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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호신술원/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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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창시자 金喆(KIM CHUL) http://www,hosinsool.org . ihsf@hanmail.net 국제호신술연맹(國際護身術聯盟). International hosinsool Federation, IHSF)은 세계인를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 護身術의 發生. 호신술(護身術)의 발생(發生)은 태초(太初)로부터 인간(人間)뿐만 아니라 동물(動物)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명체(生命體)는 지구(地球)상에 나타남에 따라 영원(永遠)한 삶을 위하여 자기,자신(自己,自身)을 보호(保護)하는 기본적(基本的)인 기예(技藝)를 지니고 태어났다.

인류(人類)가 생존(生存)하면서부터 생활(生活)의 수단으로 그 종족(種族)과 영토(領土)를 지키고 외부(外部)의 침해(侵害)로부터 대비(對備)하는 자주국위(自主國威)를 위하여 방위(防衛)와의 목적(目的)으로 생명(生命)을 보존(保存)하는 방법(方法)으로 그 호신술기예(護身術技藝)는 무궁한 발전(發展)을 거듭해 왔다. 이렇듯이 호신술발생(護身術發生)은 인류(人類)의 역사(歷史)와 같은 맥(脈)을 이어 왔으며, 태고(太古)에 우리의 조상(祖上)이었던 선인(仙人)은 지기(志氣)를 타고 놀았다. 이 지기(志氣)란 바로 예(禮), 심(心), 덕(德), 인(仁), 체(體)를 겸비(兼備)하는 문무일도(文武一到)의 정신(精神)을 연마(練磨)하는 호신술(護身術)인이라 하였고, 또한 우주(宇宙)에 가득한 기(氣)를 마음대로 운용자재(運用自在)하는 기예(技藝)를 연마(練磨)한 선인(仙人)의 도법(道法)이었다. 선인(仙人)의 지기(志氣)는 우리나라는 반만년사(半萬年史)에 무예(武藝)가 우리민족을 위하여 일찍이 전성기(全盛期)를 맞아 장식(裝飾)하였다. 이 맥(脈)은 단군세기(檀君世記)의 환인천황(桓因天皇·盤古氏·有神氏·木德王BC8937년.유소환웅(有巢桓雄·火德王BC3858년). 단군시대(檀君時代);단군은 환인, 한웅, 환검시대로 부터 이어져온 우리 민족의 국통(國統)이요, 국혼(國魂)이며, 국조(國祖)로써 우리민족의 정서적(情緖的)인 뿌리이다.

