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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최종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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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우리의 형상(체렘-이미지)을 따라 우리의 모양(데무트-라이크니스)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시고, 사람을 직접 지으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고대 여러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하던 창조의 개념과 다르다. 특히 신플라톤주의자인 플로티노스의 유출개념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유출이란 무엇인가? 신에게서 흘러나와 존재하게 된 것을 뜻한다. 이 말 뒤에는 존재하는 것이 신의 의지에서 생긴 것이 아니고 어떤 필연성에서 비롯되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러니까 뭔가 충만해졌을 때, 그 위에 뭔가 더 채워지면 저절로 흘러넘치는 것처럼, 유출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만들려는 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고, 충만의 결과로 넘쳐흘러 나온 것뿐이다. 과목이 성숙기에 달하면 열매를 맺듯이 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사람 창조만 봐도,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사람 창조에 대한 계획을 세우셨고, 직접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한 영혼을 지어 불어넣으셨다.

하나님은 볼 수 없는 실체지만, 사람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나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은 마치 노아에게 정해진 치수대로 방주를 짓게 하신 것과 같고, 또 모세에게 정해진 치수대로 성막을 만들도록 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의 디자인대로 사람을 만드신 것이다. 우리 생각에 노아 방주의 크기나 성막의 크기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에서 나왔기 때문이듯, 사람이 모든 만물 가운데 가장 탁월한 이유는 하나님이 직접 자신의 모양으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플로티노스의 신관과 물질계의 유출]

플로티노스에 따르면, 물질세계는 참된 실체가 아니다. 참 실체는 이 세상을 초월해 있다. 플로티노스는 그 초월적인 존재를 신으로 설명하고, 일자(the One)라고 명명한다. 일자는 어떤 형태나 지적인 형상을 가지지 않고, 움직이거나 쉬지 않으며(움직임과 쉼은 다양성의 원천), 시간과 공간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는 특성을 가진다.

사람은 일자를 제대로 알 수 없고, 다만 일자에 관해 알 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우리가 태양 한복판에 앉아서 태양을 알 수 없고, 멀리 떨어진 채 태양 주변을 보면서 태양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일자에 대한 지식은 사람과 세계 속에 감춰진 일자의 흔적을 보고 생긴 지식이다.

플로티노스가 말하는 일자는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창조와 다르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며, 하나님이 직접 물질세계를 만든 것으로 소개되나,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물질계를 창조하지 않고, 그로부터의 유출의 결과로 소개된다. 신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능성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플로티노스가 생각한 신의 개념은 아니다. 플로티노스의 일자는 자유의지가 없고, 다만 필연성만 있다. 그래서 일자로부터 물질계가 생기는 것은 신적 필연성의 결과다. 이런 개념은 창조가 하나님의 자유의지의 산물이라고 본 성경 가르침과 대조된다.

일자로부터 물질계까지 어떤 과정을 걸쳐 일어나는지, 플로티노스의 생각을 추적해 보면 이렇다. 먼저 일자로부터 신적 지성, 누우스(nous)가 유출되고, 그리고 영혼이 거기서 유출되며, 그리고 그 영혼에서 만물이 생겨난다. 이 견해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보는 성경의 가르침과 대조된다. 플로티노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물질의 출현은 무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이미 존재한 영혼에서의 유출이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다르다.

일자에서 지성이, 지성에서 영혼이, 그리고 영혼에서 물질이 유출한 것인데, 일자의 창조적 행위가 없이 이런 물질이 만들어진 것에 대한 플로티노스의 설명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생명의 재생산 개념에 기초한다. 생명이 성숙기에 이르면, 재생산이 이루어진다. 비유적으로 말해 불은 불 자체 그대로 있으면서 열을 내뿜듯, 일자는 그대로 있으면서 신적 지성을 유출하고, 거기에서 영혼과 물질이 생겨난다.

일자에서 신적 지성이, 신적 지성에서 영혼이, 영혼에서 물질이 유출하며, 일자에서 멀어질수록 불완전한 상태가 된다. 그래서 영혼보다 물질이 더 불안하고 변화무쌍한 상태가 된다. 플로티노스는 영혼에서 사물이 나올 때, 영혼의 움직임 때문에 시간이 시작된 것으로 본다. 시간은 모든 사물을 사로잡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