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바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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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바데비
굽타 황후
신상정보
왕조 굽타 왕조
배우자 찬드라굽타 2세
자녀 고빈다굽타, 쿠마라굽타 1세

드루바데비(산스크리트어: ध्रुवदेवी)는 오늘날의 북인도 지역을 통치했던 굽타 황제 찬드라굽타 2세 (서기 380년 ~ 서기 415년)의 황후다. 그녀는 남편의 후계자인 쿠마라굽타 1세의 어머니였으며, 아마도 찬드라굽타의 황후이자 점토 인장 비문에 고빈다굽타 황자의 어머니로 언급된 드루바-스바미니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부분적으로 소실된 산스크리트어 연극 데비 찬드라굽탐에 따르면, 드루바데비는 원래 찬드라굽타의 형 라마굽타의 황후였다. 라마굽타는 사카족에게 포위된 후 그녀를 적인 사카에게 넘겨주고 항복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찬드라굽타는 황후로 변장하여 적진에 들어갔고, 적을 죽였다. 다른 문학적이고 경문학적인 증거들에 기초한 연극의 재구성은 찬드라굽타가 후에 라마굽타를 죽이고 드루바데비와 결혼했음을 시사한다. 이 이야기의 역사성은 오늘날 역사가들 사이에서 논쟁 중이고,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허구의 작품이라고 일축한다.

굽타 기록[편집]

"드루바"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불변 또는 상수를 의미하며, 북극성에 대한 산스크리트어 이름이다. 굽타 기록에 따르면, 드루바데비는 찬드라굽타의 후계자 쿠마라굽타 1세의 어머니였다.[1] 고빈다굽타의 바사르 점토 인장에는 드루바스바미니가 찬드라굽타의 황후이며 고빈다굽타의 어머니라고 언급되어 있다.[2][3] 찬드라굽타에게 비슷한 이름을 가진 두 명의 황후가 있었을 가능성을 높지 않다. 따라서 드루바스바미니는 드루바데비의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고 고빈다굽타는 쿠마라굽타의 친형제였을 것으로 보인다.[1]

데비-찬드라굽탐[편집]

현재는 일부 단편의 형태로만 제공되는 산스크리트어 연극 데비 찬드라굽탐에 따르면, 드루바데비는 원래 찬드라굽타의 형 라마굽타의 황후였다. 한때 라마굽타는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드루바데비를 요구한 사카 적에게 포위되었다. 라마굽타는 드루바데비를 적에게 보내는 데 동의했지만 이에 반발한 찬드라굽타는 황후로 위장한 채 적진으로 가서 적을 죽였다.[4] 남은 이야기는 남아있는 조각들로부터 명확하지 않지만, 이후의 문학적이고 경문학적인 언급들에 근거하여, 라마굽타는 그의 아내를 적에게 항복하기로 결정한 결과로 민심이 악화된 반면, 찬드라굽타는 그 신민들에 의해 영웅으로 간주되었다. 라마굽타는 그의 형을 질투했고, 그를 박해하려고 노력했다. 찬드라굽타는 형의 적개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기를 가장했지만, 결국 그를 죽이고, 새로운 황제가 되었고, 드루바데비와 결혼했다.[5]

데비 찬드라굽탐 줄거리의 역사성은 몇몇 현대 역사학자들에 의해 의심 받아왔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 D. C. 시르카르에 따르면, 극 중 유일한 역사적 사실은 드루바데비가 찬드라굽타의 황후였다는 것과 사카족이 인도 서부에서 권력을 쥐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력 또는 "그의 상상력에 의해 일부가 꾸며진 현재의 인기 있는 전설"이다.[6]

이후의 몇몇 문헌과 비문은 극에서 묘사된 사건들을 암시하지만, 이러한 출처들은 극 자체에 근거를 두고 있을 수 있으므로, 극의 역사성을 확증하는 증거로 단정적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5] 찬드라굽타와 드루바데비는 역사적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라마굽타의 존재 또한 그에게 귀속된 몇몇 비문과 동전들이 발견됨으로써 증명되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것이 데비찬라굽탐에서 묘사된 사건들의 역사성을 반드시 확인시켜주는 것은 아니다.[5]

각주[편집]

서지[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