대한민국 호신술창시자(護身術創始者金喆)는 가락국(駕洛國)의 시조(?~199,재위(在位)42~199). 신라(新羅)42(유리왕19)년에 하늘로부터 김해(金海)의 구지봉(龜旨峰)으로 내려온 여섯 개의 황금(黃金)알에서 나와 육가야(六伽倻)의 임금이 되었다는 여섯 형제 중(兄弟中)의 맏이로, 김해김씨의 시조(始祖)이다. 가락국(駕洛國) 가야(伽倻) 김수록왕(金首露王)시조, 12세 김서현장군 대량주도독(金舒玄將軍, 大梁州都督)564년, 13세 김유신장군"金庾信將軍"(신라 삼국통일의 실질적(實質的)인 주역(主役),흥무대왕), 김녕군(金寧君)“중시조51세 김목경(金牧卿) 벽상공신(壁上功臣)“목경(牧卿)파의 자손(子孫)인, 경파 출신(出身)으로서 또한 김해김가(金海金家)의 후손(後孫)으로서 문무겸전(文武兼全)에 열(熱)과 성(成)을 다 하고, 나아가 김유신장군(金庾信將軍)의 무예정신(武藝精神)과 화랑도(花郎徒) 복원사업(復元事業)에 이어 그 맥(脈)을 자라나는 청소년(靑少年)들에게 역사(歷史)의 기틀을 심어주며 용맹(勇猛)하고 용장(勇將),지장(智將)이란 찬란(燦爛)한 김유신장군의 문무겸전(文武兼全)한 화랑도(花郎徒) 충(忠)·효(孝) 정신(精神)과 그 기예(技藝)의 진흥(振興)을 위하야 노력하며, 그리고 그 업적(業績)을 기리며 우리문화(文化)를 국내외(國內外)에 널리 알리고자 한다. 김유신의 삼국통일(三國統一) 위업(偉業)을 업적(業績)을 기리고, 대한민국(大韓民國) 국가안위(國家安危)가 한층 더 굳건하게 다지는 계기(契機)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투기(鬪技)는 즉 실전호신술(實戰護身術)이며, 인류(人類)의 역사(歷史)와 같이 시작(始作)되었다. 작금시대(昨今時代)의 변천(變遷)에 따른 현대의 무예(武藝)로 각광(脚光)을 받고자 호신술(護身術)을 창의적(創意的)이고 과학적(科學的)인 체계(體系)로 호신술기예(護身術技藝)를 정립(定立)하고 호신술보급(護身術普及)과 국민건강(國民健康)을 지키며, 자아성취(自我成就)와 약자(弱者)를 보호(保護)하는 기사정신(騎士精神)을 갖고 우리나라 국가안위(國家安危)와 국위선양(國威宣揚)에 실천(實踐)하는 호신술인(護身術人)으로서 세계평화(世界平和)에 일익담당(一翼擔當)하고자 호신술(護身術)의 대명사(代名詞)인 호신술(護身術)을 종목(種目)“護身術創始者金貴喆”으로 정(定)하고 명명(命名)하였으며, 살신성인(殺身成仁)하여 호신술진흥(護身術振興)에 책임(責任)을 다 하는 호신술인(護身術人)이 되고자 한다.



新羅 金庾信 將軍 太大角干(흥무대왕) 1988년09월30일 충청북도 기념물(記念物)제79호로 지정(指定)된 김유신장군 탄생지(誕生地)는 진천읍 상계리에 위치(位置)하고 있습니다. 주위(周圍)가 큰 담으로 둘러쌓여 있어 담안밭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태어나신 김유신 장군(將軍)은 만노군(진천군)의 태수(太守)였던 김서현 장군과 갈문왕 입종의 아들 숙흘종의 딸 만명 부인(婦人)의 사이에서 잉태(孕胎) 20개월 만에 태어나셨습니다. 김유신 장군은 진평왕 31년에 화랑(花郞)이 되어 낭비성 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압량주의 군주(君主)가 되었고 선덕여왕 때 상장군(上將軍)이 되었으며 진덕여왕 때는 백제(白帝) 12성을 함락(陷落)하여 상주행군대총관에 오르고 무열왕 7년 상대등으로 당군과 연합(聯合)하여 백제(白帝)를 멸망(滅亡)시켰습니다. 또한 나당연합군(신라, 당나라)의 대총관이 되어 고구려(高句麗)를 정벌(征伐)하고 태대각간(太大角干)이 되었으며 한강 이북의 고구려(高句麗) 땅을 수복(收復)하여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일등공신(一等功臣)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업적(業績)을 남기신 김유신장군이 태어난 이곳의 경내(境內)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재실(在室)과 최남선이 비문(碑文)을 쓴 유허비가 있고 탄생지 (誕生地) 뒤에는 장군(將軍)의 태(胎)를 묻은 태령산이 있으며 주위(周圍)에는 당시 식수(食水)로 사용(使用)했다는 연보정과 장군(將軍)이 어린 시절(時節)부터 말을 탔던 곳이라는 치마대, 장군의 사당(祠堂)이 있던 군자 터 등 유적지(遺跡地)가 밀집(密集)해 있으며 투구(投球)의 모양(模樣)과 같이 생겨서 이름 붙여진 투구(投球) 바위도 있습니다. 김유신(金庾信) 장군(將軍)의 유물(遺物)의 투구(投球), 갑옷, 말안장, 화랑도(花郎刀), 창(槍) 등이 전시되 있으며 김유신장군 공원에서 충(忠).효(孝) 정신(精神)을 배우는 가족문화(家族文化)를 즐길 수 있으니 많이 참석(參席)하시어, 삼국통일(三國統一)의 실질적(實質的)인 주역(主役)인 우리 문화(文化) 놀이에 즐거움이 한껏 더 해 보시길 바랍니다.


