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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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4세
전임자세르지오 2세
후임자베네딕토 3세

교황 레오 4세(라틴어: Sanctus Leo IV, 이탈리아어: Papa Leone IV)는 제103대 교황(재위: 847년 1월 ~ 855년 7월 17일)이다.

레오 4세는 로마 태생이며 어렸을 때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교황 그레고리오 4세에 의해 로마 교회에 근무하게 되었고 전임 교황에 의해 추기경이 되었다. 전임 교황이 선종하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재위 중 그의 가장 큰 난제는 사라센의 공격을 막는 것이었다. 그들은 846년 로마를 침공하여 노략질을 하고 간 일이 있었다. 당초 교황이 되면 따라올 위험이 두려워서 교황직을 사절했던 그였지만, 비록 자신이 원하던 바는 아니었으나 교황직에 오른 후에는 교황궁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였다. 레오 4세는 로마의 성벽을 보수하고 여러 건물들, 특히 바티카노 언덕을 중심으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막는 방어 작업에 주력하였다. 이리하여 ‘레오의 도시(Civitas Leoniana)’라는 말이 생겨났으며 이탈리아 안에서 교황의 요새가 되었다. 그는 지금도 남아 있는 레오니네 성벽을 쌓고 44개의 망루를 세워 경계를 강화하였으며, 출입구의 수를 3개로 제한하여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로부터 방어하였다. 레오 4세는 사라센족을 제압하기 위하여 외교술을 발휘하여 849년에는 이탈리아 내의 여러 도시들과 협정을 맺어 오스티아 해역에서 로마를 공격하려는 사라센족의 공격이 차단되었다.

사라센족에 대항하기 위한 그의 적극적인 방법들은 프랑크 왕국의 보호 아래 교황권의 신장에서 잘 드러났다. 외적으로 레오 4세는 프랑크 왕국에 언제나 복종하였다. 850년 그는 황제 로타르의 요청으로 아들 루트비히 2세의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루트비히 2세도 관습에 따라 교황의 의해 축성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레오 4세는 교황령 내의 행정적인 일을 부탁하였으나 독립적으로 추진한 일도 많았다. 특히 고위 성직자들의 직권 남용과 프랑크 왕국의 입김으로 불법적으로 임명되는 주교들에 대하여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예를 들면, 라벤나의 요한네스와 랭스의 힝크마르 대주교는 프랑크 제국의 지지를 받는 힘 있는 고위 성직자들로서 권력을 지나치게 남용하여 문제가 되자 레오 4세의 문책을 받았다. 레오 4세는 황제 루트비히의 지지를 받던 도서관장 아나스타시우스를 파직시켰다. 이러한 조처들은 후임자 교황 니콜라오 1세교황 요한 8세가 장차 교황직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로마 시의 방어 외에도 그는 로마 시와 교황령의 여러 곳에 성당을 건축하고 장식하는 데 힘썼다.

전임
세르지오 2세
제103대 교황
847년 1월 ~ 855년 7월 17일
후임
베네딕토 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