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Aquawalk/연습장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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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3년 4월 13일, 12살의 헝가리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1811–1886)가 빈에서 공연을 했다. 53세의 베토벤은 그의 기막힌 연주에 대해 소위 '웨이헤쿠스' 즉 '성성의 키스'라고 불리는 키스를 했다고 한다. 베토벤이 이 무렵에 귀머거리가 심했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일 것 같지 않다. 베토벤 키스 이벤트에 대한 보다 합리적인 설명은 피아니스트 일카 호로비츠 바네이(Ilka Horovitz-Barnay:

"내가 리스트와 함께 경험한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은 그가 베토벤과의 만남을 이야기했을 때였다. '나는 열한 살쯤 되었다'고 그는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매우 존경받는 선생님인 체르니가 베토벤에게 나를 소개했을 때. 그는 오래 전에 그에게 나에 대해 말했고 내가 연주하는 것을 들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천재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고 오랫동안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나의 끈질긴 선생님인 체르니에게 설득당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제발, 작은 악당을 데려와라."

우리가 베토벤이 살고 있는 슈바르츠스파니에르하우스의 두 작은 방으로 들어간 것은 어느 날 아침 10시쯤이었다. 나는 다소 당황했지만 Czerny는 친절하게 나를 격려했다. 베토벤은 창가에 앉아 긴 좁은 테이블을 작업하고 있었다. 잠시 진지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던 그는 체르니에게 두어 마디 빠른 말을 했지만 사랑하는 선생님이 피아노로 가라는 신호를 보내자 침묵으로 돌아섰다.

'처음에는 리스의 작은 조각[페르디난트 리스, 베토벤의 또 다른 제자]을 연주했다. 내가 일을 마치자 베토벤은 바흐의 푸가를 연주할 수 있냐고 물었다.

'웰-성격의 클라비에'에서 C단조 푸가를 골랐어 "이 푸가를 전치할 수 있겠소?" 베토벤이 물었다.

"다행히 할 수 있었다. 마지막 화음이 끝난 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베토벤의 깊이 빛나는 눈은 내게로 옮겨졌지만, 갑자기 그의 그 외의 진지한 얼굴 위로 가벼운 미소가 날아갔다. 그는 내게 다가가 정으로 내 머리 위로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글쎄요, 내가 폭발하겠소." 그가 속삭였다. "이런 작은 악마."

갑자기 용기가 솟았다. `내가 네 곡 중 하나를 연주해도 되겠니 ?' 나는 대담하게 물었다. 베토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의 C장조 피아노 협주곡[제1악장]의 제1악장을 연주했다. 베토벤이 팔을 뻗고 이마에 키스를 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먼저 가. 넌 운이 좋은 놈들 중 하나야!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이 당신의 운명이 될 것이고 그것은 한 사람이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다.

`리스트가 크게 감동하여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너는 이 간단한 말들이 그에게 어떤 신성한 기쁨을 주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인 리스트가 나에게 더 큰 인상을 준 적은 없었다. 현란한 세상 사람, 그 존경받는 예술가는 사라졌다;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이 위대한 순간은 여전히 그의 영혼에 울려 퍼졌다. 잠시 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 그리고는 조용히 말했다.

그는 "이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것을 매우 드물게 – 그리고 오직 특별한 친구들에게만 말한다.'"

베토벤은 1822년에 1823년과 마찬가지로 귀머거리였지만 이 이야기는 다소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베토벤이 할 수 있었다고 전해지는 대로 피아노의 진동을 손으로 느꼈을 뿐 아니라 리스트의 손가락질을 관찰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당시 베토벤은 슈바르츠스파니에하우스에 거주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리스트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그는 말년에 있었고, 이야기 자체가 혼동이 아니었다면, 그의 기억은 약간 뿌옇게 되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