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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Bae Myoung H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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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파함(1873-1929) 과 오순절 신학

1. 파함의 생애와 신학적 배경   찰스 파함은 오아이오주 출생, 공식적인 신학교육을 받지 않았고, 감리교회에 출석하여 성결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5세에 독립적인 교회사역을 시작하였다. 1895년 그는 감리교 교단에서 성령의 음성대로 분리하여 지역교회와 독립된 자유로운 예배 형식과 조직의 교회를 설립하였다. 1896년 퀘이커 출신여성과 결혼하였고, 당시 그는 감리교 부흥사로서 활동하였으며,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을 강조하는 복음전도 운동을 이끌었다.

파함은 1900년 10월 캔서스주 토페카시에 벧엘 성서신학교를 설립하여 40여명의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가 구세주이며 특히 신유의 사역을 강조하였다. 이 학교의 특징은 교재를 오직 성경만으로 사용하였다. 1901년 1월초 그는 인근 도시로 천막부흥회 인도 차 3일간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작성케 하였다. 그런데 그가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학생들은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성령세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이었다. 파함은 1905년에 휴스톤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적인 전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셰이모어(W. Seymour)가 성령세례를 받아 오순절적인 전도자로 되었고 그는 소속교단에서 설교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셰이모어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복음 그대로를 설파함이 옳은 것이라 믿어 1906년 로스안젤레스 아주사(Azuza)거리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부흥회는 1주간이나 또는 1∼2개월에 끝나는 집회가 아니었으며, 7년간이나 계속된 새로운 차원의 부흥회였으니 이 집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찬양이나 광고도 하지 않았고 폐회선언도 없었다. 셰이무어는 1906년부터 아주사 거리에서 7년간 계속된 오순절적인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찬송과 기도, 설교로 매일 밤낮 모였다. 집회 시에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고 이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성령을 받았으며, 그들은 다시 제 고장으로 돌아가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캘리포니아, 시카고, 캐나다, 뉴욕, 죠지아, 플로리다 등지에서 오순절운동이 속속 전개되었다. 이 무렵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서도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으며 한국 평양에서 일어났던 1907년 부흥운동도 그 실례로 들 수 있다.   2. 하나님의 성회 설립  1914년 4월 알칸소스주 핫 스프링스에서 하나님의 성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들은 성령받은 오순절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연합하고 협력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였고, 반목·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배제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전진을 위하여 협력하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 하였다(엡 4:3).   미국 하나님의 성회의 창립총회의 목적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었다.

