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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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본명 박기평
출생 1957년
전라남도 함평
직업 시인, 사진작가, 평화운동가
학력 선린상업고등학교
활동기간 1976년 ~ 현재
장르 시문학, 수필, 사진예술
친지 김해수(장인)
배우자 김진주(약사, 작가)
종교 천주교(세례명: 가스발)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朴基平), [[1957년]~ )는 대한민국시인, 사진가, 노동·생태·평화운동가이다.

생애[편집]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고흥, 벌교에서 자랐다. 16세 때 상경하여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를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나이에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군사독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이 한 권의 시집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감시를 피해 사용한 박노해라는 필명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이라는 뜻으로,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989년, 분단 이후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했다. 7년여의 수배생활 끝에 1991년 체포, 참혹한 고문 후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옥중에서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1997년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1998년 7년 6개월의 수감 끝에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침묵을 하며,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를 설립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 현장에서 평화활동을 이어왔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을 모아 2010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4년 박노해 아시아 사진전 <다른 길>展 (세종문화회관) 개최와 함께 사진에세이 『다른 길』을 출간했다. 2017년 『촛불혁명-2016 겨울 그리고 2017 봄, 빛으로 쓴 역사』(감수)를 출간했다. 오늘도 국경 너머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세계 곳곳에서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농부마을'을 세워가며 새로운 사상과 혁명의 길로 걸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