즈'라는 휴대폰게임에 빠져 틈만 나면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브롤스타즈를 만든 'Supercell'의 다른게임도 많이 했습니다. 중대 내에서 독보적인 기록을 가질 정도로 많은 시간을 게임에 투자했습니다.

1학기 땐 공부를 하기보다 동기생들과 많은 추억을 쌓고 선배생도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데 집중했습니다. 1학년 1학기 때는 출타가 불가했기 때문에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영화를 빌려 호실동기생들과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기도 하고 축구, 족구대결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공부나 과제를 할 시간은 부족했고 전날이나 직전에 하곤했습니다. 또 장난기가 심한 선배생도를 만나 수시로 삼행시를 짓는 등 많은 장난을 당하고 선배생도들과 함께 족구, 풋살내기를 했습니다. (특히 생도의 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한 장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동기생들 사이에서도 선배생도들의 장난을 많이 당하는 'toy생도'라는 별명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공부에 집중하지 않다보니 당연히 성적은 바닥을 쳤습니다. 태어나서 처음보는 등수를 받았지만 전 이상하게도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훈 때 자존심에 제대로 스크래치가 나게 됩니다.

첫 하훈[편집]

제 첫 하훈이 기억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제 성적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기 때문입니다. 하훈 시작전에 중대장 직책에 지원했지만 떨어진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뭔가에 떨어지거나 실패한 기분을 느껴보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습니다. 또 기훈 때 실거리 사격에서 20발 중 17발을 쐈는데 하훈 때는 17발을 커녕 16발이 최대였습니다. 만발을 맞추기위해 동기생들이 호실에서 자고있을 때 사격장으로 가서 하루종일 300발 정도 사격을 했지만 16발을 넘지 못했습니다. 지도보고도 많이 받고 각개전투를 한번에 통과하지 못하고 한번 더하는 등 수많은 실패를 겪었습니다. 평소에 스스로에 대한 승부욕이 매우 강한 성격인데 실패를 무수히 많이 겪다보니 자존감까지 떨어졌습니다. 이 때 전 엄청나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내 문제가 무엇일까?, 내가 이거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 등 잠을 못 이룰정도로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스로에게 던진 무수히 많은 질문의 결론은 악순환이었습니다. 1학기때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훈중대장직책을 부여받지 못했고 분대원생도로 하훈을 받다보니 수동적으로 의지없이 하훈 하루하루가 지나가길 기다렸고 열정을 가지지 않았기에 하훈성적도 좋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제 스스로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야한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다시말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훈 후 2학기[편집]

하훈이 끝나고 새로운 2학기를 맞았습니다.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19년동안 쓰지 않았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공부와 과제도 열심히 했습니다. 또 화전기에도 지원하여 본선에 진출하고 열심히 상점을 따서 2달 만에 상점 60점을 따냈습니다. 상점외박도 받고 교수님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니 학교생활이 더 재밌어졌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강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2학기가 끝나지 않았지만 중간고사 성적을 봤을 땐 1학기와는 전혀 다른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해서 내년 하훈중대장, 더 나아가서 생도생활 간 위탁을 받고 4학년 중대장, 휼룽한 군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