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미사쿠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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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사쿠 조(神作譲, 1971년 5월 11일 -)는 일본강간살인자이자 인류역사상 최악의 가학성 변태살인자이다. 본디 이름은 오구라 유즈루(小倉譲)로, 여고생 콘크리트 살인사건의 형을 마치고 출소 후 개명하였다. 아버지는 1946년생 오구라 아키라, 어머니는 1945년생 오구라 에츠코, 3년 연상인 누나가 1명 있었고, 미야노 히로시와 마찬가지로 부친은 유부녀와 외도를 하며 임신까지 시켜 부모는 1980년 이혼하였다.

살인사건[편집]

1988년 11월 25일, 가미사쿠는 미야노 히로시(宮野裕史), 미나토 신지(湊伸治), 와타나베 야스시(渡邊恭史) 등과 공모하여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귀가 중이던 후루타 준코(古田順子, 당시 16)를 감금하고 지속적으로 폭행 등을 가하여 이듬해 1월 4일 준코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 사체는 1월 5일, 드럼통에 넣어 콘크리트를 채운 다음 아다치구의 주택가가 밀집한 소년 A의 집 앞 주차장에 매장한다. 공범들의 공통된 증언에 따르면 소녀를 가장 격렬하고 집요하게 폭행 및 고문한 극도로 변태적인 사이코패스이다. 고교 1학년 중퇴이후 불과 2년도 안되는 사이에 동료 및 후배들과 함께 후루타 준코이외에도 90~100명에 달하는 여성들을 납치하여 자신의 극도로 잔인한 사이코패스 기질과 극단적으로 변태적인 가학적 성욕을 모조리 실현시키며 해소한 셈이다.

당시 가미사쿠는 '소년 B'로 통칭되었으며, 미야노는 A, 미나토와 와타나베가 각각 C와 D로 통칭되었다. 이 사건으로 가미사쿠는 5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190cm가 넘는 우락부락한 골격에 흉측한 외모, 들끓는듯한 굉음의 목소리가 특징.

매우 심한 액취증이 있었다.

중학교 시절 촉망받는 하키선수였지만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게 되었고 중학교 2학년때 집에 데려온 애인에 대해 어머니가 "창녀같다"고 흉을 본것을 계기로 어머니와의 불화까지 겹치면서 급격하게 비뚤어지면서 어머니를 시도때도없이 때리거나 불량배들과 어울리며 강간,절도,폭행,상해,싸움,주거침입,기물파손,크고작은 범죄들을 셀수도없을정도로 일으키고 다녔다.

여담이지만 그의 지인 동료들에 따르면 중학생 시절에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못을 박아넣거나 차량 앞유리를 맨주먹으로 단한번에 파손시킬 정도로 강골이었다고 한다.(차량의 앞유리는 아치형인데다 옆유리와 두께,강도 측면에서 비교가 안되게 두껍고 단단해서 웬만한 사람이 망치로도 깨기 어렵고 중량급의전문 격투기 선수들조차 맨주먹으로는 깰 엄두조차내지 못한다.배우 조정석 역시 운동을 잘하고 탄탄한 몸매임에도 불구하고 영화 뺑반 촬영당시 차량 앞유리를 골프채로 손쉽게 깨는 것처럼 나오지만 실제로는 20대가량 가격해서야 균열이 생기면서 파손되었다고 한다.반면에 차량 옆유리는 건장한 성인남자라면 손쉽게 파손이 가능하다.) 이러한 남다른 강체질 덕분에 그는 자신과 싸운 상대들은 아무리 운동을 많이하고 몸이 단련된 상대들조차 주먹이나 발길질 한번에 기절해버리거나 뼈가 부숴졌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한다. 이들은 본 사건 당시에도 피해자를 한달가량 하루18시간 이상 겁탈할 정도로 체력이 기형적으로 괴랄했다.

석방 이후[편집]

1999년 8월 3일에 석방된 이후, 그는 성을 가미사쿠로 고쳤다. 전과로 인해 일본 내에서의 취업이 어려울 것을 예상하고 중국인 여성과 결혼, 중국으로 건너갈 계획을 세우나 이혼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또, 부모는 이혼하여 가미사쿠는 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폭행사건[편집]

2004년 5월 19일, 지인인 이소노 다카토시(당시 27)가 자신의 애인을 가로챘다며 시비를 걸어 이유로 이소노를 미사토시에 위치한, 어머니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끌고 가 4시간여 동안 감금하고 폭행했다. 이소노에 따르면, 감금폭행하는 동안 가미사쿠는 후루타 준코 살해 경력을 자랑하고, 금고 앞에 서서 경찰은 나의 노리개이다. 나는 여자를 죽이고 형무소에 있는동안 사람을 구워삶는 여유를 배웠다. 사람을 1명죽인 놈과 여러명 죽인놈은 다를것이 없다. 경찰이나 검찰을 교묘히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가미사쿠는 징역4년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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