-1. 분열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가르침과 설교의 표준을 설정할 필요성과 오순절 백성들이 하나의 이름을 선택할 필요성이 있다. -2. 하나님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관례를 제정하여야 할 필요성과 분열하는 대신 하나 되고 세우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3.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이해하며 효과적인 해외선교의 의미와 방법을 연구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4. 교회재산 보존과 교회 사업수행을 위한 각 주(State)와 전국적 법률을 제정하여 오순절 역사의 다른 분열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이름으로 법인체를 설립한다. -5.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과 문서출판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창립총회에서 교단 명칭을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로 하고 교회 정치제도는 회중적 합의제를 채택하여 개교회 자율성을 중시할 것을 결의하였다.   3. 오순절 신학(하나님의 성회) 개요 a) 하나님의 성회의 교리적 일치  하나님의 성회는 오순절 신앙과 웨슬리적 성결운동과 케직운동 주제들을 중시한다. 1919년 오순절 신앙에 대해 초대의장 벨(E. N. Bell)은 다음내용을 언급하였다. -1. 하나님의 성회는 모든 급진적인 성경의 고등 비평을 반대한다. -2. 교회내의 모든 근대주의(Modernism)와 불신앙에 대항한다. -3. 우리들은 교회 안에 속해 있으나 구원받지 못하고 죄와 세속에 물든 사람들과 다르며 진정한 복음주의 교회들이 붙잡고 있는 성서의 참 진리들을 믿는다.   하나님의 성회는 기본적인 신학적 자세 5가지 즉 a) 개인적 체험존중 b) 쉬운 의사전달 c) 자발성 d) 내세(來世) 지향성 e) 성서적 권위를 견지한다.   이러한 가치들은 지도력과 생활양식, 예배와 교회문학에 대한 개념 속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또한 오순절주의자들만의 독특한 특징이 되는 동시에, 신학을 학구적으로 어렵게 다루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정기간행물 및 소책자 그리고 주일학교 교재와 서적들을 만들어 신자들의 성숙을 도와주었다. 또한 그들은 육체적 치유와 귀신 축출, 약물 중독에서의 해방과 응답받은 수천가지 기도에 대한 증거 기록들을 실례로 들어가며, 승리의 삶에 대해 설명했다.   성령의 역사에 도전하는 시도에서 자신을 교리적으로 변증하려는 과욕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자세를 견지하며 문서선교 및 성경공부에 치중하였고 평신도 지향성을 보여주었다.   b) 근본진리 성명(Statement of Fundamental Truths)     1916년 개최된 교단 총회가 통일성 문제(Oneness issue)로 분열되는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케르(D. Kerr)목사 등은 “근본진리 성명'을 제창하였는데, 이 성명은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적 견해를 지지하는 항목을 포함하고 있었다. 근본진리 성명은 목회의 조화를 이루기 위한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다. 성명서는 영감으로 된 것도 아니며 쟁취된 것도 아니나 순복음목회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이 성명이 모든 성경의 진리를 포함한다고 강변하지 않고, 쉽게 우리 믿음의 근본적인 진리들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도록 작성되었다. 결과적으로 "오직 하나님(聖父)"만을 강조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성회를 떠났다. "하나님의 치유(Divine Healing)"나 "성령세례(Baptism in the Spirit)"같은 교리들은 하나님의 성회가 가지는 그 독특한 특징에도 불구하고 순전한 것이다.   '근본진리 성명'이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목회 성장을 위한 교리의 토대로 이용되기는 하지만 그것이 처음부터 응집성을 지니고 있는 조직신학의 개요를 구성하려는 목적으로 하여 천명한 것은 아니었다.   c) 하나님 성회의 선교 원동력   (1) 후천년설(後千年說)과 전천년설(前千年說)의 영향      19세기 강단에서는 전반적으로 무천년설(無千年說)/후천년설(後千年說)을 설교했다. 당시의 시대정신을 장악한 것은 후천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진화론의 다윈(Darwin)과 뉴맨(J.H. Newman)과 핫지(C. Hodge) 등은 과학과 진리 형성에서, 종말론에서, '진보'라는 긍정적인 가치를 보고 인류에게 낙관적인 이상을 심었다. 그러나 또 다른 사람들은 임박한 주님의 재림을 앞두고 인류의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결론짓기도 하였다. 세계복음화에 헌신한 사람들은 임박한 종말에 대한 전천년설주의자들의 비관적인 평가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나타냈다.   (2) 하나님의 성회의 선교적 특색 하나님의 성회는 '사중복음(중생, 성령세례, 신유, 재림)'을 기치로 구원자와 세례자, 치유자와 왕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종말의 날에 사람들의 영혼 속에 회복하고자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방언 은사가 세계선교를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즉, "다른 나라에서의 복음선포를 위해, 선교적 복음주의를 촉진하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공유(公有)할 수 있는 언어인(크세노랄리아 ; xenolalia) 방언의 은사를 주셨다."고 믿었다. 선교 사역에서의 방언사용을 주장한 사람으로 '성령과 미국 성경학교'를 설립한 샌드포드(F. Sandford)는「불의 방언」지(誌) 통해 "세계를 빠르게 복음화시키기 위해 방언은사는 매우 유용한 것"이라고 하였다. 파함(C. Parham)과 그의 제자들은 세계를 빠르게 복음화하기 위해 성령 능력을 받기 원했다. 신약교회의 "사도적 신앙(Apostolic Faith)"이 완전하게 회복되었는데 로렌스는 오순절 운동의 첫 역사를 '회복된 사도적 신앙'(1916)이라고 불렀다. 파함은 마지막 때에 선택된 선교사들로서 성별되어 준비받고 있는 그들만이 지상명령을 완수한 후, 대환란 직전에 휴거에 참여하게 될 것이며,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뒤이어 올 7년 대환란 동안에 생존해야만 하는 시련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러한 주장이 오순절운동의 가장자리로 물러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성회는 그 초창기부터 오순절적인 부흥운동과 더불어 강력한 선교운동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3) 인종간의 화해, 신분 차별의 붕괴  

