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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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홍수(奇洪壽, 1148년 ~ 1209년)는 고려중기의 무신, 정치인이다. 본관은 행주이고 자(字)는 태고(太古)이고, 시호(諡號)는 경의(景懿)이다. 기순우의 증손이고, 기황후의 종증조부가 된다. 고려(高麗)의 명종(明宗), 신종(神宗), 희종(熙宗)의 세 왕대에 걸쳐 무관으로 활동하며 이름이 높았으며 관직은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판이부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兼判吏部事)에 이르렀다.

생애

강정공(康靖公) 기윤숙(奇允肅)의 큰 아들이고, 기홍영(奇洪穎)의 형이다. 기홍영은 영안왕(榮安王)에 추봉된 기자오(奇子敖)의 할아버지이고, 기황후의 증조부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필(名筆)이자 문장(文章)에도 능하였다.

일찍이 관직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쳐 1194년(명종 24) 12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었고, 1196년에는 최충헌의 난 당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였다. 이후 1197년 9월에 참지정사 판병부사(參知政事判兵部事), 동년 11월사도 중서시랑평장사 감수국사(守司徒中書侍郎平章事監修國史)를 거쳐 판병부사 태자태부(判兵部事太子太傅)가 되었다. 1199년(신종 2) 12월 수태위 문하시랑 평장사(守太尉門下侍郎平章事), 1200년 12월 수태사 주국(守太師柱國)을 거쳐 1201년 12월 문하시랑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兼同中書門下平章事)가 되었다가 1203년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에 올라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 겸 판이부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兼判吏部事)로 관직에서 치사하였다.

1199년 5월 대관전무일편(大觀殿無逸篇)의 본문을 일부 수정, 고쳐썼는데 이는 고려시대 최고(最高)의 서예작품(書藝作品)으로 평가(平價)되었다. 1204년 1월 최충헌(崔忠獻) 등과 더불어 신종의 희종에게의 선위(禪位)하는 것을 논의하였고, 희종 때에 이부상서에 임명되어 전선(銓選)을 맡게 하였으나 사양하고 조용히 물러날 것을 원하여 최충헌에게 주고 관직에서 물러나 행주로 낙향, 가야금과 시를 즐겼고 서예(書藝)로 기쁨을 삼았다. 1209년 사망하니 당시 나이 향년 62세였다.

가계

  • 아버지 : 행주 기씨
    • 대장군 : 기홍수(奇洪壽, 1148~1209)

기홍수가 등장한 작품

기타

조카 기온(奇蘊)은 고려 고종의 부마였고, 또다른 조카 기관기황후기철 5형제의 할아버지였다.

관련 항목

참고 문헌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동사강목
  • 고양읍지
  • 동국이상국집
  • 세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