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자 후마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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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 후마본
Rajah Humabon
출생1491년
필리핀 세부
사망필리핀 세부
성별남성
별칭돈 카를로스 Don Carlos
직업
종교가톨릭

라자 후마본, (이후 기독교로 개종하여 돈 카를로스 Don Carlos)은 포르투갈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의 1521년 필리핀 도착 당시 세부의 왕이었다.[1] 1521년 스페인인들의 도착 이전까지 남아 있는 공식적인 기록은 존재하지 않고, 이탈리아의 사학자 안토니오 피가페타가 후마본과 스페인 식민지 이전에 존재했던 토착 필리핀 왕국에 대해 기술한 것만 남아 있다.

전설의 기록[편집]

마젤란 도착 이전의 라자 후마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구전에 따르면, 스리 하마바르(또한 라자 후마본으로 알려진)은 스리 반쿡의 아들이자 스리 루마이의 손자였다.

특히, 현지의 왕 중 한 명이었던 스리 루마이는 비사야에 정착했던 수마트라에서 온 토착민 왕이었고, 알호, 유콥, 반툭 등 여러 왕자들을 낳았다. 시알로로 알려진 스리 알호는 세부 남부 지역에서 오늘 날의 카르카르와 산탄데르를 포함한 읍락들을 다스렸다. 스리 유콥은 오늘 날의 콘솔라시온, 릴로안, 콤포스텔라, 다나오, 카르멘, 그리고 반타얀을 다스렸다. 그는 민다나오에서 온 마갈로스라는 부족과의 싸움에서 전사했다.[2]

막내 아들 스리 반툭은 현재의 세부 시 지역에 해당하는 싱가팔라(싱가포르와 같은 어원을 가진 산스크리트어의 싱하푸라를 다스렸다. 그는 질병으로 사망했고, 아들 라자 후마본으로 알려진 스리 하마바르가 왕위를 계승했다. 스리 반툭은 스리 파랑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허약함으로 통치를 할 수 없었다. 스리 파랑은 그의 왕좌를 조카 후마본에게 양위를 했고, 그가 세부의 왕(라자)이 되었다.

스페인과의 접촉[편집]

파랑도 어린 아들 투파스가 있었는데, 이후 후마본의 뒤를 이어 세부의 왕으로 왕위를 계승한다.[3] 사학자 안토니오 피가페타는 사타 라야 시타라는 구절을 문서에 남겼는데, 말레이어로 상인부터 왕까지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 피가페타의 기록에 따르면, 말라이 구절로 그들이 말한 것은 주로 야망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해석은 그 그절이 라자 후마본이 다스리는 정권 하에 상인들에 의해 말해졌던 그 구절은 실제로 옛 말레이어인 코타 라야 키타로 우리는 위대한 성채이다라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코타 kota ("성채"), 라야 raya ("위대한"), 키타 kita ("우리"). 라자 후마본과 마젤란의 항해를 수행하러 온 말라카의 엔리케 사이의 만남은 안토니오 피가페타에 의해 문서화되었으며, 스페인 탐험가 미구엘 로페즈 데 레가즈피는 옛 말레이 플리핀에 있는

각주[편집]

  1. “Product of the Philippines : Philippine History”. 2007년 10월 31일에 원본 문서에서 보존된 문서. 2007년 9월 28일에 확인함. 
  2. Marivir Montebon, Retracing Our Roots – A Journey into Cebu’s Pre-Colonial Past, p.15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