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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 검찰부의 5.18광주 사건 관련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최초의 발포는 5월 19일 17시경 광주고등학교 부근에서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당시 사직공원을 수색하고 복귀하던 11공수여단 63대대 장갑차가 광주고등학교 부근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가 장갑차를 포위 공격하면서 불붙은 짚단을 던져 장갑차에 불을 붙이려 했다.  장갑차에 타고 있던 한 장교가 장갑차 문을 열고 공포를 쏘고 다시 위협사격하는 과정에서 주위에 있던 고등학생 1명이 총격을 받아 부상한 것이었다.
 또 5월20일 23시경 3공수여단이 광주역 일대에서 시위대와 공방을 벌이던 중 트럭버스 등 시위대의 차량 돌진 공격으로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수세에 몰렸다.  3공수여단장은 경계용 실탄을 예하대대에 전달하고, 대대장은 이를 장교 위주로 분배하여 이들이 돌진하는 차량을 하하여 발포했다.  광주역으로 실탄을 전달하러 가던 특공지원조가 시위대와 마주쳐 진로가 막히자 위협사격을 했다.
 63대대는 5월 21일 10시30분경 실탄을 분배함으로써 같은 날 13시경 시위대의 차량 공격이 있기 이전에 이미 장교들 위주로 실탄이 분배되어 있었던 사실이 확인되었다.  13시경부터 시위대가 장갑차 등으로 공수부대에 돌진 공격해 오고 병사 1명이 장갑차에 깔려 사망하자 이에 대응하여 첫 발포가 있었다. 다시 시위대가 장갑차와 버스 등 차량 돌진을 계속하자 공수부대 장교들이 집단적으로 발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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