● 호신술의 種目 命名 세기(世紀)의 무예(武藝)는 자아(自我)의 몸을 보호(保護)하는 것이 즉 호신술(護身術)이며, 기타(其他) 무예종목(武藝種目)의 지도자(指導者) 및 국민(國民)들이 호신술을 명사(名詞)로서 사용(使用)돼 오고 있는 것이 현실(現實)이다, 그러나 작금(昨今)의 시대(時代)에 와서 국민(國民)들이 진정(眞情)한 호신술의 극치(極致)가 무엇인가? 궁금증(curiosity)을 생각(生角)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호신술(護身術)이란 말만 들었지 자아(自我)가 실천수련(實薦修鍊)하는데 꼭 필요(必要)한 체계적(體系的)인 호신술의 원리(原理)와 덕목(德目)을 연마(鍊磨)하는데 있어서는 중요(重要)한 시기(時機)를 알면서도 지나치면서 속으로는 전문지도자(專門指導者)들이 체계화(體系化)시키겠지 라고 안이(安易)한 생각(生角)으로 따라 하면 된다는 식(式)이었으나 이를 구체적(具體的)이고 체계적(體系的)인 기예(技藝)로 온 국민(國民)이 안심(安心)하고 어느 장소(場所)에서나 체력연마(體力硏磨)에 쉽게 수련할 수 있도록 기예(技藝)를 체계적(體系的)으로 연구(硏究)하고 정립(定立)한 것을 과학적(科學的)인 지도(指導)로서 자라나는 청소년(靑少年)들의 인성교육(人性敎育)과 체력강화운동, 키성장운동, 비만퇴치운동 그리고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자아(自我) 호신술연마에 실천덕목(實踐德目)으로 삶아(예의/ 신의/ 정신/ 인격/ 성실/ 건강/ 생활/ 무예/ 정도/ 협진), 정심정도(正心正道)로서 바른생활에 적응(適應)할 수 있도록 골든 프로그램(program)을 기획(企劃)하고, 전통무예호신술(傳統武藝護身術), 국민평생(國民平生) 생활체육(生活體育)으로 자리 잡고 건강(健康)한 정신(精神), 건강(健康)한 신체(身體)의 기틀 아래 국가안위(國家安危)와 국민봉사(國民奉仕)에 앞장서고 세계평화(世界平和)에 공헌(貢獻)하는 호신술인(護身術人)이 되도록 노력(努力)한다.

  • 創始者金喆

본 창시자(創始者金喆)는 호신술을 종목(種目)으로 선택(選擇)한 것은 「첫째」호신술 용어는 세계인(世界人)이 다 잘 알고 있는 명사(名詞)인 그 점(點)의 단어(單語)를 유용(有用)하게 국민(國民)들이 활용(活用)하는데 있으며, 「둘째」현시대(現時代)에 자아(自我) 호신술연마(여가건강운동/가족놀이문화체육/국제문화교류/개인특기무예/기사정신무예 등)에 꼭 필요(必要)한 미래(未來)의 호신술이며, 내몸은 내가 지키고 우리가족은 내가 지킨다는 슬로건을 걸고 몸(身)과 마음(心)을 다스리며 호신술에 입문(入門)하면 다각적인(多角的) 모든 기예를 전수(傳授)받을 수 있는 무예(武藝)가 즉 호신술이며, 인성교육 및 이론과 실기를 겸비(兼備)하 는 무예(武藝), 스트레칭(stretching), 단전호흡,수족(手足)사용법, 혈. 맥. 급소처리법, 족기술, 관절기법(關節技法), 연행술, 포박술, 18무예병기사용법(18武藝兵器法使用法),격파(擊破)등”을 국민체위(國民體位)에 맞는 무예를 과학적(科學的)

