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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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 ||||
출생일 | 1964년 1월 10일 | (60세)|||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키 | 161cm | |||
애칭 | 작은 들소 | |||
스포츠 | ||||
국가 | 대한민국 | |||
체급 | 주니어 플라이급 | |||
프로 통산전적 | ||||
승리 | 38승(39전) | |||
KO승 | 14KO | |||
무승부 | 0 | |||
패배 | 1 | |||
무효 | 0 |
유명우(柳明佑, 1964년 1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전직 복싱 선수로, 前 WBA 주니어플라이급 챔피언이다. 본관은 풍산이다. 한국 프로복싱 주니어플라이급체급 사상 최다 기록을 세운 선수이다.
생애
[편집]서울 한강중학교 재학 시절에 복싱에 입문했으며, 3학년 때 전국학생신인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했다.[1] 1982년 프로에 데뷔해, 1984년 동양 타이틀을 따고, 이듬해 조이 올리보를 판정승으로 누르고 WBA 챔피언이 되었다.[1] 1991년 이오카 히로키에게 패하여 타이틀을 빼앗겼으나, 이듬해 1992년에 다시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이어 같은 해 은퇴하였고 이후에는 예식장, 설렁탕집, 오리고기집 등을 경영하였으며[1] 사업으로 생긴 수입으로 복싱계를 지원하고 있다. 복싱 선수 시절인 1988년 3억8000만원의 대전료를 받고 국내 프로복서 중 최고의 소득을 올렸다.[2]
당시 연 2억원 이상의 소득이 있었던 유명우였지만 그는 늘 대중교통을 이용했고 부친이 정년 퇴직을 한 후에야 자가용을 구입했다. 세계챔피언이 된 유명우는 성실함과 철저한 자기관리를 바탕으로 17번의 방어전을 치르며 약 6년간 정상의 자리를 굳게 지켜냈다. 그러나 91년에 이뤄진 첫 해외 원정 방어전이었던 일본(18차)에서 이오카 히로키에게 석연찮은 판정으로 타이틀을 빼앗겼다. 현역때 ‘무패 상태에서 명예롭게 은퇴하겠다’던 유명우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이오카에 다시 도전해서 챔피언벨트를 일본 원정가서 되찾아왔고 명예롭게 은퇴하였다.
[3]유대표가 세운 '17차 방어'는 이 체급 최다이자 한국 프로복싱 사상 최다 기록이다. 한국 복싱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프로 36연승'의 기록도 세웠다.
한국역사상 최고의 프로 복서라고 할 수 있다[4]
학력
[편집]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가 나 다 “전 WBA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 유명우”. 스포츠2.0. 2007년 12월 17일.[깨진 링크]
- ↑ 1988년 한국 프로복서 소득랭킹 1위 유명우
- ↑ 전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유명우 “내가 장정구와 맞붙지 않은 이유는…”
- ↑ 복싱 명예의 전당 헌액되는 유명우 "기쁘고도 슬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