토페카의 부흥운동은 아주사거리 부흥운동(1906∼1909)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이 부흥운동의 지도자 세이모어는 소식지였던「사도적 신앙」과 아주사 거리의 집회에서 북미를 거쳐 해외로 나갔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요엘서 2:23의 "늦은 비(latter rain)"에 대한 소식이 국외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백인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부흥운동의 주제인 종말론적 주장과 파함의 유산인 복음전도 능력에 주목하게 되었다. 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 오순절주의자들은 인종간의 화해에 대해, 그리고 아주사의 학대받던 사람들 위에 성령의 능력이 부어진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드물게 다른 인종들과 함께 예배드렸다는 사실을 통해 이것이 입증되었는데, 이러한 현상은 세이모어의 유산인 성령의 열매로 인한 것이었다. 이 양자는 모두 아주사거리 부흥운동의 중요한 측면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복음전파에 대한 책임으로 인해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은 그 부흥운동에서 강조되는 다른 측면, 화해의 메시지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만 한다.

(4) 성서의 무오성과 영감

 하나님의 성회는 초기부터 "성서는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지는 계시이며, 믿음과 행위에 대한 오류가 없는 법칙으로, 이성과 양심보다 더 뛰어나지만, 이성과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하나님의 성회는 미국 내 뿐만아니라, 대양을 건너서까지 주요 교단 중의 하나가 되었다. 교리에 도전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할 때, 교회 지도자들은 그 문제들을 설명하기 위해 성명서를 발표함으로 견해를 밝혔다. 헌법(교리)을 수정하거나 1916년의 '근본진리선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1970년대초 "성경의 무오류(無誤謬)"의 출판(장로교의 지지)으로 인해, 20여회가 넘는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그 주제들로는 하나님의 치유와 창조, 묵상과 이혼, 재혼과 성령세례의 육체적인 초기 증거, 낙태와 하나님의 왕국, 여성의 목회참여 등을 다루고 있다. 총회 소속 "교리보존위원회"의 회원들은 최근 수년 동안에 신학적 발달을 지켜보기 위해 성명서를 내기도 하였다. '성명서(聲明書)'라는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성회의 신앙이 무엇인가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 성명서들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를 의학적인 처치와 반대되는 위치에 놓거나 경쟁적인 위치에 놓으려 하였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의술을 통해서 의사들은 많은 사람들을 도왔다."고 말함으로써 원래 표명하던 신념에서 다소 전이된 것을 알 수 있다.   d) 오순절 신학 평가  오순절 신학운동은 19~20세기에 미국의 개신교 교회들에서 일어난 은사(恩賜)운동으로서 그 특징은 '성령 세례'라는 회개 후의 신앙 체험을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추구해야 한다는 믿음에 있다. 이 체험은〈사도행전〉1:12~2:4에 기록대로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그리스도의 12제자들에게 성령이 최초로 강림한 사건과 동일하며, 이 체험에는 방언(→방언 은사)이라는 동일한 표적이 따른다고 믿는다. 오순절 교회는 성령세례를 받은 신자는 예언· 병고침, 방언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 등 초대교회에 존재했던 초자연적 은사 가운데 1가지는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순절 교회들은 19세기 미국에서 성서의 문자적 해석, 회개, 엄격한 도덕생활을 강조하며 일어난 개신교의 근본주의 분파나 성결교 분파의 신앙과 의식 형태들도 반영한다.(성결운동) 그러나 오순절 교회들은 성령세례 · 방언 · 병 고침 등 특정 교리에서 공통된 신앙을 갖고 있음에도 단일 교단으로 연합하지 못했다.

(1) 오순절 운동이 호소력을 갖게 된 배경   초기 오순절운동이 20세기초 성공을 거두었고, 계속 호소력을 유지한 이유는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시대적 배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는 성서적 신앙에 대한 무관심이 점차 증대해가던 시기였다. 감정에 바탕을 둔 신앙 표현들, 즉 열정적인 찬송, 즉흥적인 간증, 통성 기도, 평신도 설교자들이 간단한 성서 주제들을 가지고 하던 즉흥 설교 대신에 설교학으로 훈련받고, 고등성서 비평에 영향을 받은 '목사들'이 인도하는 질서와 형식을 갖춘 예배의식이 자리를 잡았다. 야외 집회 장소들과 엉성한 천막들 대신에 시설을 갖춘 예배당들이 들어섰다.

