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의 침묵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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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은 한용운의 1926년 시집이다.

개요[편집]

1926년 회동서관 간행. 4 ·6판 양장, 168면. 표제시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 《알 수 없어요》 《비밀》 《첫 키스》 《님의 얼굴》 등 초기 시작품이 모두 수록되었다. 그의 시는 불교적인 비유와 고도의 상징적 수법으로 이루어진 서정시인데, 그 사상적 깊이와 예술적 차원의 높이로 그는 한국 현대시 사상 가장 빛나는 시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8 ·15광복 후 동명의 시집이 여러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로 시작되는 표제시 《님의 침묵》의 주제는 이별한 님에 대한 영원한 사랑의 다짐이다. [1] "님"이 누구냐로 많은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독립정신으로 일관한 그의 생애에 비추어 그것은 잃어버린 ‘조국’이라고 보아야 적합할 것이다. 그러한 추측의 타당성은 이 시의 마지막 부분, 즉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님은 갔다’고 객관적인 현실을 긍정하면서도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다’라고 하여 주관적인 의지로서 ‘님은 자기와 함께 있음’을 강조하고 그 ‘님’을 붙들고 사랑의 노래를 읊는 시인의 애국심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해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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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이 1926년에 출간한 시집 ≪님의 침묵(沈黙)≫은 한국 근대시사에 있어서 기념비적 시집의 하나다. 이 시집이 우리 근대시사에서 기념비적 의의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 기인한다.

