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환 (18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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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출생 1887년
경북 안동시
사망 1946년
국적 대한민국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1995년)

김용환(金龍煥, 1887년 ~ 1946년)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편집]

독립운동[편집]

의성 김씨 학봉파의 후손으로, 학봉 김성일의 13대 종손으로 태어났다. 유년시절 사촌이자 의병장이었던 김흥락이 일본군에게 사망한 모습을 목격한 후 항일의 뜻을 품었다.[1]

1908년 의병장 이강년, 1911년 김상태 의진등에서 의병활동을 하면서 한편으로 독립군 기지 개척을 위해 도만(渡滿)한 독립운동자들과 연결되어 거액의 군자금을 제공하였다가,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세 번이나 피체되어 고초를 치르기도 했다.

3·1 운동 이후에는 의용단에서 서기를 역임해 활동하였다. 부호를 대상으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으며, 1922년에 다시 일제에 피체되었다. 한편 그가 지원한 군자금은 현재 시가로 환산하면 200억원이라고 한다. 그는 독립운동을 숨기기 위해 도박으로 종가 재산을 모두 날린 노름꾼 행세를 하였다. 이 때문에 파락호로 불리었다.

사후[편집]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서씨문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고.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같이 보기[편집]

외부 링크[편집]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