감리교, 침례교, 그리스도의 제자교회 등 한때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로 알려졌던 대 교단들이 중산층 교회로 변해, 가난한 사람들은 더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은 신앙 확신에 대한 갈망을 만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감정적· 심리적· 육체적 욕구를 채워줄 '가슴의 종교'로 되돌아가게 되기를 열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등장한 성결운동과 오순절 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었다.(신앙치유).   (2) 현대 오순절 신학의 기원  현대 오순절운동의 뿌리는 19세기 미국 여러 지역에서 발전한 성결교 부흥운동의 은사운동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운동은 1890년대 중반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그리스도교도 연맹'이라는 100명 가량으로 구성된 성결교 조직 가운데에서 발생했다. 이들은 나름대로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 체험에 기초하여 훗날 주요 오순절파 교단이 되었던 '하나님의 교회'(테네시 주 클리블랜드)를 세웠다.   파램은 성결운동에 영향 받은 목사로, 자만에 빠져있는 형식주의적인 교회가 부흥해야 하며, 오로지 다시 한 번 성령세례를 받음으로써만 부흥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감리교· 퀘이커교· 성결교 교회에서 목사 임명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그의 학생들에게, 기도하고 금식하고 성서를 연구하며,〈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들과 거의 흡사하게 임할 오순절의 축복과 권능을 기다리라고 가르쳤다.   1901년 1월 파램의 수많은 학생들 가운데 오즈먼이라는 여학생이 아무도 모르는 방언을 말하기 시작하면서 맨 처음으로 성령세례를 체험했다. 그 뒤 오순절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대부분 방언이 진정으로 성령세례를 받았음을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오순절의 재현은 예언적인 뜻도 부수적으로 지니고 있었는데, 파램과 그의 학생들은 자신들이 분명히 종말에 살고 있다는 뜻으로 이를 해석했다. 긴박감에 사로잡힌 파램과 그의 학생들은 종말이 오기 전에 미국 남서부에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 이들의 노력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파램에 따르면, 1905년까지 텍사스에서만 약 2만 5천명이 오순절파의 신앙과 의식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은사운동은 처음에는 인접한 캔자스· 미주리· 텍사스 주 등 3개주와 앨라배마· 플로리다주 등 일부 지역에서만 유력했을 뿐이다.   전국적-세계적인 확장은 1906년 '아주사가(街) 부흥운동'(Azusa Street revival)의 결과였다. 로스앤젤레스 공업지대의 아주사에 자리잡은 '사도신앙 복음선교회'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그 지도자 윌리엄 세이무어는 과거에 성결교회 목사를 지낸 외눈박이 흑인으로서, 찰스 파램이 텍사스 휴스턴에 세운 성서학교에서 오순절파의 가르침을 접한 인물이었다. 그의 인도로 감리교 예배당으로 쓰이던 낡은 건물이 오순절파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1906년 4월부터 계속하여 부자와 빈민, 흑인과 백인, 미국 원주민과 해외 이주민, 구도자와 회의론자들이 영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 아주사의 선교회로 몰려들었다. 영적인 활력을 얻고 은사를 받았다고 확신한 수많은 남녀들이 각지로 흩어져 방언의 실재와 목적을 자랑하면서 자기들의 체험담을 전했다.   역사가 깊은 개신교 교회들의 많은 교인들이 방언· 치유· 예언 등에 관한 가르침과 의식들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처음에는 자기들이 속해 있던 교회에서 이탈하여 또 다른 교단을 세울 의도를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각자 속한 교회에서 형식적인 예배, 현대주의 신앙, 세속적인 행위 등을 제거하는 일을 돕고, 각자의 교회를〈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묘사된 교회들과 비슷한 활기차고 성령으로 충만한 공동체들로 바꾸려고 노력하며, 개혁과 부흥의 대리인이 되고자 했을 뿐이다.   이들은 성서에서 예언하고 또 이미 자신들이 받은 바 있는 '축복의 소나기'가 자기들이 속해 있는 교단들에 흠뻑 내리기를 열망했고, 그로 인해 교단 전체가 오순절교회로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순절파가 초기에 꿈꾸었던 개신교 교계에 대한 정복은 실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초기부터 폭넓은 반박의 대상이 되었다.   은사를 추구하면서 종교생활을 계속하고 싶어 하던 사람들은 전통적인 개신교의 제도적인 틀 안에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점점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 결과 그러한 견해를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소속교회에서 나와 새롭고 뚜렷한 오순절파단체들을 구성했다.   