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길 (195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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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길
金成吉

Kim Seong Kil
기본 정보
국적 대한민국
생년월일 1956년 5월 22일(1956-05-22)(67세)
출신지 일본 아이치현 세토시
신장 181cm
체중 68kg
선수 정보
투구·타석 우투우타
수비 위치 투수
프로 입단 연도 1977년
드래프트 순위 1977년 드레프트 6위
첫 출장 NPB / 1980년
KBO / 1987년 4월 7일
마지막 경기 NPB / 1986년
KBO / 1993년
획득 타이틀
경력

경력


김성길(金成吉, 일본어: .キム・ソンギル、かなもと せいきち, 1956년 5월 22일 ~ )은 일본 아이치현 세토시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출신의 일본프로야구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약을 했던 야구인이다. 일본에서는 가네모토 세이키치(일본어: 金本 成吉)라는 일본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1991년에는 김상엽이 아킬레스건 부상[1] 때문에 6승(4선발승)으로 추락한 데다 유명선이 경기 도중 타구에 발등을 맞고 쓰러지며 투수진이 붕괴되자 김성근 감독에 의해 전천후로 투입됐다[2]. 하지만, 1992년 1승(선발) 7패 1세이브로 추락한 데다 1990년 11월 2일부터 3년 계약으로 취임한 김성근 감독이 부임 첫 해인 1991년 스파르타식 강훈련으로 우승에 대한 의욕을 보였으나[3] 전년도 2위에서 3위로 주저앉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2승 1무 1패로 꺾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빙그레 이글스에게 1승 3패로 져 탈락한 데 이어 1992년에는 7년 만에 미국(베로비치)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한 데다 미국에서 귀국하던 길에 일본 노베오카에서도 전지훈련을 했음에도[4] 선수들이 시차 적응에 실패하여 훈련 계획도 망쳐 4위로 간신히 진출한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 자이언츠에게 2전 2패로 스윕을 당해 탈락하여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5] 도중하차하여 말 그대로 "설상가상"이었다. 결국 1992년 11월 23일 쌍방울이 신인선수 지명권을 내주는 대신 신경식과 함께 보상선수 형식으로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으나 1993년 2승(1구원) 5패 6세이브에 그쳐[6] 이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1. 이경호 (2011년 12월 20일). “[코치, 그들을 말한다] 김상엽 코치 “150km 직구+파워커브…거칠게 없었지””. 스포츠동아.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 
  2. 박현철 (2015년 10월 2일). “김성근 야구 '에이스' 총아인가 제물인가”. 스포티비뉴스.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 
  3. 최영호 (1999년 3월 10일). “[삼성라이온즈 18년 .5] 김성근 감독”. 영남일보.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 
  4. “돌아온 프로야구철…내일 시범경기 각 구단'대권경쟁'채비”. 한겨레신문. 1992년 3월 6일.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 
  5. 최영호 (1999년 3월 10일). “[삼성라이온즈 18년 .5] 김성근 감독”. 영남일보.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 
  6. 황규인 (2019년 9월 16일). “[베이스볼 비키니] 현재의 영광을 팔아 미래의 전설을 사볼까”. 주간동아. 2021년 8월 14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