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옥 (서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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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 옥
원어이름南宮 鈺
별칭자(字) 여상(汝常)
아호(雅號) 창주(滄洲)
출생1620년
조선
사망1699년 (80세)
조선
국적조선
분야서화
학력1652년 증광문과 급제
직업문신(文臣), 서화가(書畵家)
종교유교(성리학)
부모아버지 남궁 율(南宮 嵂)
어머니 청주 한씨 부인(淸州 韓氏 夫人)
친척할아버지 남궁 지(南宮 芷)
외할아버지 한옹(韓顒)
장인 김대관(金大觀)

남궁 옥(南宮 鈺, 1620년 ~ 1699년)은 조선의 문신(文臣) 겸 서화가(書畵家)이다.

본관은 함열(咸悅). 자(字)는 여상(汝常)이며 호(號)는 창주(滄洲)이다.

생애[편집]

1646년(인조 24)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652년(효종 3)에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1]

1669년(현종 10) 예조정랑으로 길재(吉再)·김장생(金長生)을 제향한 서원에 사액하는 임무를 수행하였고, 그 뒤 일곱번이나 군현의 수령을 지냈다.

1690년(숙종 16)에는 승문원판교 겸 춘추관편수관을 거쳤으며, 시정(寺正)까지 이르렀다.[2] 문장과 서화에 뛰어났으며, 특히 속필로 유명하다. 청백(淸白)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작품[편집]

  • 풍천마산(開豐天摩山)의 대흥사중건비문(大興寺重建碑文)

가족 관계[편집]

  • 조부 : 남궁지(南宮芷)
  • 외조부 : 한옹(韓顒)
    • 모 : 한옹(韓顒)의 딸
  • 처부 : 김대관(金大觀)

같이 보기[편집]

  • 남궁 옥 (방계 후손이며 조선 시대 말기의 무관 관료.)
  • 남궁 억 (방계 후손이며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각주[편집]

  1. 『국조방목(國朝榜目)』
  2. 『현종개수실록(顯宗改修實錄)』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