이고 체계적(體系的)으로 정립하고 다양(多樣)한 호신술 보급(普及)함, 「셋째」시범대회(示範大會) 및 체급별(體級別) 선수권대회(選手權大會)를 통(通)하여 남녀노소가 이제까지 수련한 기량(技倆)을 시험(試驗)하고 잘못된 부분(部分)을 수정(修整)하고 앞으로 향(向)하여 추구(追究)해 나가는 정신(精神)을 일깨워주며, 「넷째」약(弱)한 사람이 불의(不意)에 처해 있을 때에 정의(正義)로운 기사정신(騎士精神)과 혼신(渾身)을 다 하는 그 어려움을 극복(克服)하고 고행(苦行)하는 인간(人間)이 되고자, 「다섯째」건강(健康)한 마음으로 영생(永生)을 추구(追求)하고, 호신술(護身術)은 생(生)과 사(死)를 결정 짖는 무예(武藝)지만은 활인술(活人術)이어야 한다는 큰 뜻을 가지고 창시자(創始者)는 종목(種目)으로 명명(命名)하였다. 남녀노소(男女老少)의 경기(競技)에 대 하여 이제까지 연마한 기예(技藝)를 타인(他人)과의 대련(對鍊)을 함으로서 그 기량(技倆)이 가름할 수 있는데 있으며, 경기(競技)란 하다보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으며 세상에 영원(永遠)한 것이 없다. 호신술을 수련한 방어와 공격(攻擊)을 배운 데로 하는 것이 아니고 그 기예(技藝)를 응용(應用)하여 실전적인 대결에 응용하여 경기(競技)에 임하는 기예를 감독, 코치로부터 지도(指導)받아 상대방(相對方)과 실전(實戰)에 사용하는 기예이다. 1. 머리에는 머리보호데 착용. 2. 입에는 마우스피스 사용. 3. 몸통에는 호구복 착용. 4. 정강이는 정강이 보호막 착용. 5. 팔목보호데, 코브라 장갑 착용.

세계초,중,고,대, 일반부 선수권대회 입장하는 광경

경기는 수족(手足)을 사용(私用)하여 상대방(相對方)을 공격(攻擊)하고 득실(得失)을 평가(評價)받으며 경기의 룰에 따른 인체(人體)의 요소(要素)에 따라 공격(攻擊)하는 것이다.

韓日 선수김재희 일본나고야무도관 경기(競技)는 배운 기예(技藝)를 마음껏 발휘(發揮)하여 상대(相對)에게 룰에 따라 타격(打擊)을 줌으로서 그 경기(競技)는 득,실, 감점 등을 심판(審判)하고 승리(勝利) 또는 패자로 구분(區分) 신호(信號)한다. 경기인(競技人)은 인간(人間) 됨됨이와 화합(和合)하는 그 정신력과 인체(人體)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는 과정(課程)이며, 나눔 봉사 정신을 열게 한다. 경기(競技)는 실력배양에 요점(要點)을 두기도 하지만 세기(世紀)의 무예인(武藝人)과 동서화합(東西和合), 문화교류(文化交流), 우리 문화(文化) 알리기 등 여러 방면(方面)에 우리나라 국위(國威)를 선양(宣揚)하고 세계인(世界人)이 함께하는 즐겁고 하나가 되는 장이 될 것이다.

