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칼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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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칼라일의 모습. 1870년대의 작품.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1795년 ~ 1881년)은 영국의 평론가·역사가이다. 이상주의적인 사회 개혁을 제창하여 19세기 사상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저서로는 《의상철학》,《프랑스 혁명사》, 《영웅 숭배론》, 《과거와 현재》 등이 있다.

칼라일은는 스코틀랜드의 한 청교도 가정에서 태어났다. 에든버러 대학에서 수학과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그 후 독일 문학 연구를 시작하여 괴테·실러 등의 작품을 영국에 소개하였다. 1826년에 Jane Welsh와 결혼하였다. 1838년 《의상 철학》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당시 영국 사회의 산업 만능 사상에 대한 낭만적인 구제책을 제시했다.

이후 칼라일은 1834년 런던으로 이사를 간다. 그는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3권으로 이뤄진 《프랑스 혁명사》를 저술한다. 이 과정에서 존 스튜어트 밀에게 초고를 빌려주었다가 하녀가 불쏘시개로 태우는 바람에 다시 저술하였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그는 이 책에서 혁명은 지배자들의 악정에 대한 천벌이며 영웅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대표작인 《영웅 숭배론》(1841, 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에서 성실하고 용기있는 영웅적 지도자가 필요하고 그들을 존경 해야 하며, 영웅을 알아보고 존경하기 위해서는 안목을 갖춘 작은 영웅들이 필요하므로 영웅들로 가득한 세계에서만 진정한 영웅 숭배가 가능하다는 이상주의적인 주장을 폈으며, 이에 따른 역사에서의 개개인의 역량을 중요시했다.

이후에도 많은 강연을 하고 저서를 저술하다가 아내 Jane의 사망(1866년)뒤에는 글도 거의 쓰지 않았으며, 1881년에 사망하여 에클페칸 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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