우선, 시집 ≪님의 침묵≫은 이 땅에서 근대적인 자유시가 창작되기 시작한 이래 형이상학적 사유를 자유시라는 형식 속에 녹여낸 최초의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심오한 불교적 사유에 시적 인식이 닿아 있어, 우리의 근대 자유시에 철학적이며 명상적인 깊이를 불어넣어 주었다. 시인 한용운은 관념적인 철학과 사상을 예술적 형상으로 미학화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사상의 정서화라는 근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은 핵심적인 시어인 ‘님’의 상징적 의미가 단순히 연인, 조국, 절대자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생명의 역동적인 존재 양상들로 확대되면서 밀도 높은 상징성을 갖는 상징 시집의 한 지평을 열어젖혔다. 시인은 소멸과 생성, 부재와 현존, 이별과 만남, 현실과 초월의 변증법적 극복 과정을 시어 ‘님’으로 상징화함으로써, ‘지금 여기’가 아닌 초월적 세계를 향한 절절한 시적 염원을 노래한다. 이를 통해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자의 모습을 시적으로 감지함으로써, 이 시집은 인간의 종교적 심성을 드러내는 상징시의 한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시집은 서구로부터 상징주의가 이 땅에 유입되어 자유시 창작을 고무한 이래, 상징시편으로 일정한 미학적 완성도를 획득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마지막으로, 시집 ≪님의 침묵≫에 수록되어 있는 개별 시편들은 상호 유기적 연관성을 보이는 구조적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당대 여타의 다른 서정 시집과 구별된다. 이 시집에는 총 88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서시에 해당하는 <님의 침묵>에서 종시에 해당하는 <사랑의 판>에 이르는 전편의 시에 ‘님’과의 이별과 만남이 극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각기 독자적인 의미영역을 갖는 개별 시편들은 내적으로 상호 연관성을 가지며 시집 전체가 한 편의 사랑의 드라마를 구성해 낸다. 이처럼 우리의 근대시사에서 시집 ≪님의 침묵≫은 연작시 형식을 개별 시편이 내면화해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한 최초의 시집이라는 독특한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시집 ≪님의 침묵≫ 이전에 발간된 근대적인 개인 시집으로는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 주요한의 ≪아름다운 새벽≫(1924), 변영로의 ≪조선의 마음≫(1924), 노자영의 ≪처녀의 화환≫(1924), 박영희의 ≪흑방비곡≫(1924),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정도가 전부다. 이들 시집이 주로 단편적인 주관적 정서를 자유로운 운율에 담아낸 것에 비해, 시집 ≪님의 침묵≫은 하나의 주제를 반복적으로 변주하는 연작시적 성격을 보임으로써 주관적인 서정시가 가지는 정서적 울림의 폭과 깊이를 한층 넓고 깊게 만든 대표적인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만해 한용운은 이 문제적인 시편들을 왜 창작하게 되었을까? 시인은 시집의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군말>에서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도러가는 길을 일코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고 창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이 진술로 볼 때, 시집의 창작 동기는 다분히 문학의 계몽적 기능에 기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길을 잃은 어린 양에 대한 연민이란 어린 양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하는 목자(牧者), 즉 지도자 내지는 선각자가 갖는 소명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용운이 시집 창작을 통해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욕망한 것은 아니었다. 후기인 <독자(讀者)에게>에서 그는, ‘독자여 나는 시인으로 여러분의 압헤 보이는 것을 부러함니다/여러분이 나의 시를 읽을 에 나를 슯어하고 스스로 슯어할 줄을 암니다.’라고 말한다. 시인이 말하는 슬픔의 구체적인 의미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 시집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시인 자신을 포함한 민족 전체가 직면한 부끄러운 현실과 연관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시집의 자서와 후기(後記)로 추측해 보면, 이러한 부끄러운 현실에 대한 직시가 시집 창작의 내적 동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사실만으로는 문단 활동을 한 바도 없으며, 당시 다양한 사회 활동으로 분주했던 그가 자유시 창작에 열정을 갖게 된 직접적인 이유를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이 무렵 한용운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면 시집 ≪님의 침묵≫을 창작하게 된 까닭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열아홉의 나이에 구한말의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를 몸소 체험하고자 가출을 감행했다. 여기저기를 떠돌던 그는 다시 귀향해 아들 하나를 얻었으나 25세가 된 1905년 불교에 귀의해 정식 승려가 된다. 승려가 된 그는 삼십대의 대부분을 숭유억불 정책으로 인해 산중에 유폐된 조선 불교를 근대화하고 대중화하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한다. 이 과정에서 점차 한용운은 식민통치하에서 고통 받는 민족의 현실에 눈뜨게 되고 따라서 민족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 사십대 초반의 한용운은 각계의 민족대표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하고 이로 인해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그는 변호사를 대지 말 것, 사식(私食)을 넣지 말 것, 보석을 요구하지 말 것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워두고 시종일관 이 원칙을 지켜나갔으며, 투옥 중에 전향서를 제출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일제의 회유를 끝까지 거부하며 만기 출옥까지 정신의 훼절(毁折)을 스스로 용납하지 않았다. 이처럼 강경한 자세로 어둠의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그에게도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을 되돌아볼 내성의 시간은 필요했을 것이다. 사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시인이 삶과 역사, 종교와 사상을 진지하게 다시금 성찰해 보는 바로 그 순간에 시집 ≪님의 침묵≫이 놓여 있다고 하겠다. 이 시집이 보여주는 일종의 정신적 원숙미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실상 이 시기 대부분의 자유시는 이십대 초중반의 젊은 청년 문사들에 의해 창작된 것으로, 자유로운 시형 속에 청춘의 내적 방황과 슬픔을 담아내는 것이 시단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은 마흔일곱이라는 원숙한 중년의 나이에 씌어졌으며, 선승인 시인이 험난한 시대고(時代苦) 속에서 체득하게 된 삶의 깨달음들을 시적 자양분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유의 깊이는 동시대 청년시인들의 시와는 상당한 차이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사십대 중반에 이르러 한용운은 경성에서의 활동을 잠시 접고 홀연히 강원도 내설악의 오세암으로 들어간다. 이곳에서 그는 선적 직관력을 보다 명징하게 하고 정신적 정진을 위해 중국 당나라 상찰선사(常察禪師)의 선화(禪話)인 ≪십현담(十玄談)≫에 주를 붙이고 이를 나름대로 해석한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집필한다. 이러한 내적인 자기정련이 있은 이후에 한용운은 백담사로 내려와 여름 한철을 보내며 시집 창작에 몰두한다. 시집 ≪님의 침묵≫은 1925년 8월 29일 밤에 최종 탈고된 것으로 시집 말미에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시인이 이 시집에서 드러내고자 한 시적 주제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이 시집의 주제는 ‘님’의 상징적 의미와 깊은 연관성을 갖는다. 표면적으로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님’과의 이별 상황에 처해 있다. 이별은 ‘님’의 침묵을 강요하는 시대에 대한 비유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침묵하는 ‘님’을 통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시적 화자는 부재를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발견해 나간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는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조아하야요.’(<복종(服從)>)라는 시적 진술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표면적인 의미 너머에 있다. 따라서 한용운에게 있어서 이별은 곧 만남이고 님은 곧 나다. 그에게 진정한 자유가 복종이듯이 침묵은 곧 노래다. 따라서 ‘님의 침묵’은 ‘나의 노래’이고 ‘나의 침묵’은 ‘님의 노래’가 된다. 이 역설(paradox)의 논리가 이 시집 전체를 이끄는 시적 논리이자 시인이 삶을 인식하는 방식이다.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이면으로는 삶의 본질적인 이치를 포착해 내는 가장 중요한 시의 표현기법이다. ‘님은 갓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슴니다.’(<님의 침묵>)라는 역설적 표현에는 이별에 처한 화자가 느끼는 슬픔의 깊이와 함께, 이 슬픔에만 머물지 않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극복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시적 화자에게 역설로서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매개가 바로 ‘님’이다. 또한 동시에 ‘님’은 나와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일깨우는 절대자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시집의 주제 의식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진실한 사랑의 존재 방식에 대한 시적 추구에서 찾을 수 있다. 한용운의 시세계에 대해 존재론적 해석이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적 무의식이 되고 있는 도저한 부재의식이 식민지 시대라는 시대 상황과 결부된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민족의 운명과 해석의 지평을 공유하게 된다. 그러나 시집 ≪님의 침묵≫이 단지 식민지 시대에 대한 시적 응전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시집은 인류사의 보편적 주제인 사랑의 문제로 역사와 철학과 사상의 시적 승화를 이루어냄으로써 시간의 마모를 견디는 예술적 영원성을 획득해 나갔다고 할 수 있다.

만해 한용운은 당시 조혼 풍습에 따라 열네 살의 나이로 결혼하고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속가를 버리고 떠나 승려가 되었으며, 오십대에는 다시 재혼해 딸 하나를 얻었다. 이처럼 그의 삶에는 속세를 등지는 비정함과 환속해 세속적 삶과 함께하는 다정함이 공존한다. 가출과 방랑, 출가와 투옥 등의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만해 한용운은 선승으로서의 깨달음을 향한 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한용운의 삶은 뭇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또한 아프다는 재가승려 유마힐의 삶을 닮아 있다. 실제로 만년에 접어들어 그는 ≪유마힐소설경강의≫를 집필하기도 하였다. 그의 대승적인 삶의 자세는 시인, 선승, 독립운동가라는 어느 한 면에 그를 가두어 두려고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위대한 삶이 그러하듯, 그는 언제나 전체이자 온몸인 삶으로 어두운 식민지 시대의 ‘약한 등불’이 되고자 했다. 그 꺼지지 않는 희망의 빛이 시집 ≪님의 침묵≫ 속에서 환하고 아름다운 시적 불꽃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강승원 (편집.). 《EBS 수능특강 언어영역》 초판. 한국교육방송공사.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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