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빅토르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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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2세
전임자레오 9세
후임자스테파노 9세

교황 빅토르 2세(라틴어: Victor PP. II, 이탈리아어: Papa Vittore II)는 제153대 교황(재위: 1055년 4월 13일 - 1057년 7월 28일)이다. 세속명은 게브하르트 그라프 돌른슈타인히르슈베르크(독일어: Gebhard Graf von Dollnstein-Hirschberg)이다.

1018년 슈바벤프란코니아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에 의해 아이히슈테트주교와 황제의 상서국장이 되어 교황 레오 9세노르만족을 물리치기 위해 신성로마제국의 파병을 요청하자 거절한 장본인이다. 전임 교황을 이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빅토르 2세는 전임자의 개혁 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갔으며 이탈리아 반도 안에서 황제의 이권을 교황이 돌보게 하였다. 1055년 피렌체 지방 공의회는 황제의 임석하에 개최되어 성직매매, 성직자의 결혼, 교회의 재산 횡령을 금지하였다. 황제는 교황에게 스폴레토의 대공과 페르모의 백작의 작위를 윤허하여 황제에 대한 교황의 신임을 보여주었다. 이리하여 황제는 교황의 상전 역할을 당당히 하였고 교황은 황제의 신하가 되었다. 교황은 사절들을 프랑스 남부에 파견하여 리옹툴루즈에서 교회회의를 개최하여 교회 개혁을 추진해 나갔다.

황제 하인리히 3세의 갑작스런 서거로 인해 10년간에 걸친 황제-교황의 쇄신 작업은 끝나고 말았다. 황제는 교황과 더불어 교회의 쇄신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재위 중 교황 선거를 온전히 주관하였다. 사실 교황 클레멘스 2세부터 빅토르 2세에 이르기까지 4명의 독일인 교황들이 배출되었으나 교황 선거에 대한 영향력보다 황제의 권위를 잘 드러낸 부분은 없었다. 이와 같이 황제는 제국과 교회의 완전한 통치자였다. 하인리히 3세는 자신이 뽑은 교황의 팔에 안겨 숨지면서 교황에게 자신의 아들과 신성로마제국을 위임하였다. 이에 교황은 아렌에서 젊은 하인리히 4세의 대관식을 거행하여 관리를 돌본 후 이탈리아로 귀환하였다. 1057년 4월 18일 교황은 라테라노에서 생애 마지막 회의를 개최하여 교회의 쇄신 정책을 독려하고 선종하였다. 그의 선종은 교회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 주었다.

전임
레오 9세
제153대 교황
1055년 4월 13일 - 1057년 7월 28일
후임
스테파노 9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