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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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평구(盧平久, 1912년 - 2003년 9월 8일)는 대한민국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 종교인, 출판인, 독립유공자이다.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한의사였다고 한다. 배재고보 재학시절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고 퇴학 당하였다. 그 후 빈민 아동 교육에 헌신하다 김교신을 만나 기독교 신앙을 배웠고, 김교신의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무교회 기독교 사상을 공부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노평구는, 김교신의 "성서조선" 잡지를 본받아, "성서연구" 잡지를 창간하여 50여 년 동안 500호를 발간하였다. 일생동안 주일마다 종로 YMCA 회관에서 성서연구 집회를 주최하였다. 김교신을 이어서 한국 무교회 운동 2세대의 중심 인물이었던 노평구는, 항상 직설적이고 통렬한 어조로 한국 사회와 정치의 도덕적 타락을 꾸짖었다. 묘지는 국립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