한민족사(漢民族史)의 국통(國統)은【삼성조시대】환국 BC7199∼BC3898(還國).배달BC3898∼BC2333(倍達).조선BC2333∼BC238(朝鮮).【열국분업시대】북부여BC239∼BC58.남심한BC194∼AD8.최씨낙랑국BC195∼AD37(동옥저"東沃沮"는 고구려의 개마대산의 동쪽에 있으며 큰 바닷가에 거한다)【사국시대】고구려BC58∼AD688.백제BC18∼AD680.신라BC57∼688.가야AD42∼AD532.【남북국시대】대진국 발해668∼926통일신라 후신라668∼935 . 고려918∼1392.조선1392∼1910.임시정부1919∼1945.【남북분단시대】대한민국(大韓民國)1948∼현재(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현재)에 대한민국의 역사(歷史)의 맥(脈)은 이렇게 이어온 것이며, 우리민족의 시조(始祖)인 단군으로부터 이어 내려온 역사(歷史)라고 할 수 있다. 이 무예는 고구려(AC424-427년“3년”)탁견, 조의선인, 투기술 등. 백제(BC18년부터-660년까지“642년간”)수벽타, 백제검혼 등. 신라시대(新羅時代) 권법(拳法), 화랑도(花郎徒), 화랑검술(花郞劍術) 등이 존재(存在)했다는 설(說)이다. 이조시대(1790년)의 정조14년에 왕(王)의 명(命)을 받아 이덕무(李德懋) 박제가(朴濟家)에게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저술(著述)편찬에 권법수련(拳法修鍊)삽입 지시, 사도세자의 뜻에 따라 십팔기(十八技) 명칭(名稱)이된 것을 정조대왕의 어명(御命)으로 제정(制定)된 어제무예도보통지 펴냄.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조선조(朝鮮朝)에도 수박, 호신무예(護身武藝)로서 또는 실전무예(實傳武藝)로서의 계승(繼承)되고 있었음을 “태종실록8”동국여지승람9“ 찾아볼 수 있다. 더구나 고려(高麗)사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1790)등을 살펴보면 당시(當時)의 수박이 1대1의 자유대련(自由對鍊)부터 복수대련(複數對鍊)에서 다수(多數)인 대련(對鍊)에 이르기까지 다양(多樣)한 방법(方法)으로 실시(實施)되고 있음을 볼 때 상당(相當)히 체계화(體系化)되고 조직화(組織化)된 것을 알 수가 있다.

호신술로 통(通)하여 건전(健全)한 신체(身體), 건전한 정신력(精神力)과 정심정도(正心正道)를 배양(培養)시키고, 건전한 전통문화생활(傳統文化生活)에 적응(適應)시켜 사회봉사(社會奉仕)와 국위선양(國威宣揚) 및 세계평화(世界平和)에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하는 호신술인(護身術人)이 되도록 하는 과정이다. ➀ 예의(禮儀)와 신의적(信儀的)인 규범(規範)을 지키고 ➁ 덕육(德育)과 체육(體育) 큰덕을 쌓고 몸을 강건하게 지키며 ➂ 지육(智育)과 지행(知行)을 정심정도(正心正道)를 배양시키고 ➃ 인체(人體)의 기능(技能)을 강화시키며 육체(肉體)의 미(美)를 가꾸고 ➄ 무예(武藝)를 정진하면서 몸(身)을 보호(保護)할 수 있는 호신술(護身術)을 터득(攄得)함으로써 사회생활(社會生活)과 자아(自我)실천덕목(實薦德目)의 적응(適應)을 더 높이는 것이 호신술(護身術)이다. ➅ 남녀노소(男女老少)가 불의(不意)에 처해 있을 때에 약자(弱者)를 보호(保護)하고 어려운 환경(環境)속에 삶의 터전을 극복(克復)할 수 있는 정신(精神)을 일깨워 준다. ➆ 호신술인은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만들고 또한 봉사(奉仕)의 길(道)을 여는데 열(熱)과 성(成)을 다 한다. ➇ 호신술로 통(通)하여 염원(念願)의 길(道)을 추구(追求)하는 철학의 중심으로 역사(歷史)의 뒤받침이 되고자 한다.

세계인의 일반에게 그 기예를 공여하고 이익을 자아에게 기출한다. 1.경기를 통하여 세계인이 친목을 도모하고 그 기량을 보여준다. 2.국내외 문화교류를 촉진한다. 3.기타 일반인에게 부합하고 공여하는 기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