이렇게 해서 구성된 대부분의 오순절 교회들은 과거 자기들이 몸담았던 교회를 연상시키는 것을 모두 기피했다. 이들은 특히 집행부서에 권한이 중복되거나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외부적인 교회조직의 통제에 종속되거나, 신앙과 정책 면에서 공통적인 관행들에 매이려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매우 비효율적인 이질성이 나타났다. 거짓 교리로 보이는 것들이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은 채 퍼졌고, 신실한 설교자와 거짓 설교자를 구별할 능력이 없는 회중들을 대상으로 사이비 부흥사들이 이익을 챙겼으며, 장부와 회계기록들이 아무런 감사도 받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의 운동 대신 다양한 오순절교회가 생겨났다. 이들은 신조· 예배의식· 조직 등의 문제에서 견해가 서로 달랐고, 심지어 근본적으로 다른 경우들도 많았다. 어떤 교회들은 열정· 자발성· 법률존중· 독립성을 좋아했고, 어떤 교회들은 질서· 의식· 관용· 성직체계에 의한 통제를 좋아했다.   오순절 교단들은 미국 전역과 멕시코, 칠레 및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러시아 등에 펴져갔다. 미국에서는 40개 이상의 단체들이 방언을 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정확하게 추산할 수 없는 수많은 “스토어 프론트” 교회들이 있다.   (3) 오순절 운동의 성령론 ⓐ 현대에 돌출한 독창적 이론이 아니라, 성경운동과 부흥운동에 역사적 뿌리를 둔 성령론의 변형으로 이해된다.   감리교와 오순절주의는 구원론의 구조가 비슷하며, 칭의 후에 일어나는 어떤 순간적 체험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면에서 양측이 동일하다. 그러나 감리교에서는 그것을 성화라고 보나, 오순절주의는 성령세례와 방언으로 본다. ⓑ 오순절주의는 중생, 즉 영생은 얻는 구원의 체험과 구별하여 성령세레를 봉사를 위한 능력부여로 정의한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미국의 부흥운동가들, 특히 토레이의 성령론에서도 발견된다. 반면 개혁주의 성령론은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시 한다. ⓒ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분하거나 동일시하는 것은 그 강조점과 선택의 문제다. 두 견해가 모두 성서적 근거와 역사적 토대에 기초하고 있으나 문제점도 있다. 왜냐, 한 견해의 성서적 근거가 다른 견해의 문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4) 성령세례와 방언  성령 세례와 영적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 성령운동은 방언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세례의 직접적 증거가 방언이며, 모든 신자는 방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오순절운동이 비판받는 주요 원인이 된다. 방언과 관련된 논란은 그 은사가 아직도 계속되느냐 하는 것과 모든 신자가 그 은사를 소유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오순절 방언교리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방언이 성령세례의 첫 증거다. 방언이 나타난 오순절 사건은 모든 다른 성령세례를 위한 유일하고도 진정한 모형을 구성한다. -2. 방언은 성령께서 시켜서 하는 말이다. 그것은 황홀경에서 나오는 것인 동시에, 하나의 언어로 하는 것이다. 방언의 은사는 신자의 신앙생활, 기독생활에 활력을 준다. -3 방언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성령의 은사다, 신약성서는 한 세대에 일어난 것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예수가 오실 때까지 모든 세대에 일어난 것에 대한 청사진이다. 따라서 신약성서의 사건이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다.


서적 자료 출처 - 2007년 Soteriology of Pyongyang Great Spiritual Awakening and the Azusa Street Revival: William J. Symour and Gil Sun Joo soteriology, Pente

 종교학  이신열  한국개혁신학회 / 한국개혁신학회논문집

이신열 박사 약력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였으며, 비블리칼 신학대학원에서 M. Div.과정을 마친 후, 네덜란드 아플도른(Apeldoorn) 신학대학언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하여 신학석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각각 받았다.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를 거쳐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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