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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상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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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상제
唐 殤帝
양왕(襄王)
재위 711년 2월 10일 ~ 714년 9월 5일 (양력)
〈711년 1월 18일 ~ 714년 7월 22일〉
온왕(溫王)
재위 710년 7월 25일 ~ 711년 2월 10일 (양력)
〈710년 6월 24일 ~ 711년 1월 18일〉
당나라의 비정통 황제
재위 710년 7월 5일 ~ 710년 7월 25일 (양력)
〈710년 6월 4일 ~ 710년 6월 24일〉
즉위식 당륭 원년(710년) 음력 6월 4일
전임 중종(中宗)
후임 예종(睿宗)
당나라의 황태자
재위 710년 7월 3일 ~ 710년 7월 5일 (양력)
〈710년 6월 2일 ~ 710년 6월 4일〉
즉위식 경룡 4년(710년) 음력 6월 2일
전임 절민태자(節愍太子) 이중준(李重俊)
후임 현종(玄宗) 이융기(李隆基)
온왕(溫王)
재위 705년 3월 23일 ~ 710년 7월 3일 (양력)
〈705년 2월 24일 ~ 710년 6월 2일〉
북해군왕(北海郡王)
재위 700년 ~ 705년
이름
이중무(李重茂)
시호 상황제(殤皇帝)
연호 당륭(唐隆) 710년
신상정보
출생일 증성(證聖) 원년(695년)
사망일 개원(開元) 2년 7월 22일
(714년 9월 5일) (18 - 19세)
부친 중종(中宗)

당 상제 이중무(唐殤帝 李重茂, 695년 ~ 714년 9월 5일(음력 7월 22일))는 당나라의 임시 황제(재위 710년)이다. 당 중종 이현의 4남이다. 위황후에 의해 즉위하여 1개월도 되지 않아 폐위되었다.

생애

[편집]

원래 북해왕(北海王)으로 있었는데, 710년 7월 3일, 위씨가 아버지를 독살하고, 5일 뒤인 7월 8일에 이중무를 황제에 앉혔다. 황제로 즉위한 후에도 태후 위씨가 조정을 장악하고 정사를 맡아보았다.[1] 위씨의 심복인 중서령 종초객(宗楚客)과 태상경 무연수(武延秀)는 이중무를 제거하자고 위씨를 부추겼는데, 그 과정에서 말이 새어나가 중종의 누이이자 이중무의 고모인 태평공주와 사촌형 이융기(당 예종의 3남)가 7월 25일 위황후 등 위씨 일가를 멸족시켰다.[1] 이튿날이 되도록 이중무는 상황을 알지 못했으나 태평공주는 그에게 다가가 "이 자리는 이제 너의 자리가 아니다." 라고 말하고 그를 끌어내렸다.[2] 전 황제 예종이 다시 복위하고, 황제의 자리에서 폐위된 이중무는 온왕(溫王)에 책봉되었고, 자택에 감금되었다.[2] 714년에는 방주 자사가 되었다. 그 해에 방주에서 죽었다.

기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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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 원년
서력
(西曆)
710년
간지
(干支)
경술(庚戌)
연호
(年號)
당융(唐隆)
원년

각주

[편집]
  1. 샹관핑, 《중국사 열전 황제》, 차효진 역, 달과소, 2008, p.369, ISBN 978-89-91223-21-9
  2. 샹관핑, p.370
전임
아버지 당 중종 이현
중국 당나라 황제 (임시)
710년
후임
숙부 당 예종 이단
전임
아버지 당 중종 이현
중국 황제
710년
후임
숙부 당 예종 이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