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혼노지의 변 |

혼노지의 변을 그린 판화 |
| 날짜 |
1582년 6월 21일 |
| 장소 |
야마시로 국 혼노지 |
| 결과 |
아케치 군의 승리, 오다 노부나가의 자결 |
| 교전국 |
|
|
| 지휘관 |
|
|
| 병력 |
|
|
| 피해 규모 |
| 불명 |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타다, 모리 란마루 등의 전사 |
|
혼노지의 변(일본어: 本能寺の変)은 1582년 음력 6월 2일(6월 21일) 발생하였으며 센고쿠 사(戰國史)의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개요 [편집]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히데요시를 도운다는 명목으로 주코쿠로 진군 중 돌연 회군,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를 죽이게 된 것이 사건의 개략적인 내용이다. 1582년 5, 6월의 그 당시 일본의 정세는 오다 노부나가가 마침내 그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다케다 가를 병합하면서 오다 가는 전에 없던 강력한 세력을 형성할 것이라 보고 있었다. 그 당시 유력 가문은 크게 모리, 호죠, 우에스기로 세 가문이 있었다. 그러나 우에스기 가와 호조 가는 변방에 크게 떨어져 있어 이제 중앙으로의 진출이 어려워져 대세에 벗어난 만큼 이제 오다 가문에게 실질적인 적은 100만석의 모리 가 정도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모리 가문을 공격하는 일을 총지휘하는 사람은 하시바 히데요시(羽柴秀吉)였다. 노부나가는 여분의 병력을 모리 가문을 공격하는 일에 동원하였고 동원되는 군세 중 하나가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였다. 미쓰히데는 노부나가의 명령을 받아들여 단바에서 자신의 군세를 소집하여 서쪽으로 진군, 노부나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갑자기 미쓰히데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미쓰히데는 노부나가가 교토에서 열병식을 계획한다고 말했고 이에 병사들은 의심하지 않고 따라갔다. 그러나 혼노지에 다가서는 순간 미쓰히데가 외쳤다.
| “ |
"적은 혼노지에 있다!(敵は 本能寺に あり!)"[1] |
” |
이 말과 동시에 아케치 군이 혼노지에 난입해 들어갔다. 그 당시 노부나가는 혼노지에 숙소를 잡고 있었다. 그 당시 노부나가를 수행하고 있던 인원은 얼마 지나지 않았고 1만에 이르는 아케치 미쓰히데의 군세를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노부나가는 분전 끝에 시동 모리 란마루(森蘭丸)와 함께 자결한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라는 말은 현재에도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2]
주석 [편집]
- ↑ 이 말은 미쓰히데가 한 말이 아니라, 에도 시대의 라이 산요가 기록한 말이다.
- ↑ 먼나라 이웃나라 일본 역사편, 이원복 저